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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산책] 2월8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8 조회수636 추천수13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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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8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R) - 마르 6,30-34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피세정념(避世靜念)>

 

 

둘씩 짝지어 현장 사목 실습을 떠났던 제자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사명과 그에 따른 능력을 부여받은 제자들의 사목실습은 그야말로 대대적인 성공이었습니다. 제자들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벙벙했었는데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그 놀라운 기적적인 치유와 구마활동을 자신들의 손으로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목실습 대상자들을 만났습니다. 별의 별 케이스를 다 접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돌아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체험담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마침내 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그래, 다들 고생 많았다. 성공적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그럼 우리 축하주라도 한잔 할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이 말은 다름 아닌 피정을 좀 하란 말입니다. 피정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데 피세정념(避世靜念)을 줄인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마디 그대로 복잡한 일상생활을 피해() 고요한() 곳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일입니다. 요즘은 피정에 대해서 주님과 함께 하는 휴식, 주님 안에서의 쉼이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3년간의 공생활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홀로 광야로 들어가셔서 40일간의 긴 단식침묵 개인 피정을 실시하셨습니다. 피정기간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진정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어디 있는지 헤아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 당신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빵과 권력과 재물이라는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용감히 맞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피정을 보면 우리의 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즉시 답이 나오는군요.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는 시기가 피정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시기가 피정입니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무질서한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기가 피정입니다.

 

알폰소 성인께서는 피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간단하게 세 문장으로 요약해주셨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들어오십시오. 홀로 머물러 있으십시오. 새 사람이 되어 나가십시오.” 간단하지만 정말이지 다 들어있군요. 피정에 참석할 때 좋은데 가서 좀 놀다오지하는 마음으로 적당히 설렁설렁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꼭 하느님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겠다는, 하느님의 뜻을 찾겠다는, 그분의 현존을 체험해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뭔가 반드시 영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간절한 마음도 중요합니다. 피정에 들어올 때는 온전히 비우고, 온전히 내려놓고 온전한 마음으로 그렇게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홀로 머무는데, 그냥 홀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 홀로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홀로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침묵입니다. 하느님을 느끼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과 대화하기 위해 침묵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피정 집을 나설 때는 피정 전의 세속에 찌든 내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새로운 나로 거듭 나서 피정 집 문을 나서라는 것입니다.

 

피정이란 말의 의미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이런 것인 듯합니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못하는 죽음의 삶에서 깨침의 삶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은총을 체험하는 순간. 더 이상 어두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속박 받지 말고, 그저 지금 이 순간 충만한 하느님 자비에 푹 잠기는 것. 바로 지금 이순간이 천국이고, 지금이 구원의 때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그러기 위해서 은혜로운 하느님의 말씀을 꼭 붙들고, 말씀에 머물러 지내는 은총의 순간. 결국 우리 매일의 삶, 인생 전체가 피정인 것을, 그래서 피정처럼 인생을 살고, 인생처럼 피정을 하는...”

 

지난 연례 피정 중 들길을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먹장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있었기에 서둘러 피정 집으로 발길을 돌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먹장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구름이 걷히면서 맑은 하늘이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투명하게 열린 하늘 앞에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노라면 반드시 내 인생의 하늘에도 지금의 이 먹장구름이 활짝 걷히고 저리 고운 옥색하늘이 열릴 거야.’ 퀴퀴하고 꼬질꼬질해보이던 내 인생이 갑작스레 그런대로 봐줄만한 인생으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체험이었습니다. 피정의 결실이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연이어 이런 생각들이 제 머릿속을 강타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이며 환희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하느님 자비와 은총 안에 있다는 표시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표현입니다. 우리 평생의 과제는 삶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가장 큰 선물임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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