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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확신(Conviction)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08 조회수1,201 추천수1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1주일


<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


복음: 마태오 4,1-11






천사들의 경배를 받는 성모자


 몰랭의 화가 작, (1490), 브뤼셀, 벨기에 왕립미술관


     <확신(Conviction)>

        

영화 컨빅션(Conviction: 확신)’케니오빠와 그의 여동생 베티 앤의 기적 같은 감동 실화를 영화한 것입니다.

케니와 베티는 전혀 자신들을 신경써주지 않는 어머니 밑에서 자랍니다. 그런 가정이다 보니 남의 물건도 훔치고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기도 하며 지나치게 개구지게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둘의 우애는 너무나 깊어서 케니는 여동생 베티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감옥에도 가끔 다녀오는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갑니다.

어느 날 둘이 사는 동네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여인이 매우 처참하게 살해됩니다. 전과기록이 있고 얼굴에 상처가 나 있다는 이유로 경찰관은 나무를 자르고 있는 케니를 긴급체포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자 그를 다시 풀어줍니다.

2년 뒤 아버지 장례식 날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케니를 살인죄로 다시 체포해갑니다. 이번에는 수많은 증거들이 발견됩니다. 그가 사용하던 피 묻은 칼이 증거물로 제시되고, 특히 케니와 사귀었던 한 여성이 그가 살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고, 또 그의 아내가 2년 전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와서 한 사람을 죽이고 왔다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증언하고, 살인자의 피가 ‘O’형인데 케니의 피도 ‘O’형이기 때문에 재판은 무기징역으로 판결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이 판결을 믿지 않는 유일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동생 베티입니다. 베티는 그의 오빠가 결백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오빠를 빼내기 위해 항소하고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몇 년이 흐릅니다. 그러면서 케니는 평생을 감옥에서 썩을 수 없다며 자살시도까지 하게 됩니다.

베티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자신이 직접 변호사가 되려고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돈과 시간이 소비되면서 가정은 편치 못하게 됩니다. 남편은 다른 여자가 생겨 별거하게 되고, 그녀의 두 아들도 자신들에게 신경써주지 못하는 엄마를 원망하며 아빠에게 가려 합니다. 베티는 자신과 오빠를 신경써주지 않았던 그 밉던 엄마의 모습이 자신에게서도 비춰지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가정을 돌볼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늦은 나이에 공부하려다보니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 학사경고까지 받아 변호사가 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어주던 친구까지 오빠가 진짜 범인이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그녀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오빠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그녀의 확신(conviction)’은 확고부동 하였습니다. 그 확신이 거의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던 그녀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습니다. 아무 죄 없이 감옥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오빠 생각에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오랜 시간 고생한 끝에 변호사가 되게 됩니다.

변호사가 되고 난 그 때는 이제 시대가 변해서 혈액의 ‘DNA’ 검사란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베티는 오빠의 혈액으로 DNA 검사를 하면 되겠다 싶어 증거물 보관소에 문의했지만 증거물은 이미 폐기되었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 없다는 증거물을 끈기 있게 찾아냈고 오빠의 DNA가 칼에 묻어있던 혈흔에서 추출한 DNA와 일치하지 않음을 밝혀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검찰은 증인들의 진술이 있으니 직접 살인은 하지 않았을지라도 공범일수 있지 않겠느냐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베티는 그가 살인했다는 것을 들었다는 케니의 옛 애인과 전 부인을 찾아갔지만 그들은 위증죄로 감옥에 가게 될까봐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아주 오랜 설득 끝에 그들이 경찰의 위협으로 위증을 하게 되었다는 서명을 받아내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으로 밀어붙여 재판을 뒤집어 18년 만에 오빠를 감옥에서 빼내게 됩니다.

그리고 20097월 장장 8년간의 재판 끝에 정부와 전 경관으로부터 34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242명을 DNA 검사를 통해 결백을 입증해 주었고, 그중 17명은 사형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무죄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었고 또 수많은 누명을 쓴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생명까지도 구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따르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나가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왜 성령께서는 유혹받는 곳으로 예수님을 데려갔을까요? 예수님은 이제 막 공생활을 시작하시려는 때였습니다. 공생활이란 인간 구원을 위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의미합니다. 그 때 유혹을 받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사탄의 유혹은 삼구(三仇)’, 즉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라, 마귀(교만), 육신(성욕), 세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유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보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천사들이 와서 떠받쳐 줄 것이 아니냐?’교만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나 된 듯이 행동하는 것이 곧 교만입니다. 또 돌을 빵이 되게 해 보라는 것은 육신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식욕과 성욕은 비례한다고 정의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의 온갖 영화를 주겠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영화’, 즉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유혹에 넘어갔었지만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유혹을 이기시고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죄를 짓지 않는 것 이상으로 이 유혹을 받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께서 이 유혹을 받도록 하신 것은 곧,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반드시 죄를 짓지 않으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베티도 케니를 구하기 위해 노력할 즈음,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여 그녀의 발을 잡았었습니다. 만약 그 유혹들에 자신을 포기하고 말았다면 케니 뿐만 아니라 미래에 그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즉 이웃을 사랑하여 좋은 것을 주려면 먼저 죄를 이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도 죄에 조금이라도 당신을 내어주셨다면 우리 구원은 모두 허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 제목처럼, ‘확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포기하면 오빠는 죽는다.’

내가 죄에 떨어지면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비록 자신의 눈에는 이것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예수님께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고 하셨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먼저 깨끗하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폼페이란 영화가 개봉하고 있습니다. 폼페이는 예수님 시대 때의 도시였지만 매우 부자였고 매우 타락했었으며 또한 매우 교만한 도시였습니다. 참으로 상징적인 것은 그 찬란했던 도시가 순식간에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살던 사람들도 평균 수명이 40이 안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수도관까지 갖춘 발달된 도시였지만 그 연결부위가 납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납중독으로 오래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내 주위 사람들이 그 죄의 악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은총은 나를 통해 나가는데 내 안에 죄가 있으면 그것이 쓸려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이 죄가 있으셨다면 예수님도 그 죄를 받으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사랑한다면 먼저 내 자신 안에 죄가 없도록 유혹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사랑의 시작이자 마침일 수 있습니다. 이 확신이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힘을 줄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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