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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실' 보다 '태도'!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3 조회수582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네가 하늘나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오늘의 복음 말씀을 매우 좋아하는 분 계시면 손 들어 보십시요!

아마 열분 중에 한 두 분 계시면 많을 것입니다.

가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하시는 말씀 (예를 들어 손이 죄를 지으면 잘라 버리라는 등)들을 글자 그대로 행한다면 아마 내 안의 '자학'이란 쾌감의 이기심은 반작용으로 말미암아 더 자라 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사실' 보다도 그 사실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 합니다. 그래서 '인간' 입니다.

'동물'들은 '사실'만이 중요하지 그에 대한 '태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순전히 기초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성'을 관장하는 뇌가 따로 발달 되어 있어서(대뇌피질) 어떤 일이건 간에 그 일에 대한 해석과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심연히 존재 하기 마련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는 말이 하루 종일~ 성당에 있고, 하루 종일~ 기도하고, 하루 종일~ 성경 읽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 일분 일초라도 (억지로라도) 하느님의 신비와 자비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고 기뻐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발산 하는 뇌의 기능을 재정비 하라는 의미 입니다. 

이런 것은 하루 종일 '신앙적 행위'를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행위들이 믿음을 얻는데 참고가 되긴 하지만 '무리한' 신앙적 행위에만 의존하는 것은 자칫 '형식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내용과 형식'을 두루 균형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진 것을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쉽게 남에게 '선뜻 내 주기' 란 '신앙적 결단' 없이는 않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도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은 '어렵다'고 털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거창한 '신앙의 행위'보다도, 신앙에 대하여 '믿는' 작고 소소한 그 어떠한 '열정'들...생각이나 '긴장감'들을 유지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태도'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옳바른 표현같지는 않습니다.

어쨋든 그러한 '내용'에 관한 '진지한 고찰'이랄까? 무엇이 진정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인지 상식을 뛰어 넘어서 생각해 보는 것...참~~표현 하고 싶은데  글로도 표현이 않됩니다.


우리가 어떤 '고통' 이란 '사실' 중에 있다면 

'분명 이 고통 뒤에 무엇인가가 좋은 것이 있을 거야! '

라는  '(긍정적)태도'가 중요한 것이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그 자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그 고통을 연장 시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복음(낙타와 바늘 )을 오해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부자는 절대 척국에 갈 수 없다' 라고 생각 했습니다.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한다고 

성경의 단락을 끝까지 읽어 보지도 않고 이렇게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선배가  

"그 단락 끝에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없다' 고 한 말은 왜 무시 하냐? "

라는 말을 듣고 뒷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낙타가 바늘을 통과 하는 것은 '인간'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불가능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낙타와 바늘' 비유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편에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예수님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창조주'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그분께 온전히 맡겨버리라'는 이 위대한 신앙의 원리는 합당 한 것입니다.


'온전히' 입니다. 

'선한 노력'이 필수 입니다.


하지만 '노력'이란 한번쯤 분별하고 숙고 해 봐야 합니다.

원래 인간의 모든 '노력'은 ego(이기적 자아) 가 하는 일(엘버트 놀런 '오늘의 예수'참조)입니다.  

'주님'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지 말라도 본능적으로 하게 되고야 마는 이 '노력' 에 너무 많은 의지를 해서는 위험 합니다.

'노력'에만 의지하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것의 공격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나를 만든 '창조주'에게 의지 해야 합니다. 


'돈'이란 것을 대할 때의 태도가 

그것을 우선시 해 버리면 

나중에 내 손에 움켜쥔 그 돈을 어이 없이 잃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우선시 하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은총과 함께 우리가 꼭 필요하고 유용한 돈을 손수 마련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벌고 있는 돈을 내가 벌고 있다고 착각 해서는 않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나눔'에 대하여

" '나눔'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 그들의 것을 그들에게 돌려 주는 것 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내가 버는 돈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착취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에게 즉시 돌려 주어야 하는 것일 뿐이란 이야기 입니다.

암부르시오 성인이 한 나라의 '왕'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존적으로 '내가 하는 노력'은 무슨 의미 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삶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노력이 많다고 무조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 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선시' 는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내가 가치의 비중을 어디에 더 많이 두고 있는가? 하는 '질량'의 의미 입니다.


이처럼 그분의 일에 비중을 더 많이 두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그분의 일에 동참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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