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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1 조회수624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2월 1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he rebuked the wind and ordered the sea,
"Quiet now! Be still!" The wind dropped
and there was a great calm. Then Jesus said to them,
"Why are you so frightened? Do you still have no faith?"
(Mk.4,39-40)
 
 
제1독서 2사무 12,1-7ㄷ.10-17
복음 마르 4,35-41
 

얼마 전에 인천교구 예비신학생의 입학을 위한 면담이 있었습니다. 이 면담 때에 반드시 들어가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 질문은 ‘어떤 사제가 되고 싶은가?’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부분의 대답은 ‘신자들과 함께 하는 사제’였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으로 성소국장이 되어서 이 면담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깜짝 놀랐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했던 대답은 ‘신자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사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비신학생들은 본당에서 신부님들을 보면서, 신자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주는 신부님보다 그냥 함께 하는 신부님이 더 좋다는 것을 안 것이지요.

나와 친한 친구를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나에게 무엇인가를 계속 주는 사람만이 친구입니까? 내가 부탁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들어주고 무조건 내 뜻에 맞춰서 움직이는 사람이 친한 친구입니까? 아닙니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사람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또 아프고 지쳤을 때 그저 말없이 내 손을 잡아 주면서 함께 해주는 진정한 친구를 우리 모두는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친구만이 나를 위해서 내가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에 따끔하게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안 돼!!”라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반대의 말도 용기 있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으시고, 대신 내가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막연한 하느님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계속해서 다른 이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있는 기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불평불만을 하게끔 만들지요. 왜 차별을 하시냐고, 왜 저 사람을 더 사랑하시냐는 불평불만인 것이지요. 하지만 사탄의 유혹에서 나오는 막연한 남의 하느님을 볼 것이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늘 나와 함께 하시는 ‘나의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있었던 배가 돌풍으로 인해서 물에 잠길 지경이 되었지요. 제자들은 우왕좌왕합니다. 제자들 중에 많은 이들이 어부 출신이었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더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어 죽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리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한 마디로 호수를 잠잠하게 만들고 바람을 멎게 하십니다. 그리고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시지요.

함께 하시는 주님만을 굳게 믿는다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그 고통과 시련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겁을 낼 수밖에 없겠지만, 그 안에서도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만 있다면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주님과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굳은 믿음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부족하기에 주님께 그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상태는 마음먹기에 따라 부자가 될 수도 가난한 자도 될 수도 있다. 만족만 한다면 텅 빈 상자에서 우주를 꺼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장은진).

 
잔잔한 갈릴래아 호수입니다. 항상 잔잔한 호수에 돌풍이 일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행복의 크기

언젠가 혼자서 등산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산이라 가벼운 복장으로 훌쩍 떠난 등산이었지요. 그런데 산 중턱 쯤에 이르렀을 때 한 중년 부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나무 그늘에 앉아서 사과를 깎아서 드시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사과를 깎아 아내의 입에 직접 넣어 주면서 “여보, 사과 먹어.”하는데 너무나 보기 좋은 것입니다.

중년 부부이기에 젊었을 때의 활기와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그 모습은 제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계속해서 그 모습이 떠올려졌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저 부부는 사과를 깎아 먹는 그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모르겠지요. 어쩌면 우리의 삶 전체가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나의 별 것도 아닌 행동 하나를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감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받는 것들이 하나둘이 아닌데, 우리들은 그 행복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똑같은 사랑을 주시는 주님은 절대로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그 사랑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행복의 크기가 다른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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