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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9일 복음 묵상(세 번의 유혹)
작성자오승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4 조회수431 추천수1 반대(0) 신고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11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8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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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유혹>

 

악마에게 세 번이나 유혹을 받으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무슨 동화 속 이야기 같습니다. 게다가 성경 배틀까지!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진짜 하느님이요, 진짜 사람인 예수님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물론 이렇게 배운 대로 마무리해 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조금 더 이상하다면 예민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스토리로 보지 않고 구절구절을 나누어서 보니까 그렇습니다.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랍니다. 그 다음에는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에 세운 다음'이랍니다. 여기에는 훨씬 구체적인 악마의 행위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데리고' 다녔고, 도성으로 '가서'는 성전 꼭대기에 '세운', 세 가지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유혹에도 그렇습니다.'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보여 주며'랍니다. 이번에도 악마는 '데리고 가다'와 '보여주다'의 두 가지 적극적 행위를 합니다.

 

이쯤 되면, 예수님은 그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신 정도가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질질 끌려다닌 것입니다. 아무리 공생활 이전이라고는 해도, 메시아 예수님은 이토록 나약한 존재입니까? 이렇게 나약해서 나 같은 인간과 비슷한 존재인 겁니까? 예수님과의 동질감이 이렇게 강하게 느껴져도 되는 겁니까?

 

부귀와 명예와 권력에 대한 유혹뿐 아니라, 사실 인간이 더 시달리는 유혹들은 슬프고 싶고, 아프고 싶고, 주저앉고 싶은 유혹들입니다. 이 모든 걸 합쳐서 고통에 대한 유혹이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복음의 두 번째 유혹은 고통의 유혹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결과는 죽거나 크게 다칠 것이 뻔합니다. 고통에서 주님이 건져 주시리라는 기대, 이것이 주님께 대한 시험이라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고통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정답입니다.

 

정말 희한하게도, 악마는 예수님의 자유의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악마는 예수님의 등을 떠밀지 않았지요. 그랬다면 악마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일거에 시험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여기서 저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고통이란, 스스로 선택한 유혹의 결과라는 것을요. 누구나 예수님처럼 유혹의 현장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너무 자주 있는 일이어서, 심지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유혹의 성전 꼭대기인지 의식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머무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모든 고통이 유혹의 결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고통은 성부께서 내리신 희생 제사이지만, 그분이 스스로 선택하는 신비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유혹이 아닙니다. 어떤 고통은 선택하지 않으려고 자유의지를 아무리 발휘해도 찾아옵니다. 사회구조적 불의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이런 경우 초인적 정신력을 발휘해서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고통을 받아내신 예수님처럼 참된 인간의 길 안에서 고통을 견디고 서로 연대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고통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 퍼시아저씨.(20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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