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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산책] 1월21일 화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21 조회수719 추천수13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1월21일 화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R) - 마르 2장 23-28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인간미가 넘치는 안식일 규정>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떤 사건이나 행동을 자기 멋대로,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또 잘 하는 것이 확대해석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젯밤 아주 골치 아픈 일을 하나 겪었습니다. 밤잠도 설치고 아침에 출근하니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할뿐더러 어둡고 시무룩했습니다. 그 얼굴을 본 아전인수, 확대해석 잘 하는 사람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오늘따라 왜 저리 인상 빡빡 쓰고 있지? 나한테 무슨 감정이라도 있나? 감정 있으면 말로 할 것이지 아침부터 재수 없게 왜 인상을 쓰냐구?’ 그걸로 끝나면 좋을 텐데 끝까지 다가가서 따집니다. “뭐 나한테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예수님 시대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이 아전인수나 확대해석의 명수들이었습니다. 안식일 규정의 취지는 원래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탈출기 3431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합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 말은 인간을 정말 많이 생각하는 말, 최대한 배려하는 말이었습니다. 원시적인 형태의 근로기준법이었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악덕 기업주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강도 높은 노역으로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노동력을 착취당했고 저임금에 시달렸습니다. 안식일 규정은 정말이지 사람을 생각해서 만든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안식일 규정의 문구 하나 하나를 철두철미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세부 규정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아무리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안식일에 걸어 다닐 수 있는 최대거리까지 규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거리는 1392미터였습니다. 더 철저한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요리조차 일이라고 생각해서 안식일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스위치 하나 켜는 것,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 누르는 것조차 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바리사이들이 하루는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난삼아 밀 이삭 몇 개를 잘라먹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즉시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밀 이삭 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재미삼아 몇 가닥 뜯어 먹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트집을 잡은 것입니다. 본격적인 수확이나 농사일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 장난이었는데, 그걸 그리도 확대해석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요즘 시대 안식일(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방에만 가만히 드러누워 있지만은 않습니다. 자녀들 끼니를 챙겨주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몸의 건강을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이 들길을 걷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에 몰두합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을 즐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결정적인 실수를 놓치지 않습니다. 율법에 대한 그릇된 해석과 오해, 편협한 적용과 과장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인간의 건강과 유익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안식일 규정을 통해 인간이 일이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반대로 사람을 안식일의 노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나 제도라할지라도 그것들이 인간을 힘겹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살수 없게 만든다면 백퍼센트 재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자유로움 자체이신 분, 하늘을 떠도는 구름처럼 거칠 것 없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제정한 법과 제도들이 조금이라도 그분 앞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볼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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