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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원준 박사님의 구약성경과 신들/ 제2강 구약성경의 무대, 고대근동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8 조회수1,722 추천수3 반대(0) 신고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 구약성경의 무대, 고대 근동

 

 

교역의 요충지에 있던 약소국



  구약성경의 무대는 지금의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등이 있는 중동 지역이다.

그렇다면 고대(古代)는 어느 시대를 가리킬까?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군을 이끌고 동방을 원정해 페르시아 제국을 붕괴시켰다.

이때가 B.C.332~B.C.330년께다. 토착 지배민족인 페르시아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종말을

맞았다. 그래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고대 근동의 종말'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의 시간적 무대는

인류 최초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시작된 B.C.3300년부터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시기까지다.
 
 #구약신학과 구약학
 '구약신학'은 구약성경의 신학이다. 구약성경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구약학'은 구약성경과 관련된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 구약성경 언어인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도 구약학의 대상이다. 구약학은 언어와 사회ㆍ역사학적 접근을 비롯한 고대 근동 문화와

 종교까지 다룬다.

 구약학은 구약신학의 기초다. 신학적으로 말해 구약신학은 구약학의 꽃이다. 구약학과 구약신학은

고대근동학의 기반 위에서 더욱 풍부해진다.

 고대 근동은 하나의 '세계'였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들은 활발히 교류하면서

살았다. 실제로 이집트에서 인기가 높았던 오시리스 신상은 아나톨리아 반도와 유프라테스 강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이집트 파라오의 문서 창고에서는 동쪽의 아시리아 제국에서

보낸 외교문서가 상당히 발견됐다.

 이스라엘은 교역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중요한 교통로에 있는 고대 이스라엘에 고대

근동의 문물이 흘러들어오고 나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장사를 했다. 주변 민족과 물건을 교환하고 영수증을 주고받았으며,

편지와 외교문서를 교환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또는 중국의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주변 민족과 교류하면서 상대방 문화와 종교에 익숙해졌다. 고

대 이스라엘 문화는 이렇게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다채롭게 뒤섞인 문화를 먹고 자랐다.

 고대 이스라엘은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약소국이었지만, 하느님은 이집트나 바빌론과 같은

크고 강한 나라를 선택하지 않으셨다. 강대국 속에 끼인 작은 나라를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하느님은 언제나 작고 약한 존재를 통해서 당신의 큰 뜻을 이루신다. 구약성경에 고대 근동 신화의

자국이 크게 남은 이유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신화적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다. 풀과 나무와 짐승에 영험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고, 하늘과 산을 섬기는 일을 당연시 여겼다. 합리주의와 과학의 언어에 익숙한 현대인은 고대

근동 종교의 종교심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하늘과 달, 바람, 강 등을 말할 때 하늘은 저 높이 우주까지 뻗은 공간이고, 달은 지구의 주위를

도는 행성이며,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고대 근동인들은 하늘은 거룩한 신이 또는

신들이 사는 곳으로 여긴다. 달은 밤하늘의 별을 지배하는 존재이며, 바람은 성령처럼 우리에게 불어와

하느님 숨결을 알려주는 존재라고 여긴다.
 
 #신화의 언어라고?
 신화를 공부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많다. 비과학의 언어, 혹은 낡은 언어로 여긴다.

고대 근동 신화의 언어를 알아야 구약성경의 내용과 고대인들의 정서를 알 수 있다.

 신화는 과학과 달리 '의미'와 '상징'을 전달한다. 의미와 상징을 표현하고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이다.

구약성경은 신화적 언어와 매우 비슷한 언어로 쓰였다. 성경은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더 심원한 것,

단순한 사실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약성경에는 신화의 언어가 매우 풍부히

사용되고 있다.

 구약성경은 하느님 말씀이자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경전이다. 구약성경은 분명히 하느님 한 분께만 정성과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고대 국가의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배경, 곧 고대 근동 세계를 이해해야 구약성경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의 모든 표상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 밑바닥에 수천 년간 일어났던 다양한 교류와 소통이 전제됨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이 이웃 민족 종교에 상당히 적극적이고 열린 자세로 대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웃 종교의 다양한 표상을 접하며 깊이 성찰했고, 고유한 자신의 신앙으로 결국 훌륭하게 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고대 근동 종교의 표상들은 구약성경을 풍부하게 살찌웠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제2강 구약성경의 무대, 고대 근동

 

안녕하세요? 예, 성호경 긋고 시작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 일 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예, 반갑습니다.

자, 저번 시간에 제가 주로 이제 제 소개를 하고 책 소개 하고 왜 이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책의 핵심 결론은 무엇인지 아주 짧게 말씀드렸고요.

이번 시간에는 이제 준비 운동 같은 시간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배경 지식은 도대체 고대 이스라엘은 얼마나 먼 세계이고

거기에서는 고대 근동은 어떤 세계인가라는 것을 여러분들한테 쉽게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준비 운동 같은 시간인데요. 운동을 할 때도 준비 운동을 잘

해야지 본 운동이 잘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번 시간을 잘 들어 놓으셔야지 이 다음 시간

부터 20번 넘는 강연을 잘 들으실 수가 있을 겁니다.

 

이번 시간은 조금 약간 신경을 세워서 들어주시는 것이 좋고요. 특별히 뭐 어렵게 생각할

거는 없으세요. 쭈욱 제 말씀을 따라와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은 구약 성경의 첫째는

무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근동인가? 중동인가?

 

고대 근동은 어느 장소 어느 시간인가? 그리고 구약 성경은 얼마나 먼 시대의 사람들이

만든 것인가? 우선 첫째 시간은 지리적인 면을 보겠습니다.

 

 

 

이 지역을 여러분들 아시죠? 이스라엘, 이라크, 이란, 이집트. 요즘 정치적으로 아주

시끄러운 지역인데 우리는 현대를 보는 게 아니라 고대를 보는 겁니다. 굉장히 넓은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여러분들 이 지역을 사람들이 근동이라고도 하고 용어 하나를

설명하려고 하는데요. 근동이라고 하기도 하고 중동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느 게 맞죠? 근동하고 중동 중에. 중동이 맞죠? 굉장히 수준 높은 방청객이 오셨습니다.

근동은 가까울 근자를 써가지고 가까운 동쪽이다. 중동은 가운데 중자를 써가지고 중간의
동쪽(Middle East)이다라는 뜻이죠.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유럽 중심주의가 근동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어요.

 

 

* 근동(近東):가까운 동쪽   * 중동(中東): 가운데 동쪽

* 근동(近東)이란 단어는 유럽 중심주의의 산물

 

유럽을 중심에 놓고 보면 유라시아는 이라크, 이란 있고 이집트 있는 동네는 가까운 동쪽

이니까 근동(Near East) 이렇게 표현을 하고. 우리나라 같이 중국, 한국까지 저 먼 동네는

극동(Far Mast) 저 끝에 있는 동쪽이다해서 극동. 이렇게 표현을 하죠.

 

그런데 이제 이 용어가 왜 유럽을 중심에 두고 얘기하느냐? 그럴 필요없다. 우리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놓고 보자면, 요 이집트, 이라크 있는 요 동네는 중동, 가운데 있으니까 중간

쯤 동쪽이고 극동은 맞아요. 우리는 어차피 맨 끝에 있으니까. 그래서 이걸 중동으로 지칭

을 해야지 맞는다라고 해서 요즘은 용어가 다 바뀌었어요. 그래서 현대적인 사건을 언급할

때는 똑같은 지역을 중동이라고 합니다.

 

* 현대적 사건을 일컬을 때는 주로 '중동'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서 미국의 중동 정책 할 때. 중동이죠?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면은 중동전이죠.

근동전이라고 안 하죠? 그 다음에 뭐 예를 들면은 우리가 여행을 간다 그러면 중도 여행.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죠. 그런데 이 지역을 근동이라고 일컫던 시대의 용어가 학문적으로

정착이 되어 아직도 쓰이고 있어요.

 

그래서 그 용어를 아직도 가톨릭 교회에서 많은 또 고대 근동학 하시는 분들이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고대 사건을 일컬을 때, 아주아주 옛날 사건을 일컬을 때는 중동임에도 불

구하고 근동이라는 말을 써요. 그래서 고대 근동학, 고대 근동의 문화, 고대 근동의 종교

이런 용어를 씁니다.

 

* 고대 근동학, 고대 근동의 문화, 종교 등 고대의 문헌과 문물을 말할 때는 '근동'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언젠가는 이 용어도 학계에서 바뀔 것 같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많이들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대 근동 이렇게 얘기 하는 거는 중동이라는 용어를 제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학계의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이

우리보다 얼마나 먼 시간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게 그냥 몇 천년 전이다 그러면

그렇게 지나가는 거 같은데 시간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느낌을 조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고대 근동, 얼마나 오래된 과거인가?

 

고대 근동이라고 그러면 고대, 옛고자(古)를 쓰지요? 아주 먼 옛날이라는 뜻인데 고대라는

말도 되게 많은 뜻을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어려분 조선이 고대인가요? 조선시대가?

흔히 조선을 고대라고까지는 안 하죠? 고려시대는 고대인가요? 왠지 그런 거 같지요?

약간. 삼국시대, 원삼국시대, 고조선은 더 고대인 것 같고.

 

여러분 머리 속에 두 칸을 만들어 보시면 좋을 거 같애요. 두 칸의 방을 만드시는데 이게

한 칸이 천 년짜리 방이예요. 그래프로 나가도 좋고. 그러면 우리는 2천 년대에 지금 살고

있죠? 21세기이니까. 그리고 가운데쯤 오면은 서기, 기원후 천 년쯤 되고 끝에 가면 0년.

예수님이 나신 해가 되는 것이죠.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뭐 자동차, 전기 이런 것들이 다 언제 나왔느냐 하면은

산업혁명 이후에 나왔거든요. 산업혁명이 언제냐 하면 18세기예요. 그러니까 이 첫 번째

칸에서 2백년 밖에 안 가는. 진짜 얼마 안 되는 것이죠. 한글의 창제가 언제죠? 15세기,

14세기 뭐 15세기 잡죠. 15세기 잡으면 두 번째 칸에서 가운데 정도밖에 안 오는 거예요.

굉장히 가까운 과거죠.

 

 

 

여러분 국사 시간에 예전에 고려 시대가, 고려조가 언제 창립이 되었는지 기억나세요?

저도 기억이 안 나서 인터넷 찾아봤어요. 어제 밤에. 그랬더니 고려가 창립한 게 918년

이라고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된 거 같은데 천 년 칸 간신히 조금 지나서

가운데쯤 있는 것입니다.

 

로마시대. 굉장히 오래된 거 같죠? 로마시대가 언제 멸망했는지 아세요? 로마시대는

AD 한 500년 정도에 멸망했다고 나와요. 둘째 칸에 가소도 다 못 가고 한 중간 정도

오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실은 최근 한 4백에서 5백년 정도에

르네상스 아니면 종교개혁 아니면 뭐 산업혁명. 유럽에서 많이 발전한 혁명들 몇 가지를

거친 다음에 만들어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이 시대는 사실은 얼마되지 않은 거예요. 이 시대를 벗어나면은 그 전 시대 사람들은

자동차도 없었고, 전기도 없었고, 기차도 없었고, 굉장히 다른 세계에 살았어요. 그죠?

그리고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는 것도 몰랐죠. 더 자기네 나라 요거 몇 개만 알고 살았

던 거죠. 지구가 이렇게 글로벌 하다는 것도 잘 몰랐고요.

 

로마가 멸망한 것이 대강 이제 5세기 정도라고 여러분한테 말씀드렸는데 로마시대가

서양에 있을 때 중국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명멸(明滅)했어요. 여러분 진시황제 아시죠?

굉장히 오래된 나라죠? 진나라가 인터넷에 또 찾아보니까 건국한 게 기원전 221년,

그리고 그보다 조금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가 기원전 206년, 우리나라 원삼국 시대가

기원전 1세기. 그러니까 두 칸 조금 지나 가지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이 태어난 해는 AD 0년이죠. 생각해 보시면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분들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분들이 별로 없어요. 그죠? 예수님이 굉장히 오래되신 분이예요. 굉장히

특이한데 예수님 시대에 사셨던 우리 원삼국 시대 그러면 그때 나온 우리 글도 못 읽고요.

그때 나온 어떤 것도 하나도 모르죠? 그때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먹었

는지, 이런 거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우리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요. 이게 바로 신앙과 교회의 힘이, 기도하고

예수님을 우리가 그토록 가까이 살고 있다는 거 자체가 어쩌면 기적에 속하는 일일 거예요.

인류사에서. 알렉산더 대왕을 여러분 아세요? 알렉산더 대왕 많이 나오죠? 알렉산더 대왕

그러면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그리스에 군대를 데리고 이 고대 근동지역을 전부다 점령했던

왕이거든요. 이 지역을 전체를 통틀어 통일했던 왕이예요.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을 전체를 통일해서 이지역 사람들은 그때부터 헬레니즘

문화를 접하게 되었어요.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를 말하는 것이죠. 철학자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이런 분들이 있고 유명한 극작가, 과학 이런 게 많이 발전을 해서

이 지역 사람들이 헬레니즘 문화를 듣게 되었죠.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을 다 점령하고 인도로 갈려다 죽었죠. 그때가 언제냐하면,

기원전 330년 또는 332년 잡죠. 그런까 아까 두 칸을 만드셨죠? 두 칸에서 300년 정도 조금

만 더 가면 그때가 알렉산더 대왕인 것이죠. 그때만 해도 굉장히 오래죠. 천 년을 두번 넘

어서.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에 살던 알렉산더 대왕한테 점령을 당했던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기억나세요? 페르시아 제국이예요. 페르시아 지역은 그보다 더 오래된 제국

이었죠.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과 이 그리스 사람들은 말이 달랐어요. 그리스는 유럽 사람들이라

유럽말을 했다고요. 지금의 라틴어나 아니면 서양 말 뭐 영어, 독일어 이런 말들이나

구조가 비슷한 그런 인도 유럽어를 썼었고,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페르시아어는 물론

다른 말이지만 대체로  셈어를 썼어요. 아랍어나, 히브리어나, 이집트어. 이런 것들이

다 셈어에 속하는 나라 말이죠.

 

여러분 알렉산더 대왕이 들어오면서 이 지역에서 이제 유럽 사람들이 들어와서 유럽에

헬레니즘 문화를 퍼트릴 때가 고대 근동의 끝이예요. 거기서 고대 근동이 끝나요.

왜냐하면 고대 근동의 고유한 문화, 셈족 사람들이 자기네 셈어를 통해 가지고 셈족의

고유한 종교, 고유한 문화를 펼치면서 문명을 이루고 살던 때가 거기서 딱 긑나는 거예요.

 

*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제국 정복으로 고대 근동 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게 고대 근동의 끝이예요. 그러니까 고대 근동학, 저처럼 그걸 배운 사람들은 로마시대만

해도 요즘이예요. 아주아주 먼 옛날이니까. 그건 로마시대는 알렉산더 대왕이 헬레니즘을

퍼트리고 난 다음에 나온 게 로마시대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아예 보지도 않아요. 로마시대

는 거의 요즘이네 뭐. 진시황제 이런 것도 요즘이고요. 무슨 뭐 아주아주 옛날 것암 다루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얘기를 해요. 페르시아 제국은 고대 근동의 마지막 토착 지배 세력

이다. 그 다음에는 유럽인들이 와 가지고 점령을 했으니까.

 

* 페르시아 제국은 고대 근동 지역의 마지막 토착지배 세력이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셈족이라고 했죠? 아까 고대 근동에. 알렉산더 대왕이 들어오기 이전

그래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퍼트리기 이전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정서나 문화가

굉장히 비슷해요. 기원전 3세기, 4세기가 우리가 굉장히 오래된 세대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만약에 끝이면 고대 근동은 언제 시작이 된 것인가? 시작점을 따지는데 그게 무려

놀라지 마세요. 기원전 33세기예요.

 

* 고대 근동의 시작은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기원전 33세기)이다.

 

천 년이 세 번 더 있어요. 굉장히 오랜 세대죠.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33세기부터 3세기 그

3천 년 간의 속하는 세대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로마시대 그리스 사람들이 그리스 문화가

퍼트려 놓은 문화 그거를 공부하면은 오히려 셈족의 문화를 잘 모르게 되요. 셈족의 원래

문화를 알려면 알렉산더 대왕이 들어오기 이전 문화를 알아야 되는 거죠. 그게 고대 근동

학이예요. 그래서 시간적인 무대를 여러분들한태 말씀드렷습니다. 공간적인 무대는 지금의

중동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고요. 복잡한 동네죠?

 

* 고대 근동의 공간적 무대는 오늘날의 중동지역이고 시간적인 무대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에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시기까지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드릴거는 구약 신학과 구약학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그래요.

 

** 구약신학과 구약학

 

이게 비슷한 말 같지만 조금 달라서 여러분들한테 쉽게 설명해 드리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구약신학과 구약학이 섞였어요. 면밀하게 이렇게 나누지 않고 쓰시는 거

같은데 독일에서는 안 그래요. 두 개는 엄연히 다른 학문이고 저는 이제 구약학을

했는데 구약신학이라고 말하면 저희 지도 교수님이 뭰헨교구 신부님이셨는데

"아, 그건 틀렸다"고 "너는 구약신학자 그게 아니라 너는 구약학자"라고 딱 교정해

주시고 이렇게 하세요.

 

그 차이를 여러분들한테 조금 설명을 해 드리려고 해요. 구약신학은 구약성경의 신학

이예요. 신학이 뭐죠? 여러분 강연을 많이 들어보셔서 알겠지만 하느님에 관한 말이죠.

예를 들어서 구원이 무엇인가? 그걸 따지면 구원론이죠. 그죠? 하느님이 주신 구원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런 구약성경의 구원론은 무엇인가? 그걸 따지면 구약신학의 일부로서

구약신학의 구원론을 따지는 거예요.

 

우리 신학에서 중요한 주제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메시아는 누구이신가? 그럼 구약신학에

구약에서 메시아는 어떻게 예고 되었는가? 이런 거를 따진다면은 구약의 메시아론 이렇게

되겠죠? 구약의 구원론을 따질 수가 있고 또 하느님이 누구인신가? 이걸 따지는 게 신론

이라고 하는데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인간한테 스스로를 보여주셨

는가? 이런 거를 따지면 구약성경의 신론. 이렇게 따지는 것이죠.

 

이렇게 신학의 모든 주제를 구약성경에서 따지는 거를 구약신학이라고 하고 여러분들은

그 주제 내에서 어느 정도 익숙하신 거 같애요. 구약학은 구약신학과 달리 구약신학은

구약성경에서 신학을 찾으려는 시도고 구약학은 구약성경의 모든 것을 따지는 거예요.

 

* 구약학은 구약성경의 구원론, 인간론 등 구약성경의 신학을 다루는 분야이다.

* 구약학은 구약성경의 언어, 종교, 문화 등 구약성경과 관련된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경에서 구약성경은 어떤 언어로 쓰였는가 그러면 여러분 아시지만

구약성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쓰여있고, 일부 아람어로 쓰여 있고, 일부 그리스어 

사본도 있어요. 나중에 나온 거. 우리가 제2경전이라고 옛날 공동번역 성서에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러념 히브리어를 따져 봅시다. 

 

히브리어를 우리가 공부하는데 고대 히브리어는 고대 근동어의 일부예요. 히브리어의

바로 옆나라 가나안어, 아니면 페니키아어, 아니면은 푸니어, 아니면 우가릿어 하고

비슷한 면도 있고 틀린 면도 있어요. 언어니까. 옛날에 우리나라 말을 생각해 보시면

되시겠죠? 백제나 신라 말이 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한국 말하고 일본 말은

좀 비슷하기고 하고 다르기도 하죠.

 

옆에 사니까 이제 당연히 말이 좀 달라지는데 고 차이를 좀 알아야지 히브리어의 차이를

더욱더 잘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할려면 구약의 언어학 한다고 하면서 구약

의 언어보다는 다른 나라 언어를 더 공부해야 되요. 하나씩 다 공부해야 되요. 우가릿어

도 공부해야 되고, 페니키아어도 공부해야 되고, 가나안어도 공부해야 되고, 아람어도

공부해야 되고, 아카이어도 공부해야 되요.

 

이거를 구약학이라고 하고요. 구약학에서 구약의 언어학이라고 그래요. 제가 전공이 구약

언어학이예요. 그리고 구약의 예를 들어서 역사를 따진다 그러면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따져야 되는데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따지려면 또 그 주변 민족의 역사가 어땠는지 다

알아야 되잖아요.

 

우리나라도 옛날에 삼국시대의 역사를 알려면 그때 중국에서는 어땠고, 일본에서는 어땠

는지 이것을 다 전체적으로 봐야지 더 잘 이해되는 것처럼 구약성서의 역사학이다 그러면

물론 신학으로 공부할 수도 있지만 구약학에서 따지면 또 그렇게 구약학으로. 즉 구약학은

어떤 면에서는 신학을 전제하지 않고 더 넓은 의미에서 다지는 거예요.

 

* 구약학은 고대근동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학문이다.

 

구약성경의 종교, 구약성경의 어떤 문화 이런 것들을 다 비교할 수 있죠. 그래서 구약학

은 자연스럽게 고대근동학과 굉장히 밀접해져요. 구약성경의 어떤 배경을 이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고대근동학을 다 알아야 되요. 이렇게 세 학문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하면, 맨 밑에 베이스로 고대근동학이 있어요.

 

 

그리고 고대근동의 모든 배경이 되는 그 문화와 언어를 다 알아야 되요. 고대근동학이

있고 고대근동학 위에서 고대근동학 중에서 구약성경과 관련이 없는 거는 좀 빼고 구약

성경과 관련이 있는 것을 좀 모아서 잘 정리하면 구약학이 되겠죠. 그리고 그 베이스

위에서 구약신학이 꽃이 피는 거죠. 이렇게 기초가 되는 학문이 구약학, 고대근동학

이라고 할 수 있어요.

 

* 고대근동학> 구약학> 구약신학

 

그래서 신학적으로 말해서 구약신학은 꽃이예요. 우리가 왜 고대근동학이라고 하고

구약학은 하느냐 하면 우리 신앙인들은 구약에 있는 신학을 잘 알려고 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구약성서에서 어떻게 표현하셧는지, 어떤 구원의 뜻을 드러내셨는지 이걸

알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구약학은 구약신학의 배경이 되요. 그런 관계를 여러분이

이해를 하시면 좋겠고 이 모든 구약학과 구약신학 전부는 고대근동학의 기반 위에서

탄탄해지는 것이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 구약신학은 구약학의 꽃이며 구약학은 구약신학의 배경(기초)이다.

  구약학과 구약신핛은 고대근동학의 기반 위에서 더욱 풍부해진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구약학적인 강의가 별로 없어요. 고대근동학의 강의도 별로

없고요. 사실은 구약성경 강의도 별로 없어요. 별로 없는데 구약성경 강의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구약신학과 고대근동학을 공부할려고 하니까 좀 별로 없겠죠. 아주 드문 형편

이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하지 않는 고대근동학과 구약학

에 대한 강의에 오신 것이 되고 지금 그거를 시청하고 계신 것이 됩니다.

 

자, 우리가 고대근동학이 어떤 배경이고 그 다음에 구약학과 구약신학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지금까지 잘 알았다면은 고대근동 세계는 어떤 세계였는가에 대해서 제가 차근

차근 조금씩 말씀드리려고 해요.

 

** 고대근동은 하나의 세계였다.

 

고대근동 세계 내에서 제가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이제 고대근동학을 잘 안

배우신 우리 시청자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요. 첫 번째로 고대근동은 하나의

세계였다. 사람이 살던. 그러를 말씀드리려고 하고. 두 번째로 그들은 굉장히 다른

신화적인 세계에서 살았다는 걸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고대근동은 하나의 세계였고 그들은 신화적 세계에 살았다.

 

고대근동은 하나의 세계였어요. 우리가 그냥 뭐 어떤 나라 하나 잡는 거가 아니라,

큰 굉장히 다앙한 문명이 그 안에 있었어요. 지역도 굉장히 넓죠?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시작된 게 33세기예요. 33세기면 지금부터 5천년 전 얘기죠.

 

굉장히 아득한 세월이고 사실은 이렇게 너무 먼 시대의 문헌을 우리가 그 문헌을 출토

하더라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아요. 너무 다른 생각을 하고 산 사람들이라서

고대 근동은 크게 말해서 아주 쉽게 말하면 크게 네 지역으로 나눕니다. 네 지역은

여러분들이 여기를 보시면 아는데요. 동부셈어부터 말씀드리면,

 

 

 

여기가 인제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이 있는 지역이지요. 그 두 지역을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고

합니다. 두 강이 있는 지역. 이쪽에는 쎈 나라들이 많았어요. 왜냐하면 여기가 땅도 넓고 농사도 잘

되고 인구도 많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아는 아시리아, 수메르, 바빌론 이렇게 큰 나라들이 있어요.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내내 괴롭힌 큰 나라고 바빌론은 이스라엘을 잡아다 유배를 시킨 큰 제국이죠.

그런 제국이 이 동부셈어 지역입니다.

 

 

 

 

이집트는 남부셈어 지역인데 이집트도 굉장히 큰 나라였죠.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그래서 이스라엘도

이집트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탈출기에도 나오지만 거기 가가지고 가난하니까 거기 가서

살아서 거기서 탈출하기도 했었고, 또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또 바로 옆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저 윗쪽에 있는 게 아나톨리아 반도인데 지금의 터키예요. 여기는 히타이트라는 큰 나라가

있었어요. 한 때는 굉장히 큰 제국을 이뤘던 나라예요. 그리고 고 사이에 북서셈어를 쓰는 지역이라고

해 가지고 래반트 지역 아니면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역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지역이 있는데 여기는

땅이 좁고 인구가 많지 않고 큰 나라를 이룬적이 없어요.

 

즉 동부셈어를 쓰는 나라에서 아시리아나 바빌론이 발원을 하든가 아니면 남부 셈어를 쓰는 이집트가

크게 발원을 하면은 북서 셈어지역은 고 사이에서 주로 교역을 하면서 살았어요. 유다인들이 왜 장사

를 잘 하는지 아시겠죠? 여기서 볼 때 딱 지정학적으로 위치지어진 게 있죠.

 

그래서 보면은 동부 셈어 쓰는 지역이나 남부 셈어 쓰는 지역에서는 굉장히 큰 유적 같은 게 나와요.

큰 제국을 이루었으니까. 하지만 북서 셈어 쓰는 지역에서는 조그만 도시 국가들이 많이 나와요.

작았어요. 고대 근동인들은 하나의 세계에서 활발히 교류하면서 살았어요.

 

실제로 우리가 나중에 이제 보겠지만 남부 셈어를 쓰는 이집트 지역에서는 오시리스가 굉장히 중요한

신이었어요. 오시리스 신상이 나오는데 오시리스 신상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은 이스라엘에서도

나오고, 터키에서도 나오고 심지어 동부 셈어 쓰는 지역에서도 출토하면 나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오시리스 상을 믿지 않았거든요. 이집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그 상을 자기집에 갖고 있거나 어디 창고 같은데 보관시켜 놨을까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이집트의 신이라는 걸. 어쩌면 갖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은 잘 묻어놔야지

탈이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지는 모르는 것이지요. 이집트에 가잖아요. 이집트에 가면은 아마

엘아마르나 문서라고 해서 이집트 파라오가 이 동부셈어 쓰는 지역인 아나톨리아나 히타이트 제국과

외교 문서를 토판에 쓰고 주고 받은 게 창고에 그대로 발견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집트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주고 받았을 거 같애요? 놀랍게도 이집트어를 쓰지 않았어요.

아카드어라고 동부 셈어를 썼어요. 즉 이집트 사람들도 이 나라들과 교역을 하기 위해서 상당한 수의

통역관이나 지식인들이 그 언어를 알고 있었던 거예요.  통역관도 있었고 그 지식인들 중의 일부는

외국 말이니까 거의 했어야 되겠죠. 이렇게 서로 아주아주 고대에서도 벌써 이렇게 서로 교류하고

살았던 시대였어요.

 

  

 

이스라엘은 여러분 아시지만 여기 위치하고 있죠? 딱 교역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요. 잘하면 여기

저기서 이렇게 잘 해서 물건을 떼다가 장사를 해서 돈을 잘 벌 수 있고 잘못하면 이 큰 나라들이 먼저

점령하는 나라가 되요. 이스라엘은 그래서 어쩌면 힘든 운명을 타고 태어나는 그런 위치에 있는 나라

였어요. 이스라엘은 교역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고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그 지역 근처를 통해서 편지가 지나가고 물건이 지나가고 때로는

전쟁의 루트가 되기도 하는 그런 지역이었어요. 당연히 이스라엘도 그 많은 나라 사람들을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었지요. 피상적으로 안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굉장히 깊이 알고 있었을 거예요.

 

제가 첫째 시간에 잠깐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은 장사를 잘하는 나라였고 대부분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그 북서셈어 쓰는 다른 도시국가들은 이렇게 큰 장사를 해가지고  이른바 교역로 역활을 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는데 장사를 한다는 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나 지금이나 장사한다는 거는 서로 이해하면서 신뢰를 쌓아야지 큰 장사를 할 수 있겠죠?

즉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장사를 하면서 신용을 쌓고 그 사람들의 처지나

상황을 잘 알고 또 흥정을 하기도 하고 했었죠. 자연스럽게 그들의 말도 알게 되고 그들의 문화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종교도 알게 되었겠죠.  반대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랬겠죠.

 

그래서 구약성경은 어떤 무릉도원에서 한 나라가 있어가지고 고립되어 가지고 혼자 그렇게 나온

나라가 아니라 철저히 다른 나라와 수많은 교류 속에서 교류를 통해가지고 그거를 자양분을 먹고

자라나는 그런 책이예요.

 

*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는 이웃 국가들과의 교류 속에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다채롭게 섞인 문화의

   토대 위에 형성됐다.

 

그래서 구약성경 안에 신들 같은 다른 나라 신들의 흔적, 다른 나라 문화의 흔적 같은 게 많이 남아

있어요. 남아 있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래서 그런 거를 하나하나 우리가 알면은 굉장히

재미있지요. 한 마디로 말해서 고대 이스라엘의 위치를 우리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은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은 약소국이라고 할 수 있어요.

 

* 고대 이스라엘은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은 '약소국'이었다

 

알지만 이 표현은 굉장히 잔인한 운명을 예고하는 표현일 수도 있어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은

작은 나라들의 삶은 고달프기 십상이고 이스라엘도 그랬어요. 이스라엘은 자기가 커서 다른 나라는

지배하거나 다른 나라한데 군대를 보내거나 하는 적은 거의 없고, 오히려 큰 나라들이 "아, 요기가

딱 전략적 요충지니까 너 내 말을 들어라."

 

아시리아도 그랬고, 이집트도 그랬고, 그래서 예레미아 예언서를 보시든지 열왕기를 보시면 옆에

사신들이 와가지고 "야, 너희들 우리 말 좀 들어." 이렇게 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힘들 삶을

살았죠. 결국 이스라엘은 여기에 전략적 요충지에 끼어서 나라를 잃고 유배를 가는 그런 힘든 운명을

겪었고, 그러고 다시 와서도 조금 살다가 다시 나라를 잃고 유다인들이 떠돌게 되었죠. 그만큼 어떻게

보면은 좀 안 좋은 땅인 면도 있어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렇게 굉장히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은 그런 나라, 작고 약한 나라, 불안정한 나라,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런데 하느님은 하필이면 그런 나라를 택하셨어요. 그런 민족

을. 당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 굉장히 이것을 하느님의 신비를 생각해 볼 것이 많은 거 같애요.

 

그래서 차차 이 신비에 대해서 여러분들한데 이 시간을 통해서 조금씩 설명을 드리기도 하고 여러분이

지금까지 요점정리를 대강 하자면, 고대 근동세계는 하여튼 큰 세계였고 굉장히 다양한 나라들이 일어

났던 세계이고 네 개의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지역에서 고대 이스라엘은 전략적 요충지의 작은

나라였다.

 

다른 나라의 문물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쉽게 할 수 있었고 구약성경에도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적인

교류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 이게 구약성경의 하나의 세셰라는 문제였고

그 다음 주제는 신화의 언어로 그 당시의 사람들은 생각했다라는 거를 말씀드릴께요.

 

*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신화적 세계에 살았다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신화적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예요. 여러분 풀, 나무, 달 이런 거 생각하면

현대인들은 과학적으로 생각하기가 쉬워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지금 굉장히 하늘을 섬긴다든지 그러한 종교심을 찾기가 어려워져버렸죠. 대부분 그런 종교심

을 마음 속에서 잃어버리고 있거든요.

 

제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개신교에서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심데 그 목사님은 달을 보면은

차에서 운전하다 말고 내려 달보고 이렇게 걸어가신대요. 달이 뭔가 이렇게 크게 자기한테 와갔고 뭔가

말을 하는 거 같대요. 달보면 확 넘어가신다고 하더리고요. 저는 달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목사님이 참

크시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사실 그렇게 자연의 사물에 대해서 자기가 어떤 공감하는 능력을 갖기가

쉽지가 않아요. 많이 잃어버렸어요. 학교에서 그렇게 안 가리키거든요. 지금.

 

그런데 우리가 현대인으로 살면서 가졌던 합리주의와 과학의 언어는 사실은 몇 백 년 안 된 거라고

그랬죠. 이렇게 "야, 저 하늘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공간이야. 저 별도 그냥 다 별일 뿐이야."라고

생각하는 시대의 사람들은 400년 밖에 안 되요. 오히려 그거를 신으로 생각하든지 어떤 큰 영험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가 훨씬 많아요. 인류에. 그렇게 하고 살았어요.

 

하늘은 저 높이 우주까지 뻗어있는 공간일 뿐이다. 달은 그냥 지구 주위를 도는 하나의 행성일 뿐이고

가면은 그냥 적막하다. 바람은 그냥 공기의 흐름일 뿐이다. 아니죠. 고대 근동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늘은 뭔가 거룩한 하느님이 계신 곳. 어떤 하늘은 그냥 천사들이 하늘에서부터 내려 오는 것.

 

* 고대 근동인들에게 하늘은 거룩한 신 또는 신들이 사는 곳이었다

 

달이 있고 별이 있으면 고대근동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냐 하면 달이 저 별을 이끄는 왕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별은 좀 쫌쫌하니까 졸별들이고 달이 왕이라고 생각을 해서 달이 왕권의 상징이었어요. 바람은

그냥 공기의 흐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한테 어떤 속삭이는 말씀. 성령이라는 게 바람이라는 뜻이었죠.

 

우리가 주님의 기도 첫 구절에 그렇게 나오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나오죠. 그 하늘에 계신을

우리가 과학의 언어로 알아 들으면 완전히 미스하는 거죠. 하느님이 어디 대기권 어디에 계시는 분.

저 상층권 어디에 계시는 게 아니죠? 우주의 어디 가면 하느님이 어떤 별에 딱 자리잡고 앉아 가지고

옆에 엘리야 예언자 놓고 뭐 예레미아 예언자 놓고 이렇게 사시는 게 아니죠.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어떤 뜻이예요.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우리는 땅에 살고, 우리는 속적인 존재고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는 굉장히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

지는 "아, 우리 인간과는 완전히 다르게 거룩하신 분. 아버지 저희 기도를 들어주십시오."라고 부르는

거죠. 그게 의미죠. 그래서 구약성경의 언어를 우리가 과학의 언어로만 보면 안 되요.

 

* 구약성경의 언어는 과학적 언어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구약성경은 그런 과학과 합리주의를 전혀 모르는 시대에 태어난 문서예요. 제가 여기에 대해서 한번

깊이 볼 수가 있는데요. 피 그러면 피는 그냥 우리는 혈액 이렇게 생각하죠. 피 그러면 어떻게  생각

하나요? 헌혈이런 거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 피 그럴 때 누구는 선지국 이렇게 얘기 하대요. 아니면

뭐 순대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어요. 아무튼 이것도 다 피를 쓰는 것이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피가 신의 이름이었어요. 다무라는 피의 신이 있었어요.

 

*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피(血)의 신 다무(daamu)가 있었다

 

그런데 그 피의 신은 두 가지 역활을 했는데 하나는 악령을 쫓는 역활을 했구요. 피를 뿌리면 사악한

것이 물러가는 거죠. 또 하나는 인간을 치유하는 역활을 했어요. 피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은 악령을

쫓는 역활을 하고 인간을 치유하는 역활을 하고 그 당시 사람들의 신화에서는 같은 역활이었어요.

 

왜냐하면 병이 왜 걸리느냐 하면 악령이 들어와서 걸린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악령을 쫓아

내려면 자연스럽게 인간이 낫는 거예요. 그래서 다무신을 그 당시 사람들이 매우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그 다무 신이 나한테 깃들여 있으면 나는 악령, 병도 안 걸리고 또 생명력이 커진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거를 알고 있었던 거 같애요. 그 대신 피의 신은 당연히 믿지 않았죠.

 

또 구약성경에는 피의 신은 안 나오는데 피의 신의 속성을 생각하는 어떤 문화적인, 같은 문화를 공유

했기 때문에 그건 나와요. 그래서 짐승을 잡을 때 레위기에서 어떻게 얘기해요?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

고 얘기를 하죠. 왜 그러냐 하면 그 피 자체가 생명력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피를 땅에 부어서 그 피가 땅에 스며들어서 나중에 그 풀이 그 피의 생명력을 먹고 나오면 그

풀을 소가 먹고 그 소를 우리가 다시 양이나 소를 잡아 먹으면 우리는 다시 피는 땅으로 돌려 보내야 된다.

이렇게 생태는 순환하는 고리로 생각을 했는데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를 하필 생명력의 상징으로

생각했을까?  이거는 고대근동의 문화가 그랬기 때문에 그래요. 고대 근동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했지만

피가 어떤 신의 이름은 아니다라고 생각을 한 거죠.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네 독특한 문화에 맞춰 가지고 자기네 넓은 문화를 이렇게 흡수 소화하면서

살 줄 알았던 것이죠.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대근동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피를 먹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고대 이스라엘에는 선지국이 없었어요. 피를 먹지 못했으니까. 그 대신에 우리는 이거를 알아야

되요. 피에 대해서 이렇게 알 수 있고 아까 다른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근동의 어떤 문화를 알려

면 그들의 신화적인 언어를 알아야 되요.

 

그리고 신화적인 세계관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지 구약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아까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얘기했듯이 과학의 언어로만 보면은 정말 하늘의 상층권 어디라고 생각

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신화의 언어, 신화의 언어 이렇게 얘기하면은 "아, 좀 ㅇ상하다."라고 생각하

시는  분들이 있어요.

 

** 신화적 언어

 

아직까지 신화를 미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신화는 절대 미신이 아니예요.

신화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뭐 이렇게 믿고 굿하고 이런 식의 언어가 아니예요. 학문적으로 봤을 때

신화는 어떤 언어냐 하면 의미의 언어예요. 체험의 언어예요. 상징의 언어예요. 그래서 신화는 의미와

상징을 표현하고 그 의미와 상징을 전달하는데 굉장히 적절한 언어예요.

 

* 신화는 의미와 체험, 상징의 언어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그 하늘은 과학의 언어로만 보면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어떤 상징을 전달하고 어떤 진리를 전달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어요. 그거는 우리가

신화의 언어로, 의미로 알아 들어야 되요. 신화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시의 언어

라고 표현할 수도 있어요. 어떻게 표현하든지 간에 의미의 언어예요.

 

그런데 성경은 그냥 펙트를 전달하는 책이 아니예요. 그래서 성경은 진리는 전달하는 책이잖아요.

그래서 성경은 과학의 언어로 물론 과학의 언어로 그 안에 있지만 과학의 언어로만 쓰여지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성경은 신화의 언어로 많이 쓰여 있었어요.

 

* 성경은 신화의 언어로 쓰여져 영원한 진리는 선포하는 책이다

 

어쩌면 하느님은 하느님의 진리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한 언어를 선택하신 것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만약에 성경을 과학의 언어로  쓰여 있었다면은 과학적인 사실은 과학적인 이론은 변하잖아요.

몇 십 년, 몇 백 년이 가도 우리가 그대로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죠. 굉장히 훌륭한 언어라고

할 수 있는거죠. 성경은 진리를 선포하는 신앙서예요.

 

그래서 성경에서 신화의 언어가 있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구약 학자들이나 성서 신학

자들이 어떤 신화의 언어인가 그 신화의 언어를 통해서 과연 하느님께서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자 하시는가를 밝혀 내는데 더 힘을 쏟고 있어요. 이제는 신화의 언어 자체는 학문적으로 그렇게

문제가 되는 말은 아니예요.

 

그런데 여기까지 신화의 언어인데 신화의 언어를 공부하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여기에 아까 여러분

보셨다시피 동부 셈어만 하더라도 동부 셈어를 쓰는 지역은 흔히 아카디어 지역이라고 하는데

아카디어는 시대에 따라서 고 바빌론어, 아시리아어, 표준 바빌론어 이렇게 여러 가지 것으로 나누고요.

 

북부 셈어 지역에서는 아람어, 페니키아어, 히브리어, 우가릿어 등등이 있고. 남부 셈어에서는 이집트어

등등이 있어요. 이거 하나하나를 다 알아가지고 거기서 나오는 문서를 우리가 이해하고 거기서 나오는

어떤 신화의 의미를 밝혀서 구약성경과 비교하고 하는 전문가들은 많이 없어요. 그러니까 공부하기가

좀 어려운 길이죠. 그래서 이런 강의를 저는 그래서 일부러 이런 강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요.

여러분들한테 배경이 되는 것을 하나하나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도록.

 

어쨌든 여러분들은 고대근동학이 그냥 우리 구약성경 믿는 사람들과 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구약성경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한데 필수적인 학문이다. 필수 교양 학문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 교회에 어떤 상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자리잡아

갔으면 하는 희망이 제게 있습니다.

 

* 고대근동학은 구약성경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필수 교양 학문이다

 

자, 다시 한번 여러분들한데 말씀드리는데 그래서 구약신학은 구약학의 꽃이고 이것의 베이스는

고대근동학이다.

 

* 구약신학은 구약학의 꽃이며 구약학은 구약신학의 기초이다

 

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요번 시간의 중심 주제죠? 구약성경의 자리, 구약성경의 고대근동의 시간,

어느 시대에 살았나? 그리고 얼마나 큰 세계였나? 얼마나 잘 교류하던 세계였나? 그리고 신화적

언어란 무엇이고 우리가 이걸 왜 다 공부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여러분들께 다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면 저는 이 책에서 원래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은 이런 배경 지식이고, 이런 배경 지식을 통해서

우리가 진짜 알아야 되는 건 아까 구약신학의 꽃이라고 하셨죠?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을 알아야 되요.

이걸 통해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 종교심, 그들이 가졌던 의미, 구약성경에 썼던 우리한테

꼭 전달하고 후대 사람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었던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게 바로 옆 나라 사람들의

종교와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그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우리가 잘 아다시피 하느님의 말씀이죠.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경전이기도

하고 이슬람 쿠란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은 분명히 하느님 한 분만 계시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한 분만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냥 믿어야 한다가 아니라 신명기에 보면은 여러분들 이

책에 나와 있는데 제가 잠깐 읽어 드릴께요. 신명기 6장 4절 쉐마. 아주 유명한 구절이죠.

 

 

 

그러니까 그냥 하느님을 믿어라고 대충 하면은 안 되는 거예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느님을 믿어야 되는 것이죠. 이것도 또한 우리가 고대의 정서 중에 잃어버린 것인데 옛날에

중세 때 죄 중에 나태라는 죄가 있어요. 나태라는 죄. 우리는 지금 나태가 죄가 아니죠? 

 

그런데 왜 죄가 아니냐 하면 설명을 들어보세요. 나태는 게으름이죠. 게으름은 뭐죠? 열심히 안 하는

거죠. 열심히 안 하는 거는 예를 들어서 내가 수업 시간에 공부를 해야 되는데 인터넷으로 보고 뭐 딴

짓 한다거나 신문을 본다거나 이런 게 나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고대에서는 자기가 주어진 시간에

자기 일을 한 하는 정도고 나태가 아니라 자기가 주어진 시간에 열심히 안 하는 게 나태였어요.

 

예를 들어서 나태를 설명하는 그 당시 책을 보면은, 우리가 같이 그물을 끌어올리잖아요. 그때는

육체적인 일이 많았지요. 그물을 끌어올리는데 한  사람이 열심히 끌어올리지 않으면 그물이 안

올라오죠. 그래서 열심히 해야 되는 거예요. 열심히 안 하면 나태예요. 지금처럼 대충 눈치보고

그물만 이렇게 잡고 있으면 그게 나태인거죠.

 

하느님을 어떻게 믿어야 되냐하면 이렇게 열심히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구약성경이 말하는 유일신

신앙은 그런 거예요. 열심히 힘을 합쳐서 믿어야 된다. 힘을 써서 믿어야 된다. 그래서 분명히 하느님께

정성을 다해서, 마음을 다해서 그분만 믿어라 하는데 우리 구약성경은 또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어떤 나라의 산물이기도 해요.

 

*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고대국가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래서 그 나라가 살아왔던, 그 백성이 믿었던 삶이 묻어있는 책이기도 해요. 어찌 보면은 구약성경은

믿음의 책이기도 하면서 어찌 보면은 실제로 살았던 나라의 역사서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거를

빙산에 비유할 수 있어요. 빙산에 비유하면 빙산에 나와 있는 부분은 조금이죠. 하지만 밑에 자주 큰

부분이 숨어있죠. 빙산의 밑에 있는 부분은 고대근동의 바다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거기서 굉장히 삐쭉 나와 있는 조그만 구약성서라는 책만 보는 것이죠. 물론 그 책은 그

고대근동의 지혜를 농축해 가지고 우리한테 정말 엑기스를 알려주는 그런 책이죠. 하지만 우리 신앙인

이라면은 그 책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더불어서 그 책의 배경이 되는 저 멀리 넓은 지식도, 그 고대

근동의 역사의 바다에 떠 있는, 숨어 있는 부분도 봐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지식인 신잗르이 그것을 하나하나 공부해 가는 교회가 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거 같애요.

구약성경은 해나 달이나 별과 같은 것이 혹시 신으로 믿었던 사람들의 흔적을 알고 있고 그렇게

표현하는 구절도 있어요. 그리고 그런 정서를 얘기해 줘요. 그리고 종교심을 얘기해 줘요. 그리고

그거를 여러분들한테 여기서 제가 이제부터 하나씩 말씀드릴 거예요.

 

그런데 왜 하나하나씩 봐야 되나? 이유가 있어요. 한번에 그냥 쫘악 정리해 가지고 요점 정리를 해 주면

하는데 저번 시간에 잠깐 말씀드렸자만 하나하나 달라요. 어떤 거는 아주 급격히 막 믿지 말아라는 것이

있고, 어떤 거는 좀 이렇게 배우는 것이 있고, 어떤 거는 이렇게 포용하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소화하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언급을 안 하고 슬쩍 지나가는 것도 있고 다양한 것이 있거든요.

 

그 하나하나 따로따로 맞춰 볼려고 했고, 결론적으로 이런 과정을 다 여러분들이 아신 다음에는 고대

근동 세계에 살던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이 굉장히 다른 나라 종교에 밝았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종교를 완전히 그냥 무시하고 우리 배우지도 말고 "우리 그거 관심도 없어."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고

상당히 잘 알고 있었구나.  거기에 대해서 대응도 상당히 잘 했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다양한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유지하고 살았던 옛 사람들은 그것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으시기

바랍니다.

 

*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은 이웃 민족의 종교에 상당히 적극적이고 열린 자세로 대응했고, 이웃

종교의 다양한 표상들을 접했고, 깊이 성찰했으며, 결국 자신들의 고유한 신앙으로 소화하는데 성공했다.

 

결국은 이 강의를 통해서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이라는,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

나라들 사이에서 자기네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구나. 하느님은 그 작은 나라를 왜 선택하셨고,

그 사람들한테 어떤 믿음을 주셨는가?

 

우리는 지금 가톨릭 교회는 소수로서 다른 나라 다른 종교 믿는 그 사람들과 같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데

물론 구약성경 시대와 지금 많이 다르죠. 하지만 구약성경 시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 거예요.

구약성경 시대는 지금 우리와 달리 우리가 어떤 사람이 생각하듯이 다른 나라 종교를 그냥 무시하거나

배척하거나 이런 게 아니라 우리가 어쩌면 귀감으로 삼아야될 정도로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우리도 어쩌면 그래야 된다라는 그런 것을 제가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릴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것이

하느님 영성의 원동력이라고 생각을 하고 우리가 믿음으로써 그런 것을 배울 수 있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럼 여기까지 이제 저의 강의를, 두 번째 강의를 마치고요. 다음 시간부터 이제 여러분은 지난 시간에

제가 왜 이 책을 설명하는가 이것을 말씀드렸고, 이번 시간에는 배경 지식을 말씀드렸는데 이번 시간은

사실은 지금까지 강의한 시간 중에서 제일 재미없는 시간이예요.

 

왜냐하면 그 배경지식 하나하나를 얘기하는 게 힘들 거라고 생각을 해서 제가 좀 준비를 해 왔거든요.

하지만 이제 다음 시간부터는 구체적으로 재미있는 신들의 세계, 하늘 신은 뭐고, 땅 신은 뭐고, 그 다음

에 가신은 뭐고 신들의 얘기를 이제 그림을 보면서 하나하나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시간 예고: 제3강 고대근동의 하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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