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ㄷㄷㄷㄷ2월10일(월) 聖女스콜라스티카, 聖女클라라 님♥
작성자차희령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9 조회수573 추천수2 반대(1) 신고
 


 

2월10일(월) 음1/11

聖女스콜라스티카, 聖女클라라

 



스콜라스티카(2.10)

성인명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축일

2월 10일

성인구분

?/u>

신분

수녀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480?-555/560년?

같은이름

스꼴라스띠까, 스콜라스띠까

 

 

 

聖女스콜라스티카 (Scholastica)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의 쌍둥이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으로 살아 왔으나
아마도 부모의 집에서 기거한 듯 보인다.
그 후 그녀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는데,
혼자인지 아니면 공동체 생활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당시에 그녀는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성 베네딕투스를 만난 것 같다.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쓴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33장에 의하면,
성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의 대수도원을 설립한 뒤
그곳에서 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피우마롤라(Piumarola)
베네딕토 수녀원을 설립하여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맡겼다.
그로 인해 성녀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대화집" 33장에는 이들 남매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 온다.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마지막으로 성 베네딕투스를 방문했을 때
성녀는 예년과 같이 수도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베네딕투스 성인이 몇몇 수사들을 데리고 나와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만나서 늘 하던 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담화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성녀는 오빠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 있기를 간청했으나
베네딕투스 성인은 수도회 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거절하였다.
이에 성녀가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도를 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서
베네딕투스 성인과 수사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머물게 된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의 뜻을 허락하셨구나.
대체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성녀는 “당신은 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주님은 제 말을 귀담아들으셨습니다.
자, 이제 나가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시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매는
밤새도록 영적인 생활과 천상 생활의 기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마지막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운명하였다.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동생의 시신을
자신을 위해 몬테카시노 수도원 내에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몬테카시노가 붕괴된 후 8세기경에
베네딕투스 성인의 유해와 성녀의 유해는 플뢰리(Fleury)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이로써 이탈리아 밖의 지역에서 성녀의 공경이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8세기 말에는 베네딕토회의 시간전례에 성녀의 축일이 수록되었고,
9세기경에는 전세계 수도원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였다.
성녀 스콜라스티카에 대한 공경 예절이 전세계의 교회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1-13세기에 이르러서였지만,
로마 전례력에 정식으로 축일이 수록된 것은 18세기경이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주보성녀로 공경받고 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성 베네딕토의 쌍둥이 누이 동생으로서

오빠가 설립한 수녀회의 원장을 맡으셨던

성녀 스콜라스티카 님이시여

 

저희 형제 자매들이

주님 사랑과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천상의 축복을 보내주옵소서!...아멘+

 




 



클라(2.10)

성인명

클라라(Clare)

축일

2월 10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과부

활동지역

리미니(Rimini)

활동연도

1282-1346년경

같은이름

글라라, 끼아라, 클레어, 키아라

 

 

 

 


리미니의 복녀 클라라 아골란티(Clara Agolanti, 좌)




 

 

이탈리아 리미니의 부유한 집 딸로 태어난 클라라 아골란티(Clara Agolanti)
어려서 결혼하였으나 곧 과부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 집안의 반대자들에 의하여 얼마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부친의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녀는 충동적으로 살았고 또 조심성이 없어서 많은 빈축을 샀다고 한다.
30세 되던 해의 어느 날,
그녀는 어느 프란치스코회의 성당에 갔다가 신비스런 목소리를 들었다.
“클라라야, 아무런 잡념 없이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한 번만 바쳐보아라."
이때부터 그녀는 아주 신중히 처신하게 되었고,
그 얼마 후에는 같은 성당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였다.


                          


큰 충격과 더불어 완전히 개심한 그녀는 작은 형제회의 제3회에 입회하여
보속생활을 시작하였다.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던 그녀는 철로 된 고행복을 입고 철저한 고행을 시작하였다.
지난날의 허영과 육욕을 벌하기 위하여 스스로 허름한 널빤지 위에서 잠을 잤고,
자신의 입맛을 희생하였다.
그녀는 가끔 기아 직전까지 갈 정도로 음식을 절제하였다.
몇몇 부인들이 그녀의 지도하에 재속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어느 해 성 금요일에는 사람들이 그녀의 목에 새끼줄을 매고서
개처럼 끌고 다니게 한 적도 있었다.
또 주님을 본받기 위하여 문전걸식을 하였다.
이처럼 그녀의 행동이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기 때문에 반대자들도 생겼다.
그러나 그녀는 주님의 목마름을 실감하기 위하여
물도 먹지 않고 오랫동안 지내기도 하였으니,
정말로 놀라운 사람이라고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수덕생활은
그녀가 죽으면서 즉시 성녀로 공경을 받는 놀라운 빛을 발하게 하였다.
교황 비오 6세(Pius VI)는 1784년에 그녀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그녀는 흔히 재속 수도자의 앞길을 밝힌 분으로 공경을 받는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조신하지 못했던 30세 과부가

성모님의 음성을 듣는 즉시 방황의 삶을 청산하고
작은형제회 제3회에 입회하여

보속과 극기로 재속 수도자의 모범이 되셨던
리미니의 성녀 클라라 님이시여

저희가 세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천상의 기도로 이끌어 주옵소서!......
아멘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2월28일(금) 음2/29

피렌체의 福女 빌라나 데 보티

 

 



빌라나(2.28)


성인명


빌라나(Villana)

 축일

2월 28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부인

활동지역

피렌체(Firenze)

활동연도

1332-1361년

같은이름

 



 
피렌체의 복녀 빌라나 데 보티(Villana de Botti)

 

 




 
 
 
빌라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상인인 안드레아 데 보티(Andreas de'Botti)의 딸로
13세 때에 집을 나와 수녀원으로 들어갔으나
부모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로소 디 피에트로(Rosso di Piero)와 거의 강제로 결혼하였는데,
이때부터 그녀는 세속을 즐기고 향락적인 여성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그녀가 거울을 보았는데,
자신의 모습이 마치 소름끼치는 사탄의 눈처럼 비쳤다고 한다.
두 번, 세 번 더 보았으나 자신의 몰골은 더욱 추악하게 보일 뿐이었다.
이때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죄스런 생활을 깨닫고
단순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도미니코회의 어느 신부에게 고백하였다.



 
 
그때부터 그녀는 도미니코회의 재속회원이 되었고,
그녀의 영적 생활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기도와 독서에 열중했는데,
특히 그녀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편지들과 성인전들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한 번은 걸인의 체험을 자기 것으로 할 요량으로 스스로 문전걸식을 하였다.
 
그녀는 가끔 미사나 영적 담화 도중에 탈혼에 빠졌고,
예언의 은혜를 비롯하여 초자연적인 은혜가 많음이 여러 형태로 드러났다.
사후 그녀의 유해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에 안장되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24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김예정의 은혜음자리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장된 자신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끼고

도미니코회 재속회원이 되어
성 바오로의 편지와 성인전 공부에 몰두했고
초자연의 은혜를 가득히 입으셨던
복녀 빌라나 데 보티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세속의 화려함에만 몰두하는 저희를
천상의 기도로 이끌어주옵소서!....아멘+



 
 
 
 
 


 

 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