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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공동체에 있다는 것(희망신부님의 글)
작성자김은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28 조회수421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의 공동체에 있다는 것(마르 9, 38-40)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쫒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보려고 하였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쫒아내려고 하면 같이 가서 기도를 하며 힘을 보태주어야 하는데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하는 것과 다르다고 그러지 못하게 막습니다.

 

1988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했을 때, 많은 경기에서 심판들이 우리나라 편을 많이 들었고, 결과적으로 금메달을 엄청 많이 땄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을 위해 그렇게 하니까 다 용납이 된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누가 금메달을 땄는데 러시아인들은 당연히 자국 선수가 금메달을 받은 것이 용납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무리가 있고 그 집단의 움직임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면서 눈이 멀게 되는 겁니다.

 

신앙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어떤 소년이 콩고, 르완다 등을 다니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큰 위기가 온다고 외치며 이웃나라에 가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콩고라는 나라는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 제도를 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도 죄 의식 없이 여러 아내를 거느리고 살고 있고, 또 전쟁이 많이 일어나서 남자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그런 것이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집단적으로 하느님의 법을 우리는 이렇게 나름대로 이해하며 살아도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르완다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소년이 나타나서 일부다처제 하는 것은 간음하는 행위이니 다 보내고 한 여자와 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둘째 처로 사는 여자와 다른 부인들이 쫒아와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항의를 하고 이 소년을 죽이려고 까지 하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무리가 갖고 있는 위험한 모습인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도 비슷한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리의 생각이 다 맞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집단으로 잘못된 것에 동조해버리고 집단으로 영적으로 눈이 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무리라는 것이 서로에게 큰 힘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집단이 타락했을 때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악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당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로 구역 반, 분과, 단체, 등 여러 가지 무리가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하면서 가게 되면 서로 유기체가 되어서 조화를 이루어서 아름답게 공동체를 이루어 가게 되지만, 어떤 특별한 공동체가 두드러진다든지 자기만을 생각하고 타 공동체를 무시하게 될 때는 공동체의 조화가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무리에 있을 때는 잘 모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 생각이나 내 행동이나 무리가 하느님 뜻에 부합되는지 염려하고 또 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가 가지 않게 다른 단체가 잘 될 때 거기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더 기도해주고 더 잘되도록 하는 마음들이 우리 안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단체가 아니니까 흠을 잡는 다든지 트집을 잡는 다든지 하게 되면 공동체가 어렵게 되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누가 그 집에 시집을 와서 그 집에 적응을 하려할 때 참 많이 어려워합니다. 내가 그 무리에 들어가서 그 무리에 녹아든다는 것이 무척 힘이 든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도 그냥 있는 게 아닌 것입니다. 자기네 식구들이 잘못했을 때는 관대하지만 시집 온 새댁이 잘못하게 되면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자기가 낳은 자식을 내편으로 만들어 놓게 되고, 자식과 한편이 되어 남편을 따돌리는 역작용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지역에 비리가 많은 사람이라도 그곳에서 어느 당 공천 받아 심어 놓으면 당선이 되는 것처럼 집단으로 눈이 멀어 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하나 바보 만들기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모릅니다. 무리들이 네가 잘못 했어 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리가 그렇다고 하면 정말 그렇게 생각 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해도 그건 아니다 그건 하느님 뜻에 어긋나고 틀리다 하고 말하게 되면 예언자들처럼 왕따 당하거나 돌에 맞아 죽거나 할 것입니다. 무리라는 것이 안정감을 주면서도 한편으로 무리가 타락하거나 오염되기 시작하면 굉장히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그래서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법이 새겨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이 새겨져 있으면 온 무리들이 자기를 반대해도 난 그래도 내가 하느님 뜻에 맞는다고 생각해.’ 그러면서 자기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될 때는 갈대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외롭고도 때로는 고독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내편인데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선포해라 하면 선포하고 태문을 열어 주신다하면 그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편이라고 믿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믿으니까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떤 자매님이 오셔서 아기가 안 생겨 포기하려고 했는데 아기가 드디어 생겼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며느리 데리고 와서 인사 하겠다.” 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선포하는 것이 모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고 있다고 믿고 신뢰하고 지금까지 나를 만나주신 하느님은 저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뼛속까지 다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법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도록 될 때 무리와 함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되고,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무리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대열의 무리와 성인 성녀대열의 무리와 연옥 영혼들의 무리와 이 세상에서 의를 추구하는 무리와 함께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 될 길을 기쁘게 행복하게 걸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미사 중에 참다운 하느님의 아들딸로서 참다운 하느님의 공동체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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