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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言)에 대한 성찰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4 조회수632 추천수4 반대(8)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한담청론                   


                                    말(言)에 대한 성찰                     


                                  
                                                                                                  지요하 소설가


사람의 인격.품성 드러내
예부터 가치 지키려 노력
최근 거짓말 등 타락현상
안행일치로 ‘신뢰’ 다져야


말은 얼이며 생명이다. 말이 있어 신도 존재하며 세상이 돌아간다. 말은 기억의 유형(有形)이며 글의 모태이다. 인류는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에는 오로지 말로써 모든 기억을 유지시켰다. 말에 의해 생성된 문자로 기억을 기록하게 되면서 인류는 기억력의 둔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자계산기가 출현하면서 인간의 암산 능력이 저하되고, 내비게이션이 상용화되면서 지리 습득 능력이 퇴화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계 문명의 창성 가운데서도 말은 여전히 생명력이 유지된다. 어떤 형태로든 소통의 기본은 말이며, 말로써 모든 문명이 발전하고 꽃을 피우고 성격도 정립된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언어는 ‘정신의 집’이다. 언어를 통해 개인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로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이고 품성이며,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하지만 말은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만 가치가 살아나고 생명력이 유지된다. 세상에는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다. 감언이설과 왜곡이라는 것도 있고, 흑색선전과 대중조작이라는 것도 있다. 또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것들로 인해 말의 타락 현상이 생겨나기도 한다.

인류는 말의 가치와 생명력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부단히 계속해왔다. 언행일치를 삶의 지표로 삼으려는 노력들도 있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또 말의 품위를 지켜내려는 경구들도 많이 만들어냈다. 기계문명 덕에 우리는 오늘 마우스 하나로 앉은 자리에서 말에 관한 수많은 명언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자와 노자를 비롯한 세계의 위인들이 설파한 말에 관한 경구들 외로,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서 생겨난 속담들도 있다.

요즘에는 말에 관한 우리나라 속담들이 자꾸 떠오른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든가, ‘말 한마디로 천량 빚도 갚는다’ 등등이다. 정치권에서 파생하는 말들을 듣노라면 절로 그런 속담들이 떠오른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이 순리일 텐데,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라는 억지가 통용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자신의 과거 언행 따위는 깡그리 잊거나 무시하고 오늘 공격적인 말을 위압적으로 내지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식의 행동들이 거칠게 나타난다. 기계문명 덕에 어제의 일들이 고스란히 여러 가지 형태로 기록되어 재생되고 있건만, 그런 것은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오늘의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이던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퍼부었던 온갖 패악적인 말들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씨’자만 붙여도 격앙하는 행태 등이 그것의 적나라한 표본이다.

거짓말과 공약 바꾸기와 과거 지향적이고 반민주적인 언어들은 한마디로 말의 타락 현상을 심화시키는 행위들이다. 말이 타락하는 현상 속에서 ‘신뢰’라는 것은 아예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말을 타락시키는 사람들은 대개 국어에 대한 애정이나 자존심이 없고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 국립묘지와 소설가 고(故) 박경리 선생의 빈소를 찾았을 때 방명록에 남겨놓은 짧은 글귀는 그것을 생각하게 한다. 주어와 술어가 조응하지 못하는 단문의 재미있는 표본이기 때문이다. 퇴임 후 4대강의 심각한 녹조 현상에 대해 “강이 살아나는 증거”라고 말한 것은 후세에도 길이 남을 ‘묘언(妙言)’의 압권이다.

주어와 술어가 조응하지 못하는 형태의 단문과 그 짧은 글귀 안에 맞춤법이 틀린 글자가 여러 개일 정도로 국어 실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실용’을 앞세워 영어 제일주의, 영어 숭상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그것 또한 기묘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와 같지 않겠지만, 정치권이 선도하는 이런저런 말의 타락 현상과 국어학대 현상들을 연관하면 박 대통령이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그 나라 말이나 영어로만 연설을 하는 것에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대전일보> 2014년 2월 4일(화) 18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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