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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시적으로 선포해주면(희망신부님의 글)
작성자김은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17 조회수584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시적으로 선포해주면(마르 7, 31-37)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오늘 제1독서 열왕기에서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는 내용을 듣게 됩니다. 솔로몬 왕은 하느님께로 부터 많은 지혜를 받았지만, 이웃 민족들의 여인들을 아내로 삼아 살다가 늙어서 그들의 꼬임에 빠져 우상숭배 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전에 솔로몬 왕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 하고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왕은 듣기는 들었는데 귀로만,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데, 귀로만 들은 것입니다.

 

우리도 미사 때마다 좋은 성경말씀, 하느님의 말씀, 사제의 입을 통해서 여러 가지 많은 말씀을 듣습니다. 듣기는 듣는데, 그 말씀들이 우리 마음까지 골수까지 스며들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허투루 듣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알기는 아는데, 그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도 받아들여 마음에,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살아야하는데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되지 않고 영적으로 성장도 못하고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번 그 말씀을 들었으면, 그것을 죽을 각오로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노력할 때, 그러면서 인간적인 힘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 하느님의 은총을 끊임없이, 끊임없이 구할 때, 은총 안에 머물러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같은 내용들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셨습니다.’ 말을 못하는 사람들은 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고 합니다.

 

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직을 매일매일 수행해야하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많은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된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듣는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 우리 중에 귀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듣기는 듣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별해서 들을 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냥 한번 쭉 읽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또 그 순간 , 이것 좋은 말씀이네.’ 했다가도 그것이 가슴까지 내려와야 되는데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스피드 스케이팅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 다음날 성체조배 하는데, 스피드 스케이팅하는 선수의 그림이 계속 뇌리에 스쳐지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것들을 평상시에 많이 보고 많이 듣다보면,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런 것들만 보이고 들리는 것입니다.

늘 고요히 머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할 때, 그때 하느님이 조금만 싸인을 주셔도 바로바로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손가락을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치유해주셨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사람들은 가시적인 것들을 보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이 침을 발라서 혀에 대고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저분이 치유했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듣고 말하라' 하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때가 되었나보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귀에다 손을 넣고 혀에다 침을 발라 "에파타" 하니까, '정말 저분이 하셨구나.' 하는 것입니다.

 

미사 때 오늘 많은 은혜가 내렸습니다. 하면 은혜가 내린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듣지 않았으면 왜 몸이 가볍지! 몸이 시원하지! 하고 맙니다. 누군가 그런 은혜가 있었다. 하는 것을 가시적으로 선포해주면 그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치유미사나 기도회 때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부르면서 예수님의 현존을, 성령의 현존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마찬가지로 미사 때 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성체 성사도, 모든 성사들이 가시적인 것입니다. 고해성사도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자신이 고백하고 자기가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사제가 모든 죄를 용서해 받았다고 가시적으로 선언을 합니다.

 

병자성사 때는 기름을 바르면서 병자에게 회복을 주고, 용기를 주라고 합니다. 가톨릭의 성사 하나하나가 가시적인 표지입니다. 예수님도 그냥 말씀으로 하실 수 있으셨지만, 가시적인 표지를 통해서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우리도 성사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도록,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여러 가지 성사들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오늘 독서말씀과 복음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알아듣고, 내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이 내 말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 은총의 말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평화를 주는 그런 말씀이 내 입으로부터 나갈 수 있기를 이 미사 중에 간절히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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