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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련은 믿음의 정화와 단련을 위한 것이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3 조회수559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시련은 믿음의 정화와 단련을 위한 것이다.

 

1) 우리의 기도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부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2) 제 1 독서 : 베드로 1서 1,3-9

 

(해설)

 

환난에 놓인 신앙인들에게

하늘에 간직된 신앙의 상속 재산에 대한 기억을 권고한다.

지금의 시련은 믿음의 정화와 단련을 위한 것이다.(해설)

 

베드로1서 1,3-9 참조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오늘의 복음 : 마르코10,17-27

 

(해설)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의 길을 물었던 부자 한 사람은,

그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사는

예수님의 말씀에 슬퍼하며 떠나간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비유를 드신다.(해설)

 

마르코10,17-27 참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느가?"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4) 오늘의 묵상 : 교황님은 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나?

 

교회가 가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관심을 돌리는 것은 늘 쇄신의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교황님은 교황 선거가 끝난 뒤

가깝게 지내던 브라질 의 한 추기경에게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라'는 간곡한 조언을 들었으며

바로 '가난'을 반려자로 삼으며 통회 생활을 했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던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삶의 중심에 두는 가운데 재물을 홀로

소유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 그들과 함께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신앙인의 길, 교회의 길에서 결코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단히 마음에 새겨야하겠습니다.

 

그러기에 분별력과 현명함을 마땅히 주님께 청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에 대한 신중함과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재물에 집착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할 수 있는 내적 자유와 결단이 없다면, 그것은

복음의 참뜻을 흐리게 하려는 마음이나 다름없습니다.

(매일 미사책에서 참조한 글입니다.)

 

저의 묵상 : 일주일이 시작되는 오늘을 산다는 것도 신비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작품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육과 영으로, 즉 흙으로 사람의 몸을, 육체를 만드섰으며

인간의 머리, 즉 생각과 사고력이 들어 있는 영혼을 그 육체에

넣어 주셨기 때문에 인간은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과학의 발달과 의술의 발달로 신성의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파헤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밝히신 것과 같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인간의 머리로서 찾아 낼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있지만

아직도 찾아 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감추어진 것은 주 우리 하느님의 것이다."(신명29,28)

 

우리들은 오늘이라고하는 시간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고 기쁨을 누리면서

이웃과 함께 찬미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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