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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여정(旅程)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1 조회수629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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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1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사무 하12,1-7ㄷ.10-17 마르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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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여정(旅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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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깊이는 하느님의 깊이이며 고난의 깊이입니다.

인간 고난의 깊이 안에 스며있는 하느님 자비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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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그림이나 토스트에프스키의 소설에서,

또 오늘 1독서의 다윗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깨닫는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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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렘브란트나, 토스트에프스키, 다윗 모두가 치열, 처절하게 살았던

하느님의 전사들이었습니다.

어떤 시련과 고통 중에도 결코 절망하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느님 자비를 찾았던

구도자들이요 하느님의 전사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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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도원을 방문했던 어느 자매를 통해서도 새삼 깨달은 진리입니다.

늦은 나이에 참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명문대학에서 12년 만, 천신만고 끝에

박사학위를 받은 자매였습니다.

12년 동안의 정말 치열하고 처절한 영적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하느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인 자매였습니다.

이런 분들의 존재를 통해 빛나는 내적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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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느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놓치는 법이 없어

아무도 이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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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앞에 완전 범죄는 불가능합니다.

하느님을 피해 갈 곳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오늘 독서의 다윗을 통해 새삼 확인하는 진리입니다.

다윗 삶의 고난의 깊이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물론 오늘 독서로 다윗의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요 그의 고난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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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으로 즉위과정 까지도 파란만장했고

그 삶의 변화도 참 변화무쌍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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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궤 앞에서 기쁨에 넘쳐 덩실덩실 춤췄던 다윗이며

나탄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축복에 감동적인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다윗이요,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야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 밧쎄바를 취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다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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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여색에 믿음의 눈이 멀어 믿음의 길에서 탈선하여 죽을죄를 지은

하느님의 전사 다윗이요 그 대가는 참으로 컸습니다.

하느님은 여지없이 나탄을 통해 방문하셔서 그의 죄를 추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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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탄이 부자가 가난한 이웃의 암양을 악용한 예화를 들었을 때

자기를 빗댄 줄도 모르고 분기탱천한 다윗입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나탄의 개입이 참으로 신속합니다. 빈틈의 여지를 주지 않고 다윗을 공격합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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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목숨을 내어 놓고 직언하는 것이 하느님의 예언자들입니다.

다윗의 반응 역시 신속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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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말 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습니다.

이 한마디가 하느님의 마음을 돌렸습니다.

진정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런 진정성 넘치는 회개입니다.

제 정신으로 돌아와 믿음의 눈이 활짝 열린 다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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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성자라 일컫는 간디가 위대했던 것 역시

‘I was wrong(내가 잘못 했소)’의 명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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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안에서 인간관계에서도 정작 필요한 것은

‘고맙다’ ‘감사하다’보다는 ‘잘못했다’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고백이요 신속할수록 좋습니다.

이런 진정성 넘치는 잘못의 고백이 서로 간의 앙금을 말끔히 씻어내고 관계를 회복해 줍니다.

하느님 앞에서나 인간 앞에서 구구한 변명이나 핑계 없이 잘못을 고백하는 자들이

진정 지혜롭고 용기 있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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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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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용서를 받고 다시 하느님의 전사로서 믿음의 전투력을 회복한 다윗입니다.

그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야의 아내가 낳아 준 아이를 치시자

그 아이를 위해 하느님께 호소하며 단식하며 밤을 새우는 다윗의 인간적 면모도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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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한결같은 믿음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믿음의 여정’입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믿음의 전투요 하느님의 전사로서의 삶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결코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전투에 임해야 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이런 죄의 용서를 통해 다윗의 하느님 체험도, 믿음도, 삶도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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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제자들 역시 우리처럼 믿음 약한 모습들입니다.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도 ‘믿음의 눈’이 멀어 갑자기 일어난 돌풍에 혼비백산,

주님의 도움을 청합니다.

배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믿음이 좋은 예수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 역시 믿음이 있다 하면서 믿음이 없어 때로 시련을 겪을 때

마음이 혼란으로 요동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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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이 또한 절실한 기도요 이에 대한 주님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잠에서 깨어나시어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바람을 꾸짖으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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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님을 체험하면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고 더불어 믿음도 깊어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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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회개의 여정이자 믿음의 여정이요 이런저런 계기를 통해 성장 성숙하는 믿음입니다.

삶의 깊이는 고난의 깊이이자 믿음의 깊이이고 이 깊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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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의 마음 풍랑을 고요케 하시며

하느님의 전사들인 우리 모두에게 좋은 믿음의 무기를 선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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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애가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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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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