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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21 조회수925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월 21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Look! they are doing
what is forbidden on the Sabbath!"
Then Jesus said to them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not man for the Sabbath.
(Mk.2,24,27)
 
 
제1독서 1사무 16,1-13
복음 마르 2,23-28
 

언젠가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빈자리가 있어 앉아 있는데, 몇 정거장을 지난 뒤에 연세 지긋한 분이 출입구를 지나 제 앞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지요.

“어르신, 이곳에 앉으세요.”

그런데 이 어르신께서는 “나 노인 아니에요.”라고 거절하시면서 자리를 양보하는 저를 무안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절을 당하니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앉아있는데 괜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치 ‘자리도 양보하지 않는 뻔뻔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제가 양보를 했는데도 어르신이 거절하셨어요.”라고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순간, ‘그냥 전철에서 내려야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내리면 자리가 생기는 것이고, 그렇다면 노인이라고 양보 받은 자리가 아니니 앉지 않으실까 편안한 마음으로 앉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내릴 전철역도 아니었는데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좋은 마음으로 양보한 자리였는데, 아마 이 어르신에게는 오히려 부담되는 양보였나 봅니다. 그렇다면 그 좋은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어르신이 잘못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 어르신 역시 남들에게 대접 받는 것이 편하지 않아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제게 도리어 양보한 것이니까요. 서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좋음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어르신이 불편하지 않게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일어나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지요.

중요한 것은 나의 선의가 거절되었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상대방이 편안하게 선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람 중심의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 중심이 아닌, 내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나의 선의가 거절되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할 분명한 기준을 말씀해주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우리 사람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 역시 사람 중심, 특히 나의 이웃들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배려하는 삶, 사랑의 삶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움직인다(이반 투르게네프).

 
새신부의 서품초입니다. 오늘 성소후원회 미사 때에 새신부 첫미사를 합니다.

 

 
함께 울어주는 따뜻한 사람

인터넷에서 따뜻한 글을 하나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30대 초반의 유치원교사입니다. 가벼운 우울증이 있어 간혹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곤 합니다. 그냥 눈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식사를 하다가, 저녁에 TV를 보다가,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제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때 주변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요?”

“내가 무슨 실수 했나?”

대부분 이렇게 ‘이유’를 물어봅니다.

하지만, 제가 일하는 유치원 아이들은 다릅니다. 친구가 이유 없이 울음을 터트릴 때 주변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한결같습니다.

그냥 함께 웁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옆 사람의 눈물을 함께 해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서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항상 이유를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유를 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중요했는데 말이지요. 사실 주님께서도 항상 침묵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시지요.

이제부터라도 변해야 합니다. 이유를 묻는 우리가 아닌, 침묵 속에서 함께 울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우리가 많아질수록 하느님 나라는 더욱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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