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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악의 평범성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7 조회수936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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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7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집회47,2-11 마르6,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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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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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 중 떠오른 주제는 ‘악의 평범성’입니다.

요즘 회자되는 말 역시 '악의 평범성'입니다.

평범하기에 악을 식별해 내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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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이란 말은 유태계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로부터 유래됩니다.

얼마 전 읽은 강론 내용 일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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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의 유태인 학살을 지휘한 나치 전범 아돌포 아이히만은 필시 괴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아이히만은

당시에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독일사람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정권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고,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유의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은 비판의식의 부재로 나타났습니다.

세상에 악이 창궐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악의 평범성 때문입니다.

세상의 악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힘든 것도 바로 악의 평범성 때문입니다.-(조 현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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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감생활을 하다 살아남았던 그러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탈리아 문학가 쁘리모 레비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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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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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 모두를 향한 말 같습니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있다’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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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듣는 ‘좋은 게 좋은 거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모두 식별해내기 어려운 악의 유혹과도 같습니다.

적은 분명 있는데 보이지 않는 적이 악이기에 참 대처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예전 초등학교 교사시절, 선배동료 교사와의 주고받은 문답도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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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 쉽게 살아.”

못 마땅한 표정의 충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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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이게 쉽게 사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대답할 수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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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을 죽게 한 장본인인 헤로데 임금을 통해 깨닫게 되는 악의 평범성입니다.

다음 대목을 보면 헤로데는 악인이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선량한 사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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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예수님의 출현에 세례자 요한을 죽인 양심가책으로 인해 전전긍긍 불안해하는 모습에서

모질지 못한 여린 마음이 들어납니다.

‘.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고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 하면서도 기꺼이 듣고 하였기 때문이다.’

아주 호감이 가는 착한 인물 헤로데처럼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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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전혀 악인이라 볼 수 없는 헤로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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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우유부단하고 분별력과 결단력이 부족한 헤로데요

마침내 본의 아니게 악의 도구가 된 헤로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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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가 중심이 확실한 사람이었다면 단호히 악을 거부하여

세례자 요한을 죽음에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나,

이런 어둠 가득한 구조악의 분위기 안에서 그렇게 살기는 깊은 내공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

어제 고백신부님의 조언 중 뜻밖의 다음 말씀이 고무적이었습니다.

“우리 재속신부들도 평신도들도 아니고 서울 동쪽에 있는 요셉수도원이 서울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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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말씀 같지만 새삼 우리 수도원의 위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빛, 세상의 빛, 바로 이게 수도원의 존재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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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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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단 하나, 주님의 빛으로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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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방안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한개의 촛불입니다.

주님 현존의 빛이 되어 살아갈 때 저절로 사라지는 악의 어둠입니다.

말 그대로 주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될 때 비로소 세상의 빛으로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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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헤로데 임금과 1독서 집회서의 다윗 임금의 대조가 재미있습니다.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중심’의 유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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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가 중심이 없는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다면

다윗은 하느님 중심이 확고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을 때는 악의 어둠이 그를 지배하지만 하느님 중심이 확고할 때

주님의 빛이 악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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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 대한 인상적인 묘사입니다.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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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하느님만을 찾는 우리 수도승들의 모델 같은 다윗입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다윗의 존재는 그대로 주님 빛의 현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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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든 공동체든 이런 주님 빛의 현존되어 살아 갈 때 어둠의 악은 저절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악의 평범성 문제도 저절로 해결됩니다.

악과 싸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빛 되어 사는 게 악을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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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우리 모두 주님의 빛으로 살게 하는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가 그리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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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악의 어둠 가득한 세상에 우리 모두 당신의 빛들로 파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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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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