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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삶은 무엇인가?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31 조회수658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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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31 금요일 설 민수6,22-27 야고4,13-15 루카12,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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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삶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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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월 마지막 날이자 정월 초하루 설날입니다.

새삼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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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믿는 우리들에겐 매일이 새해 첫날입니다.

축복의 태양 환히 떠오르는 새해 첫날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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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살기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심지어는 사람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인간상품화시대에 살고 있는

척박한 세상입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물음을 늘 화두처럼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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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피겨스케이팅 여왕인 김연아(스텔라)가 2013년 12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경기 중 외국 해설자와 한국 해설자의 관심사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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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 "나비죠? 그렇군요.

마치 꽃잎에 사뿐히 내려앉는 나비의 날갯짓이 느껴지네요."

한국 : "저 기술은 가산점을 받게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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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 "은반 위를 쓰다듬으면서 코너로 날아오릅니다.

실크가 하늘거리며 잔무늬를 경기장에 흩뿌리네요."

한국 : "코너에서 착지자세가 불안정하면 감점 요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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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평소 우습게 생각해 마지않는 중국 해설자의 표현입니다.

"강철 나비…천 번의 도약은 바로 이 한번을 위한 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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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사실에 대한 해설이 어쩌면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경기의 아름다운 과정보다는 온통 등수와 점수에만 관심이 가있는 한국해설자들이요

바로 이게 극심한 경쟁 풍토 중에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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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지능이론 창시자인 세계적인 석학,

하버드대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의 인터뷰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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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가 하는 행동을 봅니다.

부모가 “나는 정말이지 네가 행복하기 바란다.”고 말하면서 돈에 더 관심을 가지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돈이구나.’라고 배워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어른들이야말로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책에서 뭐라고 하는가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자기가 보는 어른의 모습으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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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엄중한 진리가 ‘보고 배운다.’ ‘보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이웃들의 삶의 모범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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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교님의 고백 한 대목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온 가족이 앉아서 손잡고 서로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가정기도문을 바쳤어요.

그것을 끝내야지만 각자 방으로 공부하러 가곤 했습니다.

그런 신앙의 전통 때문에 주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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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삶의 모범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예화들입니다.

이런 삶의 모범을 보고 배워가면서 사람이 되어 감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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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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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품위 있는 삶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입니다.

‘사람답게’ 좀 막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때 품위 있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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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이기에 존엄한 품위를 지녀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하느님의 복이 우리 삶을 품위 있게 합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당신 자녀들에게 축복하시는 일입니다.

비상한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있음이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사제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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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지켜 주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평화를 베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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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님의 축복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유지하며 무욕의 삶을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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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겸손한 삶입니다.

겸손한 삶이 아름답습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 덕이 겸손입니다.

영성의 진위를 확인하는 잣대 역시 겸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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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사랑, 겸손한 믿음입니다.

겸손이 들어가야 진짜입니다.

느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알아 갈수록 겸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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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몰라 남 판단의 교만입니다.

야고보 사도 역시 제 분수를 알아 겸손할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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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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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과 함께 겸손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일뿐입니다.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 살아도 무의미와 허무의 심연은, 블랙홀은 늘 곁에 있습니다.

겸손히 주님과 함께 살아야 무의미와 허무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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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깨어 있는 삶입니다.

지금 여기 깨어 있는 삶이 참 삶입니다.

과연 하루 중 온전히 깨어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참 중요한 수련이 깨어 있음의 수련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 역시

궁극으로 목표하는바 깨어 있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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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성 베네딕도의 '죽음을 날마다 눈 앞에 환히 두라.'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깨어 주님을 맞이하듯 날마다 깨어 죽음을 눈 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역시 오늘 복음에서 우리 모두 깨어 살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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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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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집중입니다.

깨어 있을 때 마음의 순수입니다.

환히 깨어 있을 때 유혹도, 근심걱정도, 나쁜 생각도, 병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육신은 잠들어 있어도 영혼의 등불은 늘 켜놓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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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삶은 품위 있는 삶, 겸손한 삶, 깨어 있는 삶입니다.

옛날 공부는 동서를 막론하고 참 사람이 되는 공부였습니다.

성인이 되는 공부, 군자가 되는 공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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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무엇을 '하기 위해(to do)'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to be)' 수도원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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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는 물론 믿는 사람 모두의 유일한 목표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깨어, 품위 있게, 겸손하게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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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겨울나무들이 품위 있고, 겸손한, 깨어 있는 삶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며칠 전 써놓은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라는 시를 나눕니다.

나뭇가지들/본질만 남기고

모든 것/다 비워내

하늘로/가득 채운

텅 빈 충만의/겨울나무들

더 바랄 것이/무엇이겠는가?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앞에서 깨어,

겸손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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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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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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