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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죽어야 산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5 조회수1,223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재의 수요일 다음 목요일


<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복음: 루카 9,22-25





예수를 무덤에 안장함


카라바죠 작, (1602-1603),  바티칸 박물관 회화관


     < 죽어야 산다 >

          

용배는 아이들이 바보라고도 부르고 똥빼라고도 부르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조금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눈 크고 마음씨 착한 아이입니다.

교실은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로 시끄러웠습니다. 여자 담임선생님은 한쪽 책상에 앉아 무슨 일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가 일손을 잠시 멈추고 아이들을 타이릅니다.

조금만 조용히 해라. 선생님이 지금 너무 바빠서 그래....”

이 말에 교실 분위기가 잠시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또 속달속달 수선을 피워댔습니다. 순하기만 하던 선생님도 화를 버럭 냈습니다.

조용히 좀 하라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선생님이 바쁠 때는 조용히 자습할 줄도 알아야지.”

교실 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선생님은 일 하던 책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기저기서 쿡쿡 웃음이 터졌습니다.

도대체 누구니?”

선생님은 교실 뒤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선생님은 용배의 등 뒤에 삐뚤빼뚤 커다란 글씨로 써진 똥빼 바보라는 종이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어? 누구야?”

개구쟁이 영만이가 슬며시 손을 들었습니다.

영만이 너는 앞에 나가 손들고 서 있어. 서 있다가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앞으로 불러내. 그러면 너는 들어가도 돼. 알았지?”

잠시 후, 영만이는 짝궁과 소곤거리는 남자아이를 불러냈습니다. 불려나온 아이는 영만이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일분도 안 돼 떠들지도 않은 용배를 날 선 목소리를 불러냈습니다.

용배, 너 나와.”

용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 앞으로 나갔습니다.

용배는 두 손을 번쩍 들고 교실 앞에 섰습니다. 물렁팥죽 같은 용배가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마음 놓고 시시덕거렸습니다. 깨죽깨죽 까불며 자리를 옮겨 다니는 아이도 있었고, 움켜쥔 주먹을 용배에게 들어 보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용배는 큰 눈을 슴벅이며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배윗덩이처럼 무거워진 두 손을 치켜들고 용배는 끙끙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용배는 팥죽같이 땀을 흘리며 이십 분이 넘도록 서 있었습니다.

용배, 너 정말 아무도 불러내지 않을 거야?”

선생님은 고통스러워하는 용배가 안쓰러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용배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선생님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용배의 이마 위에 송골송골 맺혀 있던 땀방울이 용배의 눈물과 함께 교실 바닥으로 방울방울 떨어졌습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릴 때까지 용배는 아무도 불러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용배에게 다가갔습니다.

용배야, 이제 그만 손 내려도 돼.”

선생님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용배를 안아 주며 말했습니다.

용배야, 미안해.... 선생님이 너무 미안해... 이렇게 착한 용배를 친구들은 왜 바보라고 놀리는지 모르겠구나.”

선생님은 용배 눈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만가만 닦아 주었습니다. 눈물을 닦아주는 선생님의 눈가에도 눈물이 어른거렸습니다. 용배를 괴롭히던 아이들도 모두 다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창문 밖 은행잎이 팔랑팔랑 춤을 추며 땅 위로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연탄길 3, 내 짝궁 용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주 당연한 듯이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만 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반드시 죽음 뒤에 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죽음을 강요하십니다. 당신 때문에 죽는 사람은 그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죽지 않는다면 목숨을 구하지 못할 것이란 뜻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살려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배 반 안에서 선생님을 포함해 모든 아이들은 살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조용해 주기를 원했고, 아이들은 떠들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는 이 두 세력 사이에 끼어서 살지 못하고 희생당한 한 아이가 바로 용배입니다. 용배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희생하여 죽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나 아이들은 이 용배의 죽음으로 스스로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용배는 죽었지만 반에서 가장 인정받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빛이 되었습니다. 용배 덕으로 그 반은 서로를 배려해주는 사랑이 넘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생명은 죽음 위에 내려옵니다. 성령은 우리의 제물이 바쳐지는 제대 위에만 내려오십니다. 성모님의 자기를 봉헌하는 아멘!’이란 희생 위에 성령의 은총이 내렸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아멘위로 아버지로부터 부활의 성령을 받으신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이 세상에도 그 은총을 충만히 뿌려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이 내려오실 수 있는 유일한 제대였고,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을 희생함으로써 그 위해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밀알이 빻아져 빵이 되어 봉헌되지 않으면 그것이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이 희생되고 봉헌될 때야만 나도 살고 세상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어야만 살 수 있다는 진리는 우리가 사순절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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