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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분의 질문을 회피하지 마라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22 조회수826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14년 연중 제2주간 수요일


< 갈릴레아에서 큰 무리가 따랐다>


복음: 마르 3, 7-12






예수님의 탄생 예고


안젤리코(Fra Angelico) 작, (1432-1434),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그분의 질문을 회피하지 마라>


어제 한 뉴스에 미국 뉴욕에서 무단횡단 단속을 하던 경찰들이 80대 중국계 노인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폭행하여 얼굴에 피가 흐르는 채 경찰차에 연행되는 사진이 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올해 84세인데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경찰이 서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4시간 동안이나 범인취급을 당한 뒤 풀려나기는 했지만 인종차별과 과잉진압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이태리에도 외국인들이 많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이태리에서 공부할 때 저에게 찾아온 손님이 지하철에서 지갑을 날치기 당했습니다. 저는 한 집시가 의심되어 경찰에게 저 사람을 뒤져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바로 구석으로 그 사람을 끌고 가더니 비인간적으로 그 사람을 대하고 몸을 수색했습니다. 물론 그에게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보통 여러 명이 함께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잡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가면서 저를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을 저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집시들이 소매치기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의심해도 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그 대답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런 상황에 있을 때는 저 스스로 그런 질문을 던지지 못했을까요? 마찬가지로 왜 위의 경찰들은 그런 상황에서 영어도 못하는 노인을 폭행하게 되었을까요? 왜 자신에게 그래도 되느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요? 사실 가장 쉬운 질문이 가장 하기도 어렵고 대답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라고 묻습니다. 너무도 쉬운 물음이지만 대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만약 어린이라면 쉽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쉬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면 그만큼 안 좋은 것들에 오염이 되어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본당에 있을 때 매년 성 니콜라오 축일에 싼타 복장을 하고 가면 유치원 아이들이 질문을 합니다. 저는 그 질문들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대답을 해 보세요?

니콜라오 주교님, 머리에 그런 모자는 왜 쓰나요? 반지는 왜 끼는 건가요? 목에 십자가는 왜 거나요? 지팡이는 왜 들고 다니나요?”

주교님이 당연히 하고 다니는 그것들을 저도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들을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대한 아는 것들을 동원해서 얼버무려야 했습니다. 신학을 배웠음에도 어린이들의 질문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쉬운 질문이 나오면 바로 대답할 수 있나요? 쉬운 질문을 몇 개 해 볼까요? 성탄 트리는 언제부터 시작됐고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트리에 다는 둥그런 것들은 왜 다는 것입니까? 수녀님들은 머리에 왜 수건을 쓰는 것입니까? 미사 때 여자들은 머리에 흰 수건을 왜 쓰는 것인가요? 향을 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계약의 피라고 신부님이 성작을 들어 올리시는데 계약과 피는 무슨 의미인가요? 세례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데 기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제대에 인사를 하는데 제대는 무엇을 상징하나요? 어떻게 하느님이 한 분인데 동시에 세 분이 되시나요?

대답하시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쉬운 질문들을 하지 않게 되고 그저 해야 되는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됐지 그 때 사람을 살려야 하는지 죽여야 하는지는 관심 밖이 되어버렸습니다. 법을 어기는 사람을 잡으면 됐지 그 사람이 중국인이고 노인이고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인 것은 관심 없습니다. 법을 지키면 됐지 법이 누구 때문에 존재하는지는 더 이상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젠 물어봅시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을 내 스스로 할 수 있을 때만 행동합시다. 확신 없이 하는 행동은 그 자체가 죄의 시작입니다.

만약 언제 깨질지도 모르는 살얼음판을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건넌다면 그것은 내 목숨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충분히 질문해보고 확신이 생기면 그 때 행동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무시하면 누구도 나의 편이 돼 주지 않을 날이 오고야 말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쉬운 질문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우리 마음 안에서도 예수님은 끊임없이 질문하십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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