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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단식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7 조회수686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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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7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ㄴ 마태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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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단식

-수행의 잣대는 사랑과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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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된 단식을 통해 참된 수행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먹고 겸손한 것이 안 먹고 교만한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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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32년 전,

아빠스에게 들은 헛된 단식의 정곡을 찌른 촌철살인의 유머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아이스 크림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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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하며 먹는 형제들을 판단하고 스스로의 수행에 자만한다면

그런 단식은 주님 보기에 역겹고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단식하며 판단의 죄를 짓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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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도공동생활하면서 원장으로 있는 동안

공적으로 함께 하는 단식 외에는 거의 한 적이 없습니다.

형제들에게 들어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공동체적으로, 또 주변에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들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덕입니다.

하여 사순시기 특별 수행을 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아빠스의 기도와 동의를 얻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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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각자는 자신이 바치고자 하는 것을 자기 아빠스에게 알려서

그의 기도와 동의를 얻어 실행할 것이니,

영적 아버지의 허락 없이 하는 일은 주제넘은 짓이고 헛된 영광이라 여겨지며

아무런 공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성규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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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취의 허영과 교만에 바탕을 둔 수행을 경계한 말입니다.

사실 단식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일 뿐입니다.

굶주리고 허약한 자에게 단식은 무의미하며 먹어야 합니다.

하루 육체노동으로 일하여 먹고 사는 자에게 단식은 사치이며 비현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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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단식이 필요한 자는 생각과 몸이 비만한 부요한 자들이며

이들은 단식의 비움을 통해 배고픈 형제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단식뿐 아니라 침묵도 가난도 마찬가지 상대적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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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가치는 사랑 하나뿐입니다.

고독과 외로움 중에 살아가는 말이 굶주린 독거노인들은 말을 많이 할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이분들에게 침묵은 사치이며 비현실적입니다.

또 가난한 자들에게 가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복지를 향상시켜 최소한의 인간 품위를 유지하며 살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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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나 예언자들은 고행의 금욕가도 수행자나 수도자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삶을 통해 참된 수행을, 참된 단식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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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수님은 단식에 별다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으셨으며

그렇다하여 단식자체를 비판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예언자들처럼 그 의미의 상실을 나무라실 뿐이셨다.

단식은 본디 모든 구원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여는 것이다.’

(주석 성경; 신약 편61-62쪽).

단식은 예수님께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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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의 호전적 질문의 예봉을 지혜롭게 피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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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전혀 무관한 단식이요,

단식의 때가 오면 그때 단식할 것이며

지금은 제자들과 함께 축제의 삶을 즐기겠다는 현실주의자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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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침울한 고행이 아니라 기쁨의 축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의 축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렇게 사시어

'먹보요 술꾼이며 죄인들의 친구'라는 영예로운(?) 칭호도 들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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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당신의 원하시는 참된 단식이 무엇인지 통쾌하고 명쾌하게 밝혀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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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주는 것, 억압 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 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5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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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구체적 사랑의 실천이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단식입니다.

주님은 단식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랑의 실천이 빠진 허영과 교만의 헛된 단식을 비판하십니다.

이렇게 참된 단식의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의 빛은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우리의 상처는 곧바로 아물게 됩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우리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우리 뒤를 지켜줍니다.

그때 우리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우리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하고 말씀해 주십니다.’(이사5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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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참된 단식의 정신을 일깨워주시어

당신 앞에서 사랑과 겸손의 참된 수행자로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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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시편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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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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