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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의 보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28 조회수1,206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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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간 금요일


 <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마르코 10,1-12




 

 나의 보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아주 가깝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로 혼인 관계입니다. 온전히 하나가 되어서 새 창조를 이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복음은 혼인과 이혼의 문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결혼문제는 단순히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신랑이고, 인간은 하느님의 신부로서(예레31,3). 하느님과 인간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서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강의장에서 강사가 물었습니다. “여러분!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이나 부인과 결혼 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손을 들더니 말했습니다. “난 지금의 부인과 살겠습니다.” 여기저기서 감탄해 하는데 강사가 물었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럼 만약에 부인이 싫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남자 왈, “그럼… 고맙지요. 뭐∼!” 다시 태어나면 같이 안 살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속마음이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어떤 분은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같이 살고 싶다고 하는데 배우자가 아주 싫어한다고!

 

바리사이들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당시는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로 취급되었습니다. 당연히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과는 맞지 않는 결혼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는 어떻게 가르쳤느냐고 물으십니다. 문제의 답을 항상 성경 안에서 찾도록 안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았을 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실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라고 한 것은 남자의 권위 하에서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한 것입니다.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에 이혼을 허락하여 자유를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사업에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똑같은 피조물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똑같은 하느님의 고유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서로는 각각의 아름답고 고유한 특성이 있지만 혼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 있고, 반드시 상대방의 도움을 통해서만이 채워져야 할 부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여보’라고 합니다. ‘여보’라는 말의 어원이 女寶 또는 如寶에서 비롯됐다는데, 부부는 ‘보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님들, 서로를 보물처럼 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원수처럼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혼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관계이지 자기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닙니다. 서로의 의무와 권리를 가진 동반자입니다. 서로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할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서로의 보물입니다.

 

자녀와의 관계를 봅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 떠남을 생각해야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놓아주는 능력, 이기심이나 독점욕, 지배력욕을 버리고 자립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합니다. 또한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기대지 말고, 의존하지 말고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스스로 서야 합니다. 부모에게 짐이 되지 말고 떠나야할 때 떠나야 합니다. 부모도 떠나보내야 할 때 떠나보내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있습니다. 자식은 자식의 고유한 인생관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새 가정을 형성하고 서로의 사랑과 의무를 키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완전함을 만들며 서로의 거들짝을 만나서 부족함을 채워가는 것이 결혼의 삶입니다. 서로를 도와주는 동반자로서 협력해야지 일방적인 자기 요구만을 상대방에게 강할 때 한마음 한뜻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 우리의 만남도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짝 지어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 수십억 가운데 자기 짝을 만나는 일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결혼을 인간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결혼해야 하고 사랑이 없는, 신의 없는 결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그렇게 소중한 관계입니다.

 

오늘 날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2년 우리나라 이혼부부는 11만 4,300여 쌍으로, OECD 회원국 중 이혼율은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혼으로 인한 한부모 가정 역시 2012년 167만7,415 가구로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혼율 증가 원인은 대표적으로 성격차이, 경제적 문제, 부정행위, 종교 문제 고부간에 갈등이랍니다. 특히 결혼 후 4년 미안의 신혼 커플이 이혼율의 전체 중 27%이고, 20년 이상의 황혼이혼은 25%를 차지합니다. 이혼을 멀리하던 사회가 왜 이렇게 급격히 이혼만능사회가 되었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로의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는데서 오는 불행입니다. 성격차이를 1순위로 꼽고 있지만 ‘너는 나의 것’이라는 일방적인 소유욕에서 불행이 시작됩니다. 서로에게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인격이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해야 될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수는 늘어났지만 참 신앙인은 많지 않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자, 영성체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세례때 서약한 우리의 의무를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미사참례는 의무가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부부는 무엇으로 살아야하는가?

이혼율이 낮은 나라, 고대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일수록

부부가 사랑으로 살기보단 도리로 살려고 한다

남편의 도리, 아내의 도리, 아버지의 도리, 어머니의 도리

그 도리 때문에 참고 인내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산다

얼마전까지 우리 사회가 그랬다

어려움이 와도 그 도리를 지키기 위해 희생적 사랑이 있었고

가정에는 그 열매가 있었다

 

부부간에 사랑은 중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

그러나 로맨틱한 사랑이 부부가 사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 가정은 그때부터 붕괴가 시작되는 빌딩과

같아질 것이다

 

부부가 행복해지려면 각자의 도리를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도리를 지키고자 할 때

따뜻하고 진정한 사랑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 박 필님의 지혜로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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