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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묵주기도 4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22 조회수515 추천수2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빛의 신비 5: 3/6]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작품인 성찬례 제정을 전후로 두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예고하셨다.

그 하나가 제자 유다가 배신할 것과, 또 하나는 제자 중의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신 거다.

다시 말해 제자중의 한 놈이 자기를 배반하여 팔아넘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 중 우두머리격인 베드로가 어떤 결정적인 때가 오면

자신을 분명히 모른다고 잡아 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둘 다 우리의 지금 모습이다.

 

이 예고로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취약점을 분명히 지적해 주셨다.

말과 겉으로는 하지만 자기 손해와 이익에 따라 실속을 판단하여 배반하고 저버린다.

언제 그랬냐?’라고 하면서 말과 행동이 다른 생활을 쉽게 한다.

그 취약점을 예수님은 이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지적해 주셨다.

 

마지막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발도 몸소 씻겨주셨다.

이런 모범의 실천을 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할 것임을 단단히 당부하셨다.

그렇지만 그 마지막 가시는 길에 예수님도 정말 마음이 산란하셨다.

이 길만이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계획된 일임에도 어찌 육신의 고통을 외면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막가는 한 말씀 하셨다. 솔직히 속내를 드러내 놓고 작심하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이는 이미 그분의 각본대로 제자로부터 배반당할 몸임을 자처하였지만

끝내 묻어두기에는 너무 마음이 산란하였기에.

아니면 이 내용을 끝까지 비밀에 부치기엔 한편으로 예수님도 너무 억울한 생각을 하였을 수도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폭탄선언이 누구를 두고 하시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며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리고는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며 묻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는 모두 이 시각에도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있는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는 그분을 믿는 시늉은 하면서도 내심 서슴없이 온갖 나쁜 짓으로 그분을 도매 소매로 팔아넘긴다.

전지전능하신 그분을 두고 말이다. 팔아본들 밑져봐야 본전이니 딱 한 번이라 다짐까지 하면서 판다.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이라는 그분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도 수시로 의심하는 우리이기에.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이 말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도 너무나 자주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제 탓이오.’라는 말을 우리가 언제쯤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을지!

 

사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한다. 그 수법도 나이가 들수록 대담해지고 고차원이다.

그리고는 후회와 반성을 하고 필요하면 사죄를 청한다. 이것이 우리네 삶이다.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것도 입으로는 감히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저히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한다고 딱 잡아 땐다. 때로는 그 같은 잘못에 대해 경고도 받는다.

 

그래 놓고도 우리는 그게 아니라며 종종 우긴다. 양심을 저버리면서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리하여 큰 낭패를 겪는 사례를 가끔 보고 듣는다. 심지어는 패가망신을 당하는 꼴도 여러 번 보았다.

그 옛날 예루살렘에서의 최후의 만찬에서,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한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남의 탓으로 돌린 그 말이 지금도 버젓이 회자한다.

 

오늘날 우리 같은 믿음의 사람도 말로는 예수님을 모시면서 간혹 예수님을 파는 몰지각한 신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런 사람이 진정 아니라고 하면서 남의 탓으로만 돌린다.

저는 아니겠지요?” 우리가 늘, 실상으로 하는 말이다.

마치 자기가 그 아무개이면서도, 정말 그 아무개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서.

 

남이 보는 앞에서는 아닌 체하면서 돌아서서는 막무가내인 우리이다.

안면 바꾸고는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눈 하나 깜짝 없이 말한다.

스승님과 함께 죽어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행동만은 모르는 생활을 하고 있다.

딱 잡아 땐다. 이것이 믿는다는 우리 신앙인 생활의 일부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당신을 기억할 수 있는 이 나눔의 성찬례를 일찍이 예고하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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