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마음으로 전례를] 성찬의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 III. 성찬의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3~57항 참조) 우리가 교회와 성체성사의 깊고 풍요로운 관계를 재발견하고자 한다면,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모범이신 성모님을 소홀히 여길 수 없다. 성모님께서는 이 지극히 거룩한 성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이 거룩한 성사로 이끄실 수 있다. 1) 우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는 첫 공동체에서 “마음을 모아”(사도 1,14) 기도하던 사도들 가운데 성모님께서 계셨음을 알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빵을 나누어 먹는 일에 전념한”(사도 2,42)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성찬례 거행에 분명히 함께 계셨을 것이다.(53항) 그러나 성모님께서 성찬의 잔치에 참석하신 일 외에도, 우리는 성모님의 내적 자세에서 성모님과 성체성사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성모님께서는 온 생애를 통하여 ‘성체성사의 여인’이시다. 성모님을 모범으로 삼고 의지하는 교회는 성모님께서 이 지극히 거룩한 신비와 맺고 계시는 관계에서도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2) 성체성사가 하느님의 말씀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기를 요구할 정도로 우리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신앙의 신비라면,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갖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성모님 밖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신 것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또한 주저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고 하시며 그분께 순명하라시는 성모님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성모님께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보여 주신 어머니다운 관심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주저하지 말고 내 아들의 말을 믿어라. 그가 물을 술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면, 빵과 포도주도 그의 몸과 피가 되게 하고, 이 신비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부활의 생생한 기억을 전해 줌으로써 ‘생명의 빵’이 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54항) 3) 어떤 의미에서 성모님께서는 순결한 당신의 태를 하느님 말씀의 강생을 위하여 바치심으로써 성체성사 제정 이전에 이미 성체성사의 신앙을 실천하셨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면서 또한 강생의 연속이기도 한다. 주님의 탄생 예고 때에 성모님께서는 몸과 피라는 육체적 실재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성모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시는 모든 신자 안에 성사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당신 안에서 선취하셨던 것이다. 성모님께서 천사에게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말씀하신 것과 모든 신자가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실 때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유사점이 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도록 요청받으셨다(루카 1,30-35 참조). 동정 성모님의 신앙과 일치하여, 우리도 성체성사의 신비를 통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성모님의 아드님이시기도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그분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으로 현존하심을 믿도록 요청받고 있다.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카 1,45). 성모님께서는 또한 강생의 신비로써 교회의 성체성사 신앙을 선취하셨다.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 성모님께서는 이미 사람이 되신 말씀을 잉태하고 계셨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현존하신 역사상 최초의 ‘감실’이 되셨다. 성모님의 태중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직 우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시나, 말하자면 성모님의 눈과 목소리를 통하여 당신의 빛을 비추심으로써 엘리사벳의 흠숭을 받으셨다. 갓 태어난 그리스도를 품안에 안고 들여다보시는 성모님의 기쁨에 넘치는 그 눈길이야말로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비할 데 없는 사랑의 모범이 아니겠는가?(55항) 4) 성모님께서는 해골산에서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예수님 곁에 계시면서 성찬의 희생 제사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를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가셨을 때(루카 2,22) 늙은 시므온은 성모님께 이 아기가 장차 “반대의 표적”이 되고 예리한 칼이 성모님의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루카 2,34-35 참조).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형의 비극은 이렇게 예고되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십자가 아래 서 계신 고통의 성모님(Stabat Mater)도 예시된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날마다 해골산을 준비하면서 일종의 ‘선취된 성찬례’를 경험하셨다. 이는 다시 말하면 당신 아드님의 수난과 일치함으로써 절정에 달하고 부활 뒤에 사도들이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거행한 성찬례에 참례함으로써 드러나게 될 갈망과 봉헌의 ‘영적 친교’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그리고 다른 사도들의 입에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라는 최후 만찬 때의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성모님의 느낌은 어떠하였겠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시고 성사적 표징 아래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몸은 바로 성모님께서 당신의 태중에 잉태하셨던 그 몸이었다! 성모님께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신의 심장과 하나 되어 고동친 그 심장을 당신의 태중에 다시 받아들이고, 십자가 아래서 겪으신 일을 다시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였을 것이다.(56항) 5)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성취하신 모든 것이 해골산의 ‘기념제’ 안에 현존한다. 따라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당신 어머니께 해드린 모든 것도 현존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를 성모님께 맡기셨으며, 그 제자를 통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맡기셨다. 성모님께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이다.” 하고 말씀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이렇게 말씀한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참조).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이러한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요한처럼 우리의 어머니로 새롭게 우리에게 맡겨지신 분을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모셔 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동화되고자 노력하는 여정에서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학교에 들어가 그분을 우리의 동반자로 모셔 들인다는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교회와 함께 계시며 교회의 어머니로서 현존하신다. 교회와 성찬례가 서로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면, 성모님과 성찬례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모님을 기념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서방과 동방 교회의 성찬 거행의 변함없는 일부가 되어 왔던 것이다.(57항) IV. 성모님과 일치하는 성찬의 전례(레지오 교본의 가르침) 레지오 단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늘 성모 마리아와 한 마음으로 일치하여 행동해야 한다. 그 일치는 미사성제, 곧 성찬전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신 아들의 몸인 성체와 깊이 일치되어 계신 성모 마리아는 우리 신자들을 성체께로 인도하시는 ‘성체의 모후’이시다(레지오 교본 8장 4항, 80쪽 ; 9장 1항, 84쪽 ; 40장 4항, 477쪽 참조 ; 구세주의 어머니, 44항). 성모 마리아는 우리 생명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실 때부터 ‘성체의 모후’가 되셨다고 할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생명의 빵집’이시니, 그것은 예수님이 ‘빵집’을 뜻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그가 누여지신 곳이 ‘구유’(소먹이통)였음으로 상징되는 바,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빵이시고,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신 마리아는 생명의 빵인 성체의 모후, 성체의 어머니이신 것이다. 가난한 목동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오고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를 드렸듯이 성모 마리아는 우리 신자들이 미사성제에 기꺼이 찾아와 생명이신 성체를 경배하고 모시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교회가 미사, 성찬 전례에서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것은 성모님께서 미사성제에서 제관이요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제직에도 깊이 관련을 맺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구세주의 생애 전체에 깊이 결합되어 계셨고, 인류를 대표하는 ‘여인’(요한 2,4 ; 19,26 참조)으로서 십자가상의 제사에도 동참하셨다.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마리아 공경’도 성찬의 전례와 관련하여 마리아를 십자가상 제사에서 아드님과 함께 ‘봉헌하는 동정녀’로 소개하고 있다. “갈바리아 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치셨고(히브 9,14),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서서(요한 19,25 참조) 당신 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다.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고(교회헌장 58항) 당신 자신까지도 영원하신 성부께 봉헌하셨다.”(마리아 공경 20항 ; 50-51쪽) 레지오 교본은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십자가 제단 곁에 계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사 제대 곁에도 어머니로서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그리스도교 백성들은 성찬의 전례에서 마리아의 모성을 특별히 이해하고 체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이 미사를 올바로 봉헌하기 위해선 예수님의 어머니시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모성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마땅하다. 성모님께 대한 효성의 마음과 함께, 성모님의 마음과 자세로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은 마리아의 의향과 일치하여 갈바리아의 숭고한 희생의 계승인 미사에 가급적 자주 참례하고 영성체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 마리아와 일치하여 성찬의 전례에 참여한다면 미사 후 제대를 떠날 때에도 마리아는 당신의 단원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로 하여금 당신이 맡고 계시는 은총의 관리 직무에 한 몫을 들게 하실 것이다. 성모 마리아께서 맡고 계시는 은총의 관리 직무란 하느님의 자녀들이요 성모님의 자녀들인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받도록 전구하시고, 신자들을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에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 구원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친교에 이르도록 하시는 직무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2월호,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광주대교구 대치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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