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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6 조회수1,058 추천수11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3월 6일 재의 수요일 다음 목요일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save it.
(Lk.9,23)
 
 
제1독서 신명 30,15-20
복음 루카 9,22-25
 

저는 어제 제 동창신부가 있는 본당에서 재의 수요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신자들이 많이 오시니 재 얹는 예식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지난주에 받았었거든요. 저는 이 부탁을 듣고 제 일정을 전혀 살펴보지도 않고 흔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사실 어제에는 교구청 직원 미사가 있었고, 저녁에도 미사가 있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도 저는 교구청 직원 미사를 하지 않고, 동창신부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단순히 친한 동창신부의 부탁이라서?

아닙니다. 제가 이 동창신부의 부탁으로 매주 월요일 새벽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지지난주에 늦잠을 자서 새벽미사를 가지 못한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일어난 시간이 6시. 새벽 6시 미사인데 6시에 일어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성당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거의 30분이 걸리기 때문에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얼른 동창신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동창신부는 제게 화를 내기보다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내가 미사하면 돼.”라고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제게 화를 냈으면, 저도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지. 한 번 실수한 것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니?”라고 말하면서 맞받아 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괜찮다는 말을 해주니 더욱 더 미안했고, 그래서 그 동창신부의 부탁에 무조건 응답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동창신부와 저의 관계와 비슷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모두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곧바로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다시금 기회를 주시면서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얼마나 죄송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우리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또 입으로만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너무나 미안하고 감사해서 미사를 함께 해달라는 부탁에 곧바로 응답했던 것처럼, 주님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다면 당연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곧바로 응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지요. 미안한 마음을 또 감사한 마음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서 아무런 응답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제 재의 수요일을 기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냥 연중행사로 치루는 식의 사순시기가 아니라, 가슴깊이 회개해서 주님의 뜻에 제대로 응답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주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고, 주님을 통해 진정으로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이란 남들이 자기에게 던진 벽돌로 튼튼한 기초를 쌓아 가는 사람이다(데이비드 브링클리).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진정한 기쁨을 찾아라(안셀름 그린, ‘내면의 멜로디’ 중에서)

어떤 사람이 세상의 온갖 재미를 전부 쫓아다니며 방탕하게 사는 것은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로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쁨을 느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재미와 만족을 찾아 계속 돌아다니며 그러는 동안 한계를 모르고 집착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기쁨이 없는 상태는 병적으로 재미를 찾는 행위의 모태이다. 쾌락을 좇는 사회현상은 그 시대의 허망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시대엔 기쁨이 없다. 사람들은 마음의 기쁨을 잃었기 때문에 재미를 찾아다닌다. 그 재미라는 것도 대개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가며 쥐어 짜낸 것이다. 재미를 위해 종종 다른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심지어 웃음거리를 찾으려고 다른 사람을 악용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그 행위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식의 재미에 맛들인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자주 슬프고 허망한 표정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그들은 내면의 온갖 슬픔을 밖으로 드러낸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기분을 몰아내고 싶은 것이다.

재미는 단지 외부에 머물 뿐 마음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사실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미 기쁨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길어 올릴 수 있는 보물 가운데 하나이다.

요즘에 읽고 있는 책의 내용입니다. 순간적인 기쁨과 쾌락만을 좇는 이유를 말하고 있지요. 진정으로 기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니 내 자신도 순간적인 기쁨과 쾌락을 좇을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기쁨을 찾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 바로 진정한 기쁨을 찾는 시기입니다. 수난과 죽음이라는 어두움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를 거친 뒤에 보여주신 당신의 영광스러운 부활은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조금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닌, 이 너머에 있는 진정한 기쁨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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