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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통공의 신비’에 대한 상념
작성자구갑회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8 조회수472 추천수3 반대(4)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생활하는 복음 3_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 마태 5, 17-37  



                            통공의 신비’에 대한 상념


                                 
                                                                                                         지요하




고등학생 시절 사고를 친 일이 있다. 1학년이 끝나가던 겨울방학 동안에 생긴 일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불량기가 있는 어른 한 사람과 시비가 붙어 주먹질을 했다. 다음날 그 어른이 경찰서에 고소한 사실을 알고 서울로 도망을 가서는 한 여인숙에서 되게 고생을 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가서 아버지 앞에 몽둥이를 놓고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는 몽둥이를 들어 마당으로 내던지고는 일제 강점기 때 일어난 광주학생의거와 신의주학생의거는 고등학생들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했다. 또 4.19학생의거도 처음에는 고등학생들이 일으킨 일이라고 했다. 그런 선배들을 생각하며 부끄러워하라고도 했다.

무기정학을 당했다가 새 학기 초에 복귀를 할 때는 학교에 반성문을 써야 했는데,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그 얘기를 썼다. 광주학생의거와 신의주학생의거, 또 4.19혁명을 일으킨 선배들을 본받아 모범생이 되겠노라고 했다. 나는 성실하게 생활해서 졸업을 할 때 ‘공로상’을 받았다.

집단폭행 사건으로 고소를 당했던 일도 무마가 되었다. 고소를 한 사람이 돈을 받고 고소를 취하해서 우리는 경찰서 문턱을 드나들지 않았다. 부모님께 면구스럽고 죄스러웠던 마음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량없지만….

‘화해하여라’라는 말씀을 접할 때면 불현듯 옛날 그 일이 생각나기도 한다. 금전을 매개로 하는 ‘합의’가 화해까지 포함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경찰서까지는 가지 않았으니 복음말씀과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형국일 것도 같다.

세상의 일을 놓고 보면 경찰서를 거거나 법정까지 간다고 해서 곧바로 형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경찰서나 검찰청, 또 법정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 재판장은 형벌을 내리더라도 보석이나 집행유예 등으로 피고인을 풀어줄 수도 있다. 세상의 법정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법정에는 ‘화해’의 여지가 없다. 이 세상에서의 원한 관계나 죄과들을 말끔히 털고 가야지, 세속의 죄업들을 그대로 안고 간다면 곧바로 감옥행이다. 하늘의 법정에는 법리도 없고, 검사와 변호인의 논쟁도 없다. 세상의 죄를 안고 간 영혼에게는 감옥행만이 있을 뿐이고, 그 감옥은 지옥과 연옥, 두 개로 나뉠 뿐이다.

지옥이라는 이름의 감옥은 한 번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연옥이라는 이름의 감옥에는 출소의 희망이 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한 닢까지’ 갚고 나면 그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신세가 무슨 재주로 마지막 한 닢까지 갚나. 감옥에 갇힌 영혼은 아무런 힘도 방편도 없다. 그러므로 감옥 밖에서 누군가가 감옥 안의 영혼을 위해 공력을 들여야 한다.
      
언젠가 불현듯 복음 안의 그 감옥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연옥’임을 느끼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또 어느 누군가와도 화해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원한 관계와 죄과들을 안고 하느님께로 간다면 지옥은 모면하더라도 연옥은 피할 수가 없다. 하느님을 믿었다 해서 무조건 천당을 간다면 천당은 너무도 가기 쉬운 곳이 된다. 천당에 가기 위해 온갖 착한 일 다 하고 죽어라하고 공덕을 쌓을 필요도 없다. 믿음만 갖고 적당히 살아도 천당에 간다면 그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다. 순교자들이 우스워질 노릇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알려주셨다.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티끌 하나도 남지 않는 ‘정화’를 이르는 말이다. 영혼들이 세상의 죄를 깨끗이 벗겨내고 정화되는 곳이기에  연옥을 일러 ‘정화교회’라고 한다. 정화를 이루면 그 감옥에서 나와 천당에로 갈 수 있으니, 연옥은 천당과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또 연옥영혼의 정화는 지상교회에서 오는 공력으로 이루어질 있으니, 지상교회와도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천당(천상교회)-연옥(정화교회)-세상(지상교회) 사이의 소통, 통공(通功)의 원리는 그대로 ‘신앙의 신비’다.


지요하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충청남도문화상 등 수상했으며, 소설집과 시집 등 저서 15권 출간하였다. 대전교구 태안성당 총회장 역임했고, 현재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우리신학연구소’ 발행 월간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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