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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3 조회수920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What do you want with me, Jesus,
son of the Most High God?
For God's sake I beg you, do not t, orment me."
He said this because Jesus had commanded,
"Come out of the man, evil spirit."
(Mk.5,7-8)
 
 
제1독서 2사무 15,13-14.30; 16,5-13ㄱ
복음 마르 5,1-20
 

히말라야 고산족들은 양을 사고 팔 때 특이한 방법을 이용해서 그 값을 정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의 일반적인 방법은 양의 크기에 따라서 값을 정하겠지요. 양의 무게가 많이 나가게 되면 높은 가격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낮은 가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고산족들은 특이하게도 양의 성질에 따라 값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의 성질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선 가파른 산비탈에 양을 풀어 놓고서는 살 사람과 팔 사람이 함께 지켜봅니다. 바로 이때 풀을 뜯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가면 아무리 작고 마른 양이라 할지라도 비싼 값이 매겨지게 되고, 비탈 아래로 내려가면 무게가 아무리 많이 나간다고 해도 높은 값을 쳐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산 위로 올라가려는 양은 지금은 힘이 들 수 있어도 곧 넓은 산허리에 이르게 되지만, 산 아래로 내려가려는 양은 지금 현재는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지만 곧 협곡 바닥에 이르게 되면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랍니다.

히말라야 고산족들의 양 매매방법을 보면서 험하고 힘든 우리의 삶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어렵고 힘든 길이 아닌 수월하고 편한 길만을 원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의 이익만 얻을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의 아픔과 상처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먼 훗날 우리 각자의 심판 날에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옳은 길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선택해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시선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바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영이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했고, 이를 예수님께서 허락하자 커다란 사건이 터집니다. 글쎄 더러운 영이 들어간 돼지 떼가 호수에 빠져 죽고 만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빠져나간 것은 모두가 축하할 일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로 치유되었음에 기뻐하기 보다는, 호수에 빠져 죽은 돼지 떼에 대한 재물적인 피해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했던 것입니다.

구원의 손길을 계속해서 내미시는 주님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물질적인 이익만을 생각하기에 그 손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닌, 쉽고 편한 길만을 찾아가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거부하는 우리가 아닌,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더러운 영의 유혹에서 벗어나 깨끗한 영혼을 소유한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적성순이에요. 지금 청춘이 할 일은 성적을 올리는 게 아니라 적성을 찾는 거예요. 강한 자가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오래 살아남듯이(주철환).

 
악령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봉헌의 삶을 살자

어떤 책에서 본 글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대로 옮겨 봅니다.

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생활을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만 훗날 그 시간을 돈으로 되살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언젠가 쉬게 될 날을 꿈꾸며 일생을 보낸다. 마침내 그런 날이 왔을 때 그들은 너무 늙어 인생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온 것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여기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쩔 수가 없었어.”

둘째, 마찬가지로 생활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타인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충실히 이행하는 일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일을 우리는 ‘봉헌’이라고 칭한다. 가령 두 사람이 같은 재료를 사용해 같은 요리를 한다고 하자. 한 사람은 요리에 사랑을 쏟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저 배나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요리를 한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무게를 달수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만들어낸 요리는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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