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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단식의 목적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6 조회수903 추천수14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재의 예식 후 금요일


<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복음: 마태오 9,14-15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6), 제노바 롯소궁전


     < 단식의 목적 >

          

아씨시에 가면 포르치운콜라라고 하는 프란치스코가 움막을 짓고 살았던 자리에 있는 작은 경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프란치스코가 욕정이 오를 때마다 뒹굴었다는 장미 밭이 있습니다. 그 장미 밭에서는 아직도 가시가 없는 장미가 자라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하도 뒹굴어서 가시가 다 빠졌다고 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가장 보고 싶었던 여인은 걸어서 30분 거리의 다미아노 성당에 있는 글라라였는지도 모릅니다. 글라라도 프란치스코가 보고 싶었을 텐데, 프란치스코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제자들에게, “여기에서 거기까지 길에 꽃이 피지 않으면 나는 그 곳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정말 길 양옆에 꽃이 피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글라라를 만나보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극기만을 원하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끔 어디까지 절제해야 하는가?’라는 혼란이 올 때가 있습니다. 아마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워낙 극기의 삶을 사신 분이라 그분의 제자들은 당연히 육체를 절제하는 삶의 이로움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영성의 대가 십자가의 성 요한도 가장 빠른 영적 진보의 방법은 몸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친 철사와 천 등을 감고 다니며 온갖 고행을 했습니다. 이는 성경에도 나옵니다. 영과 육은 서로 반대된다고 예수님도 그러시고 바오로도 그렇게 말합니다. 육체가 배부르면 성령의 힘은 그만큼 숨이 막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신학생 때 유학 가서는 잠을 4시간 정도 자고 밥도 하루에 한 끼 먹고 고기도 안 먹고 물도 잘 마시지 않았습니다. 삼일 가까이 음식은 물론 물도 한 방울 안 마셔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20킬로가 덜 나갔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프니 자연적으로 얼굴이 찡그려지고 함께 놀아달라는 친구들도 조금은 귀찮아졌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가르치는 교수들에게도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힘이 드니 수업시간엔 졸려서 잠들기 일쑤였고 그래서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자신의 육체와 싸우는 사람이다.’라는 자만심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몸도 이기지 못하여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을 교만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논문 지도교수와 다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모습은 아마도 오늘 복음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사실 단식의 좋은 점은 작고 겸손해지는 데 있습니다. 나의 나약함과 보잘 것 없음을 알고 이런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의 위대함에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이 불만스럽게 느껴질 때 단식을 하고 겸손해 졌고 다시 감사하는 삶을 체험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때는 사람을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아니 내 주위 모두가 나보다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단식하여 겸손해지려는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교만을 키우는 단식을 했다는 뜻입니다. 무조건 기차를 탄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항상 행선지를 확인하고 타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단식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단식을 하느냐고 하십니다. 함께 있을 때 단식하는 것보다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인 것입니다. 이렇듯 극기의 목적은 겸손해짐과 더 깊고 넓은 친교가 우선 되어야지 극기 자체가 가치 있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기도만 하는 수녀를 자꾸 성당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더 깊은 친교를 위함인데 기도만이 가치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기도나 극기를 하면서 남을 판단하거나 혹은 사람이 귀찮아진다면 그것을 당장 그만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타볼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함이 행복했지만 이 지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 것은 에너지 낭비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한다면 항상 무엇을 지향하고 이 행위를 하는지를 잘 살펴야합니다. 겸손과 사랑과 친교의 목적이 아닌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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