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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 프란치스코: "가장 어려운 자선과 단식은..."
작성자김정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8 조회수939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오늘 주님의 이름 아래 이곳에 모인 모든 형제 자매들과 저를 축복하시어 기쁨과 평화 안에서 주를 찬미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또한 주님을 알고자 처음 이곳을 방문한 이들과,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다가 다시 주님 품으로 부르시어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용기의 은혜도 허락하소서. 아멘.




† 찬미 예수님!



교황 프란치스코: 가장 어려운 자선 (또는 단식)는 상처입은 이들에게 몸을 굽혀 끌어 안아 주는 것입니다.
Pope Francis: The most difficult charity (or fasting) is to bend over and hug a wounded person
                                                                                                            2014-03-07 13:12:09



...

March 7, 2014. (Romereports.com) Pope Francis added that God will judge the behavior towards the others.




상처 입은 이들이나 고통 받고 있는 형제 자매들의 몸을 만지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십니까? 금요일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집전하신 아침 미사의 강론 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기하신 주요 질문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자선의 삶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자선의 삶을 실행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위선자 임을 강조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자선의 필수적 역할에 대한 성찰로 강론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공허한 자선의 마음을 은폐하기 위해 위선적인 좋은 모양새를 뒤집어 쓴 사람들을 위한 형식적인 예식의 저장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고통 받는 이, 그가 누구든지 수치스러워 하지 않고 그들 앞에 몸을 굽히시는 예수님의 몸을 나타냅니다. 이는 예수님, 그리고 단식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사도들을 비난하던 바리사이들, 그리고 준수해야 할 계명들을 형식적 행위로 변형시키고 종교적 삶을 윤리로 바꾸어 버린 율법 학자들과 대조됩니다.



주님께로 부터 성부의 사랑을 부여 받고, 우리 주님께로 부터 인간의 정체성을 부여 받아, 이를 윤리로 변형시킨다는 것은, 우리가 사랑의 은총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위선적인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다 실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선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에 대한 유대감을 잃었으므로 선함(goodness)이 없는 윤리학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진정한 자선이나 단식이란 악의 사슬을 끊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굶주리는 이들과 우리의 양식을 나누며, 집없는 이들을 맞아들여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58:6,7 참조)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선과 단식입니다! 우리 형제의 삶에 대해 근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식, 이것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했듯이- '형제의 몸을 수치스러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완성됨, 우리의 거룩함은 우리가 선택하고 그 일부가 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거룩함의 가장 위대한 행동은 우리 형제의 몸,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기 제대에서의 거룩한 우리 행동은 '위선적인 단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오늘 여기에 오신 그리스도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신비입니다! 이것은 굶주린 이들과 우리의 빵을 나누고, 병든 이, 노인,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답할 것이 없는 이들을 돌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그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자선 (또는 단식)은, 서둘러 지나가 버린 사제와 다르게 상처 입은 남자를 보고 감염의 염려도 무릅쓰고 몸을 굽힌,  착한 사마리아인이 실행한 것과 같은 선함의 희생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성교회가 제시하는 문제입니다. -"나는 형제 자매의 몸을 부끄러워 하는가?"



내가 자선을 베풀 때, (그 가난한 사람의, 걸인의) 손을 만지지 않은 채 동전을 떨어뜨리는가? 의도치 않게 만지게 되었을 때, 급히 손을 떼지는 않는가? 자선을 베풀 때, 나의 형제 자매의 눈을 바라보는가? 어떤 이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서 병문안하는가? 나는 애정을 가지고 그를 또는 그녀를 맞이하는가? 우리를 도울 수도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질문입니다. -병든 이, 노인, 어린아이들을 안아주거나 애정 표현을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애정 표현의 의미까지도 잊었습니까?  위선자들은 애정의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 방법조차 잊었습니다... 우리 형제의 몸을 수치스러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몸입니다! 이 형제 자매들에게 행한 그대로 우리도 받을 것입니다.



http://en.radiovaticana.va/news/2014/03/07/pope_francis:_the_most_difficult_charity_(or_fasting)_is_to_bend_over/en1-779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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