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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부가 아닌 동냥은 더욱 아닌... ‘봉헌’입니다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2 조회수547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부가 아닌 동냥은 더욱 아닌... ‘봉헌’입니다
    주님 봉헌 축일 (2014. 2. 2 말라 3,1-4; 히브 2,14-18; 루카 2,22-40)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지 꼭 “삼십 삼일”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이 주일이면서 봉헌축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더 깊은 의미를 새기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은

    아들을 낳은 산모가 성전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삼십삼 일’이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 동안에는 꼼짝없이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 조항인데

    딸을 낳은 산모의 경우에는

    “육십육 일 동안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니

    당시의 남녀 성차별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이 아들이었기에 망정이지

    딸이었으면^^

    봉헌축일이 삼십 삼일을 더 지나서야 거행했을 것이란 얘기가 됩니다.

     


    모세의 “산모 정결례”법에서

    오늘 우리 시선을 끄는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어린 양 한 마리와,

    속죄 제물로 바칠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바쳐야 한다는 부분입니다(레위 12장 참조).

    그러고 보면 오늘 요셉과 마리아의 형편이 짐작됩니다.

    그들이 고작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쳤다는 점을

    생각할 때,

    성가정의 살림살이 또한 우리네처럼 팍팍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리아의 정결예식에

    “양 한 마리를 바칠 힘”이 없어서

    비둘기 두 마리를 준비해야 했던

    요셉의 마음이 좀 쓰라렸을 것 같습니다.

    폼 나게 양 한 마리를 몰고 와서

    곁들이로 집비둘기를 바치고 있는 사람 곁에서

    약간 풀이 죽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우리의 봉헌생활을

    좀 더 면밀히, 좀 더 세세히 살펴보게 됩니다.

    봉헌을 고작 ‘몇 푼의 헌금’을 내는 것으로 오해하는 우리 마음에

    참된 봉헌의 의미를 새겨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말라키 예언자는

    우리의 의로운 제물만이 “주님 마음”에 든다고 말합니다.

    히브리 저자는 주님께서 낮은 세상에 오시어

    우리와 똑 같은 삶을 살으셨던 사실이야말로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의 자세였다는 것을 명백히 합니다.

    오늘 우리의 봉헌기준이

    이 기준에 맞갖은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 삶의 봉헌은

    사제나 수도자에 국한 된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많이 바치면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야말로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의미인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라키아 예언자를 통해서 약속하셨던

    바로 그 약속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할 제사장으로 선택된 사람입니다.

    때문에 세례는 온 삶을 봉헌하겠다는 맹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 것’을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봉헌은

    “정녕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모든 것은 당신에게서 오기에, 저희가 당신 손에서 받아 당신께”

    바칠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때문에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예물”을 바쳐야 합니다(1역대 29 참조). 

     봉헌이 주님께 바치는 내 온 것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봉헌은 믿음인의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마음과 몸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이제는 오직 그분의 사랑에 의탁하여 살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럼에도 숱하게 따지고 계산합니다.

    봉헌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일이며

    그분의 능력이 내 삶을 책임지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행위입니다.

    내 삶에 끼치는 그분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실력과 능력과 재력을 믿고 살아간다는 표지입니다.


    봉헌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만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봉헌은 

    하느님의 작업이며 완전하고 거룩한 삶을 지향하는 행위입니다.

    봉헌된 우리 모두를 축복하신 그분의 힘으로

    복된 승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꿈입니다.

    때문에 저는 언제나

    아이들 손에 쥐어줘도 콧방귀를 뀔 액수를

    주님께 헌금으로 바치는 마음 거북한 모습들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걸인에게 한 푼을 적선하듯이

    한 끼 식사 값도 되지 않는 액수를

    한 주일헌금으로 봉헌하는 민망한 일들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지난 성탄에 우리는 세례 때의 다짐을 새로이 했습니다.

    그로부터 삼십삼 일이 지났습니다.

    그 다짐과 각오를 다시 새기면 좋겠습니다.

    하여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약속에 더욱 의지하여 살아가기 바랍니다.

    마침내 그분의 기쁨이 되어

    ‘모든 은총을 넘치게 받는’ 의로운 이로 등극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 장재봉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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