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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상한 체험들
작성자김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20 조회수3,975 추천수4 반대(0) 신고


             그리운 고향 이상한 체험들


  국민학교 5학년 때라 하느님에 대한 상식도 진리도 전혀 알바 없는 어린 소년           시절의 일이다. 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체험이었기에 환갑이 넘은 오늘날 까지         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여왔으며 잊을 수 없는 잠제적인 신비의 사건이기           에 기억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실재로 있어든 거짓  

  말 같은 이러한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이야기를 하였다 하여도 귀담         아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유소년시절 초등5학년 때이고 그날은 일요일이며 늦은 봄 이른 아침 새벽의 일

  이다. 그때당시 나의고향은 벚꽃이 한껏 만개하여 온 동리가 온통 하얗게 물들         여졌을 때이며 아침이면 벚꽃이 밤새 바람결에 흩날려 온 동리가 하얀 눈으로   

  뿌려진 듯, 그 경관은 참으로 그지없이 아름다울 때이다.


  고향의 동리사람들이 아니라면 상상으로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 집의 위치는 마을에서 조금 높은 위치에 있어 동리의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었고 마루에 올라서 동리를 바라봄은 그야말로 장관장관 그자체      

  이다. 또한 저희 집 뒤 공터에도 아름 들이 벚꽃나무가 있기에 그럴 때면 지붕         과 마당까지 하얀 눈꽃을 뿌려놓은 듯, 하얀 꽃 지붕 꽃 마당이 되어버린다.


  또한 이른 아침이면 바람결에 벚꽃 잎이 맑은 해 빛살을 받으며 반짝 반짝 날릴     

  때에는 마치 바닷가 금모래가 반짝이듯 그 관경은 꿈속에서 동화의 나라 속에       찾아온 듯 가슴이 출렁이도록 설래진다.저희 집은 400평 남짓한 터 밭에 사방       

  으로 잘 꾸며진 탱자나무가 빼곡키 울타리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남들은         

  우리 집이 굉장히 부유한 집으로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은 너무나 가난하였고 어쩌다 학교에서 영세민들에게 나누어 주      

  는 우유나 강냉이를 배급 줄때이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집 형편을 모르         는 학생들은 부자가 배급을 받는다며 선생님께 일러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긴 집의 크기와 우리 아버지만을 보아서는 충분히 오해를 받을 만도하였다.        


  그때당시 우리 아버지는 군산 항만청 축항사무소 직원으로 출근을 하였고 국경      

  일과 일요일은 모두 쉬는 날이며 토요일은 반공요일이라서인지 출근만하고 퇴         근 하는 듯만 하였다. 술을 좋아 하시는 아버지는 월급을 받아도 언제나 집에는       빈 봉투다. 아니 빈 봉투조차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답일 것이다. 생각         해보면 월급날만 기다리던 우리 어머니가 참으로 가엽고 불쌍하기만 하였다.


  그런 환경을 보고 자라서인지 나는 어른이 되면 술과 담배는 절대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하였다. 어릴 때 내가 느끼는 우리 아버지는 동정심이 만고 담력이 대단     

  한분이시셨다. 허긴 우리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남들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만석       지기 땅 부자에 큰 호마(말)를 타고 다니셨고 담력이 커서인지 일정시대에는 일     

  본인 경찰들이 동리 아낙네들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총을       든 일본인 경찰 두 사람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때리고 크게 꾸짖으시고         사죄까지도 받아 냈다고 하신다.                                                                 


  그리하여 동리사람들은 그들이 우리 아버지를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며 피       신하라고 종용하였는데도 오히려 그들에게 바보처럼 바라만보고만 있었느냐고      

  나무라시기까지 하였다한다. 그러나 가정살림에는 무관심만한 빵점짜리 아버지       빵점의 가장이셨다. 전혀 집안 생활을 돕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언제나 술친구가 많으셨으며 이웃에게는 더없는 호인이셨다.                

  한참 때는 보증도 잘 서주시고 동정심까지 많아서 남들의 부탁은 거절을 못하고       증서도 없이 쌀(미곡)을 많이도 대여해 주면서도 돌려받지는 못하시는 분이셨다       고 한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늦은 밤에 찾아와 묵고 가기를 청하면 빈방을 거리     

  낌 없이 내어주시었고 자식들에게는 사람이 동정심마저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며       남들 돕는 일은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시었다.                                                 


  진정 집에는 쌀독이 바닥나있어도 그야말로 안하무인격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존심상하는 월급쟁이 취직을 하였으면 집안 살림도 돌       보며 조금은 걱정도 될 터인데 당신 혼자만 띵 똥 땡 한 것이 원망스럽기만 하였    

  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에게 원망과 불만이 생겨났으며 술과 여자는 신         중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특히 신앙을 가지면서는 더욱 굳건히 다짐을 하    

  였다.


  하지만 나에겐 아버지에 대하여 누구보다 더 따뜻하고 좋은 추억들도 많다.

  하루는 중학교 1학년 때인데 아버지께서 출근을 하시면서 웬일이신지 나에게 학    

  교 끝나면 곧장 부두 사무실로 오라고 하신다. 그날은 오전 수업만 있는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곧장 아버지 사무실로 찾아가니 아버지께서는 밖에 나와서 나를      

  이미 기다리고 계셨다.


  나를 보시자 배고프지 하면서 맛난 음식 먹으러 가자시며 시청 앞까지 150미터      

  쯤 걸어가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고는 그 옆 가게에 가서는 또 이것저것 과자등     

  한 봉지를 사시면서 내 아들이라며 자랑스럽게 소개를 하신다.                           

  그러고는 달아놓으라며 그냥 나오신다. 이집도 우리 아버지가 큰손님인가보다,     

  인사가 융숭하고 자연스럽다.                                                                     


  나는 아버지의 단골집을 엄마보다도 형들보다도 더 많이 더 잘 알고 있다. 그 덕       분에 배가 곱을 때면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아버지 앞으로 빵과 과자 등 군것질     

  하는데 만이도 몰래 써먹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한 번도 말    

  씀 하신 적이 없다.아무튼 부두에 돌아와 어느 작은 배의 문을 키로 여시고 들어       가신다. 그리고 손수 차를 타주시는데 커피인지 뭔지 차라는 것은 처음 마셔보았       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출근하여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였는데 그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아버지가 숙직담당이라 하신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큰 배들이 드나들도록 금강 상류에서 밀려와 침체되는 흙을 큰 기증기로       

  파서 수심을 유지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차를 마시고는 큰 배 구경하러 나가자고하신다. 큰 배 앞에 가서 처다 보니 배가       엄청나게 커 보인다. 그 배는 곡류를 실어 나르는 무역선이라 하신다. 오늘날의     

  큰 배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엄청 큰 배였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배       안도 구경시켜 주신다며 모두들 따라서 올라오라고 하신다.


  덕분에 그곳에 구경나온 몇 사람들도 나와 한일행이 되어서 몇 층 되는 철 계단     

  을 올라가 배안을 관람하게 되었다. 배안에 들어가니 구릉구릉 거대한 기계음이       진동한다. 지하 몇 층인지는 몰라도 그 안에는 주방과 욕실도 있으며 각자의 방     

  들도 많이 있었는데 이모든 구조물들이 쇠 덩어리로 되어있었다.                        


  나는 이렇게 크고 무거운 쇠 덩어리가 물위에 어떻게 떠다닐 수 있을까? 궁금하       여 안내하는 아저씨에게 여쭈어보았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김00氏가 아빠 되         시냐며 여쭈시기에 예하고 대답해드리니 공부를 잘하면 더 큰 배들도 얼마든지     

  떠다니게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공부라는 말에 그만기가 죽어버렸다.


  나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을 뿐더러 실지로 학교에서는 꼴등 순이다.                   숙제는 남들이 해온 것을 베끼는데 선수였고 집에서는 책가방을 풀어본 적이 없       을 정도로 그냥 메고 다니는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공부소리에 문득 몇 일     

  전의 일이 생각난다. 놀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그 시간까지 주무시지 않고       아버지께서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다짜고짜 나를 혼내기시며 누구 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도 타는데 너는 공부 하는걸 본적이 없다며 등등 술이 많이   

  취하시어 화를 내시는데 눈물이 나도록 혼이 났다. 아마 오늘일도 그날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자 마음이 서글프기만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왔고 다시 작은 배에 들어가그 배의 주방에서 저녁을 지어 맛나게 먹고서 각각   

  침대에서 잠에 들쯤 되었는데 어떤 여자한분이 쟁반에 술과 안주로 보이는 것을       보자기에 싸들고 찾아 왔다.


  아버진 깜짝 놀라며 그 여자를 큰소리로 혼내 끼시며 이 시간에 여기를 누구의         허락으로 들어왔느냐며 역정을 내시니 왈 그 여자 하는 말이 그동안 왜 한 번도     

  찾아주지 않으셨냐며 술 드시러 오시라고 인사차 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알았다며 그를 돌려 보내셨지만 한편 나는 그 여자가 애처롭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진 다시 자리에 누우시며, 나 들으라는 듯이 사내는 입이 무거워야한다.

  어떻게 저년이 내가 당직인걸 알았지, 하며 혼자 말처럼 하신다.                           나는 무슨 뜻인지 짐작은 하였지만 얼마가 지난 후 엄마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낫낫이 하고 말았다. 그밖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지만 너무 엉뚱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 같아서 이정도로 줄인다.


  아무튼 내 고향 동리는 참으로 안온하고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둘러싸인 아름다      

  운 마을이다. 또한 뒷산에 진달래꽃이 울긋불긋 필 때가되면 피어있는 꽃들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그지없다.

  우리 집은 특별하게 믿는 종교가 없었으며 어머님만 간간히 미신적인 민속신앙      

  을 가지셨다. 매년 7월 칠석날이면 하얀 시루떡을 해서 장독대에 초불을 켜놓고       정성스럽게 빌고 비르 신다.


  정월보름 새벽에는 창모지에 불을 붙인 다음 무어라 빌고 비르 시고는 날보고       

  그 불길 위를 뛰어넘어가라 하신다. 특히나는 연례행사처럼 매년 그러하였다.       

  어릴 때라 어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따라하였지만 한편 신기하면서도 새벽잠을         설치게 하여 짜증이 나기도하였다. 어디서 무당의 말을 듣고 와서 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연인즉 물 조심 불조심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 하신      

  다.

  어느 날은 나의 바로 둘째 형님이 물에 빠져 사고를 당하였는데 무당을 불러다         집에서 굿판을 한 적이 있었다. 한 할머니가 무당의 부탁으로 대나무를 잡고 무     

  당의 장구장단에 신들려 춤을 추다가 갑자기 흔들던 대나무가 중간쯤부터 바짝      

  쉬어지며 할머니를 끌어당기듯 집밖으로 끌고 나간다. 날보고 할머니가 위험하      

  니 등불을 들고 따라가라 하시어 왕복 1,000미터는 족히 되는 어두운 신작로 자       갈길을 뒤따라갔다. 대나무는 바짝 휘어진 채 떨면서 할머니를 끌고 가는데 지         치지도 않은 듯 자갈길을 잘도 뛰어가신다.                                                     

  전에 살던 집근처까지 거의 이르러서는 생전에 형님과 상당히 갈등이 많았던 그       집의뒷 모퉁이에 머무르더니 그 집 뒤 전나무를 향하여 잠시 꼿꼿이 서있던 대         나무가 다시 휘어지며 떨기를 한참을 그러하더니 오던 길을 다시 뒤돌아 오는데       오면서 나는 혼이라는 것이 참으로 있긴 있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밖에도 다른 이야기도 있지만 오늘의 본론을 여기서 이야기할까한다.


  이른 아침 새벽의 꿈결이라고 할까? 그러나 분명 꿈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고향에는 남동쪽으로 평지의 논이 펼쳐져 있고 사방으로 산들이 병풍처럼     

  어우러져있다. 윗골 쪽으로 독점 재와 소금재가 있는데 소금 재 넘어저 멀리에         서 누구인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라 어스름하다.                


  나는 그와 함께 동행을 하였는데 소금 재 넘어 반대쪽에 있는 우리는 소금 재        

  아래쪽으로 가까이에 당도할수록 가파른 양쪽 골짝이 산 밑이라 동쪽이 가려져     

  더욱 어둡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올라오다가 산 중턱에 잠시 서서       

  쉬면서 돌팔매질을 건너편 산 쪽을 향해 두 번을 던지더니 다시 숨을 헐떡이며         산에 오른다.                                                                                          


  이윽고 산 정상에 오르게 되었으며 동녘에는 붉게 떠오르는 햇살이 눈이 부시도       록 오색찬란하게 비춰진다. 그는 햇살과 마을 쪽을 바라보면서 잠시 앉아 쉬다         가 다시 일어나 마을로 향하여 뛰듯이 빠른 거름하여 산 아래를 내려온다.            

  그 산 소금 재는 해발 오-육백 미터 정도는 되는데 산 아래 골짝이 쪽으로는 국      

  군묘지가 넓게 자리를 하고 있는 곳이다.


  국군묘지 옆을 지나 신작로 찾길 을 따라서 또 열심히 뛰어서오다 이윽고 우리         집 근처 길목 구멍가게 처마 밑에서 멈춘다. 나는 이때까지 그와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어렴풋이나마 의식적으로 집에 있는 나의 육체를 가         지고 와야 그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식간에 집에 들러 그 자리       에 오니, 그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의아해 한다.


  오히려 나를 보고 이른 새벽에 웬일로 일직 나왔느냐 묻는듯하다.

  그는 내가 동행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는 키가 크고 나보다 3년 선배 되는       동네 형으로 우리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살다가 30리 정도 떨어진 비행장 바다         가 쪽으로 부모님 따라 이사를 간지가 6개월 정도는 되었다.


  대화를 하면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이사 간 곳은 친구도 없고 물         가에 자기 집만 달랑 한 채가 있는데 하루 종일 집에 혼자서 심심하게 지낸다        

  하며 너무 외롭고 심심해서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새벽부터 뛰어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그가 오면서 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다 알아맞히니 그는           놀라며 어찌 아느냐고 의아해 한다.                                                               


  그의 옷차림은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꿈에 보았던 그 색깔 그 모습 그대     

  로였다. 그는 말하는 도중에도 자기가 한 행동을 이토록 정확하게 보지 않고는         맞출 수없는 일이라며 의아해하며 몇 번을 거듭 물어보기도 하였다.                   

  나 또한 신비하여 오늘날 까지도 비록 어릴 때의 일이지만 잊혀 지지도 않지만         잊을 수도 없는 일이다.


  꿈이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정확하고 특히 그와 대화를 하기위해서는 육체를 가      

  져와야 한다는 생각이 의식 되었던 그 느낌이 어렴푸게나마 기억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난 이 부분이 오늘날 까지 신비롭게 간직하며 살아왔지만 꼭 숙제     

  의 답을 풀고 싶다. 이글을 보고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조언을 듣고 싶고 가      

  르침을 받고 싶다. 정말 누군가 꼭 연락주시리라 고대하여진다.                                                                                                               감사합니다.



                             광덕산 의 추억

                                                                                   지은이 김 시철

                 아름다운 광덕산 잊지 못할 산행이어라     

                 모두가 그리워진다. 차라리 꿈이었다면

 

                 너와나 정겨운 이야기에 미소 지으며

                 삼삼오오 오름세 땀을 적신다.

 

                 밝은 미소 맑은 마음 차라리 소박한 박꽃이어라

                 소박한 박 꽃 박꽃 속에 내 마음 내영혼도 담아볼까

 

                 산상의 눈 쌓인 하얀 설원

                 먼발치 산 아래 펼쳐진 설산의 풍광들

 

                 구불구불 구부러진 고갯마루 광덕 재 쉼터

                 한쪽 펼쳐진 고산의 쉼터시장 겨울은 깊어만 간다.

 

                 아니야 벌써 봄님이 오시려나 향긋한 봄의 향내가

                 아낙의 주섬주섬 만지자기는 나물의 손끝에서


                 정겹게 코끝 향기로 매만져 온다.

                 손님을 부르는 아낙의 화술에 봄은 살며시

                 가슴에 다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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