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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5 조회수1,119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3월 5일 재의 수요일

 
 
 "Take care not to perform righteous deeds
in order that people may see them;
(Mt.6,1)
 
 
제1독서 요엘 2,12-18
제2독서 2코린 5,20─6,2
복음 마태 6,1-6.16-18
 

비가 오면 우산을 펼쳐 쓰거나, 만약 우산이 없다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얼른 이동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비를 홀딱 맞고자 할 때도 있습니다.

몇 년 전이었습니다. 혼자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었지요. 무척이나 더운 8월 여름날이었지요. 더군다나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이제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소나기가 시원하게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입니다. 이 소나기를 피했을까요? 아닙니다. 땀을 뻘뻘 흘리던 무더운 날에 쏟아지는 소나기는 저에게 하나의 축복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 따라 괴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은총과 축복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 어렵고 힘들다는 것, 정말로 피하고 싶은 것들, 그 모든 것들도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상황이 나쁘다고 무조건 거부할 것인가요?

기도를 하면 들어주십니까? 안 들어주십니까? 사실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문제는 들어주는 시기를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정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서두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순간의 만족과 기쁨만을 청하다보니 부정적인 생각이 그리고 불평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마르셀 파뇰’(솔직히 누군지 잘 모릅니다)은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낙관적인 사람에게 삶은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다. 삶 자체가 이미 해결책이다.”

주님께서 주신 삶. 따라서 그 자체가 모든 문젯거리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다보니 해결책보다는 문젯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삶에 대해 “삶은 멋진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그가 중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 했다고 합니다. 좋은 상황이나 나쁜 상황이나 상관없이 모든 삶 그 자체가 멋지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님께서 주신 삶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십 일간의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바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는 곧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둡고 힘들어 보이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영광스러운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삶은 멋진 곳임을 기억하면서, 어렵고 힘들어도 그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은혜로운 사순시기를 지내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단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서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기쁨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란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무엇이든 가능한 한 많이, 빨리 해결하고자 한다. 여기서 생기는 것은 언제나 많은 만족과 적은 기쁨이다(헤르만 헤세).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시는 예수님. 우리 역시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야 합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향해....

어떤 책에서 ‘왜 세상 모든 아기는 예쁠까?’라는 질문을 보았습니다. 잠시 생각해보았지요. 왜 아기는 다 예쁠까요?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을 이 책은 이렇게 간단히 말합니다.

“예뻐 보이려 하지 않으니까.”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계속해서 꾸밉니다. 인위적인 모습 안에서 순간적으로 ‘예쁘다’는 말은 나올 수 있겠지만, ‘참으로 아름답다’라는 말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꾸미는 겉모습보다는 꾸밈없는 속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다 ‘사랑’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 드러나는 곳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음을, 그래서 사랑이라는 주님의 계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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