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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과 일대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희망신부님의 글)
작성자김은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10 조회수705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과 일대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마태 6,1-6. 16-18)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사순시기에는 알렐루야 하면 안 되는데, 사순시기가 왔다는 것이 기뻐서 알렐루야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교회에서 전례 시기들을 주었다는 것이 대단히 깊은 뜻이 있고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순시기에는 힘들기도 합니다. 제가 사순시기를 맞이하면서 고통으로 시작됐지만, 그만큼 은총이 풍부하기에 그런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오늘 요엘 예언서에서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겉옷,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슬퍼하면서 하느님께 돌아오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코린토 2서에서 바오로 사도도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라고 하시고,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라며 우리가 죄 중에 회개하지 않고 은총을 청하든지 성체를 모신다든지 이렇게 헛되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말라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또한 자선을 베풀 때도, 또 기도할 때도 위선자처럼 해서는 안 된다. 단식할 때 위선자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러면 숨을 일도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모든 것의 중심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내 마음을 찢고 심장을 찢고 회개하라.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단식을 하는 것도, 자선을 베푸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기도 합니다. 그게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하기 위해서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이 맑은 사람들은 내 마음의 움직임, 내 마음의 변화들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게 되는데 내가 얼마나 사람들 앞에서 허영을 부리고,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남을 시기 질투 하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잘난 척을 하는지, 이런 모습들을 바로바로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분을 고해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구할 때, 고해성사의 은총으로 영혼이 변화 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로 영혼의 힘을 얻고, 고해성사로 정화되고, 변화되고, 성장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영혼의 성장에 있어서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는 중요한 두 축입니다. 인격적인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고해소에서 사제의 인격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해소에 나갈 때는 긴장되고 두려움도 있고, 그런 것은 내 양심을 만나고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기도 한 것인데 그것은 건전한 두려움, 경외함인 것입니다. 회개에 있어서 자기 자신과 하느님과의 만남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대림 시기나 사순시기의 고해성사를 교회에서는 정해놓은 것입니다.


아침기도로 주님의 뜻에 따라 살게 해달라고 청하고 또 하루를 마치며 저녁기도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잘못된 일을 살피고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하며 꾸준히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은 훌륭한 신앙인인 것입니다.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며 사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변화도 없습니다. 자기 영혼이 얼마나 피폐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성인들도 일주일 이 멀다하고 고해 성사를 자주 보았는데 그만큼 영이 맑기 때문에 자기에게 티끌만 묻어도 털어내려고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볼 때 신부님이 날 알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서 피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좋게 보이기 위해 교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이 뭘 고해했는지, 어떻게 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영혼을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영혼이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기쁘게 하느님을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이 사람에게 필요한 어떤 보속을 줄지 무슨 말을 해서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줄지를 생각하지 단순히 형식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자주자주 성사를 봐서 여러분들의 영혼이 점점 더 거룩해지고 자기 자신을 잘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사를 볼게 없다는 자체가 교만인 것이며 성찰을 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야 성체를 모셔도 되겠지 하지 마시고 작은 것이라도 자꾸 봄으로써 죄에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노력할 때 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미사에 빠져도 성체를 모시고 대죄 중에도 성체를 맘대로 모시면 안 됩니다. 반듯이 고해성사를 하고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자선을 베풀 때에도 굶주리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주님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내 자선이 미약한 것이지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고, 기도할 때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부족한 것을 말씀드리며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내 말만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들, 또 단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굶주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자비를 청하고 단식한 비용을 모아서 어려운 곳에 보낸다던지 할 때, 내 단식한 행동과 마음과 물질적인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내 인격과 하느님이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안을 거룩하게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 고해소 안에서 내 삶에 대해 인격적인 고백들이 이루어지면서 한편으로 이 세상의 아픈 곳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 때 공동 고백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이 편리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공동고백에는 인격적인 만남이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를 신자들이 많이 보면 사제가 시간을 더 많이 내면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수도회 사제 등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겉옷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을 찢어라. 하느님과 화해하라. 숨은 것도 다 아시는 그 분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라.’ 고 하십니다. 우리 자신들의 영혼,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 미사 중에 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일대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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