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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원준 박사님 고대 근동 신화의 풍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13 조회수734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원준의 고대 근동 신화의 풍경 
 
1회 고대 근동학은 아직 낯선 일이다

고대근동학은 인류 최초의 문명을 다룬다. 구약성경이 탄생한 세계다. 믿음의 열기가 이렇게 드높은 나라에서 구약성경이 탄생한 세계에 대해 이토록 적은 관심을 보이다니, 어쩐지 ‘교세과 교양'이 조화되지 않은 느낌이다. 이런 부조화는 사실 한국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자주 느낄 수 있다. 
성경의 배경에 대한 교양 지식은 필수다. 교양이 늘어나면 그만큼 믿음의 시각은 넓어지고 더 포용적이 될 것이다. 고대근동학이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필수 교양이다. 


전해진 문헌
아래는 구약학자와 고대 근동학자들이 씨름하는 흔한 토판이다. 이 문헌은 기원전 1200년경 멸망한 고대의 도시국가에서 생산되었다. 처음 보신 분들의 눈에도 아마 썩 훌륭하게 보일 것이다. 토판의 표면도 매끈하고 좋거니와, ‘글자 크기’와 ‘자간’과 ‘줄간격’도 일정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쐐기문자는 토판에 ‘쓰는’ 것이 아니라 ‘찍는다’. 필자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점토판에 쐐기문자를 직접 찍어 본다. 무릇 ‘손맛’을 느끼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로로 그은 두 선은 '칼럼'을 구분한다. 사진에는 두 개의 칼럼이 보인다. 그런데 본디 칼럼이 하나 더 있었을 것인데, 아깝게도 완전히 소실되었다. 살아남은 두 개의 칼럼도 적잖이 부서졌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무척 양호한 편에 속한다.  
이 토판의 내용은 만신전의 최고신으로 등극하는 젊은 신의 이야기다. 이 도시국가의 왕권 신학과 직결된다. 그러니 이렇게 질좋은 토판에 기록했겠지. 아마 당대 최고의 장인과 지식인이 작성했을 것이다. 이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대 이스라엘이 있었다. 구약성경의 일부 책은 분명히 이 토판보다 후대에 발생했다. 


초교는 이미 수천년전에
그런데 참 재밌다. 아래 그림의 화살표한 곳을 유심히 보시길.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줄도 맞지 않고 글자도 조금 작다. 누가 봐도 한 단어 첨가한 것 같다. 그렇다. 바로 수천년전의 ‘교열’ 또는 ‘교정’의 흔적이다! 

학문적 약자로 corr.라고 한다. ‘교정’(corrigenda) 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기원전 1200년에 땅에 묻혀버린 문헌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적어도 3200년전의 교정’을 보고 있다. 
이 세 개의 글자는 13번째 줄과 14번째 줄 사이에 있다. 그런데 14번째 줄의 끝에 삽입되어야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자리가 없어, 약간의 여백이 남은 13번째 줄 끝에 작게 써 넣었다. 본디 교정은 여백에 궁하게 끼워 넣는 일인가 보다. 자세히 보면 칼럼의 구분선도 넘었다. 선을 넘더라도 반드시 고쳐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현대의 재교
사실 이 토판을 찍은 고대의 서기관은 이 근처에서 몇 번의 실수를 더 저질렀다. 그는 10째 줄에서 비슷한 글자를(k를 w로) 혼동했고, 몇 군데 띄어쓰기를 실수했는데, 교정되지 않았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그는 왜 이 근처에서 서둘렀을까. 왕권 신학과 직결되는 신화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으니, 무사했을까. 목숨으로 갚았을까, 관용의 은혜를 입었을까. 
글은 위대하다. 문헌은 참 많은 것을 전해준다. 우리는 수천년전의 ‘실수’와 ‘서둘렀던 마음’을 읽어낸다. 이름모를 고대 근동 서기관의 처지를 걱정하기도 한다. 때로 현대의 현대의 고대 근동학자는 고대의 교정자가 놓친 오류까지 찾아낸다. 


일리말쿠의 36칼럼 장편 서사시
토판의 뒷면에도 칼럼이 두 개 있다. 본디 앞뒤로 세 칼럼씩, 도합 여섯 칼럼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토판 여섯개가 모여 하나의 장편 서사시를 이룬다. 도합 36칼럼이다. 생존한 토판마다 깨지고 부서진 정도가 모두 달라서 이야기는 군데군데 끊어진다. 본디 여섯장의 토판 모두가 엇비슷한 크기였을 것이라 추측한다.

아래는 여섯째 토판 뒷면이다. 적잖게 부서졌지만, 다행히 칼럼 세 개를 모두 알아볼 수 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이 서사시가 끝나는 곳이다. 그 곳에 이 토판을 찍은 서기관의 이름이 있다. 그는 줄을 하나 긋고, 자신의 이름을 찍었다. 이 글을 책임지는 고대의 서기관은 일리말쿠(Ilimalku)라는 사람이었다. 니크맛두(Niqmaddu)라는 임금을 모셨고, 몇가지 관직이 병기되어 있다. 토판 뒷면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칼럼이 흐른다. 모든 문헌은 고유의 양식이 있다. 

일리말쿠는 넷째 토판 아래 여백에도 그와 그가 모신 임금의 이름을 똑같이 남겼다. 그런데 그는 누구일까? 직접 토판을 찍은 사람일까? 자기가 자기 문서를 교열했을까? 혹시 최종 교열자일까? 토판 생산과 관련된 모든 일의 감독자일까? 아니면 그냥 권위있는 당대 최고의 서기관으로서 이름만 남겨진 것일까? 구약성경의 이사야 예언서는 이사야의 충실한 제자들의 손에 의해 현재의 형태로 다듬어졌다는게 중론이다. 그들은 스승의 이름으로 예언서를 전승하길 원했다. 근대의 산물인 ‘개인’이 없던 시기다. 그리스 문명이 태어나기 수백년 전이었다. 이 문헌은 개인의 창작품이 아니다. 사상가 보다 전승자(Überlieferer)가 먼저 존재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내 생각 중에, 물려받지 않고 영향받지 않은 생각은 얼마나 될까. 종교는 전승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전승자다. 전승자는 복사기가 아니다. 전승 과정에서 체험과 고백이 묻어 간다. 묻어갈 수 밖에 없다. 새로 첨가된 체험과 고백은 다시 전승의 일부가 된다. 전승은 자란다. 

구약학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백년이 넘게 구약학자들은 구약 성경의 본문이 언제 어떻게 얼마나 편집되었는지, 크고 작은 편집과 교정이 왜 존재하는지를 따졌다. 우리에게 성경을 ‘전해준 분들의’독특한 체험과 고백’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의 계시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만, 전승자와 전승된 상황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신화에서도 그런 ‘문학적 층’을 파헤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리말쿠의 원본은?
조금 더 상상력의 날개를 펴 보자. 누군가는 명을 받았고 누군가는 여섯개의 토판을 준비하고 각 토판에 칼럼 구분 선을 그었을 것이다. 36개의 칼럼이 백지처럼 예쁘게 완성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글자를 하나 하나 찍으면 된다. 그런데 무슨 내용을 찍을까? 그렇다. 이미 ‘원본 텍스트’가 있었을 것이다. 왕권신학을 위해 준비된 장편 서사시가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3천2백여년전에 존재했을 ‘원본’은 또 누가 어디서 만든 것일까. 

전승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섯 토판, 서른 여섯 칼럼을 꽉 채울 장편 서사시가 완성되려면, 그 이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쓰여지고 교정되고를 반복했을까. 본디 짧은 이야기가 점점 자라났을까, 독립적인 여러 이야기가 하나로 묶였을까. 문서화되기 이전의 구전전승 시기를 가정한다면, 도데체 그 시작은 얼마나 아득할까. 이 도시국가가 멸망한 기원전 1200년경은 일반적으로 고대 근동에서 후기 청동기가 끝나는 시기로 본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시기가 여기서 불과 몇 백년 차이나지 않을 것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글자가 30개의 알파벳이며, 이 도시국가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도시국가의 유적에서 문자의 형성•변형•발전된 역사적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존에 존재했던 쐐기문자를 수입했다. 문자의 수입은 문화의 수입과 동의어다. 그렇다면 이 토판은 고대 근동의 다양한 교류를 전제한다.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서 이 도시국가의 문헌과 문물이 형성되었을까.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학은 한국에서 아직 낯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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