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누구든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12 조회수794 추천수1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1주간 목요일


<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


복음: 마태오 7,7-12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1661)


     < "누구든지!" >

          

좋은 교사 운동본부에서 서울의 초, , 고생들을 바탕으로 선생님의 어떤 행동에 고마움과 미움을 느끼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아직 어린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체벌할 때의 선생님이 가장 싫고 수업을 재밌게 하는 선생님이 가장 좋다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중고생의 경우에는 선생님이 차별할 때가 가장 싫으며 관심을 가지고 따뜻하게 대해줄 때 가장 좋다고 응답했습니다. 유의할 것은 이들이 말하는 차별이란 매우 작은 행동들에 대한 것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들이 언제나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만 시험 잘 봤니?”라고 얘기하는 경우, 성적이 좋으면 품행이 좀 안 좋아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 수업을 상위권 아이들과만 소통하며 진행하는 것 같은 일들이었습니다. 아주 작고 소소한 부분이지만 학생들은 그것들을 가장 큰 불만으로 여겼습니다.

초등생의 경우도 단순한 체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이 잘못했을 때 혼자만 혼내는 경우라든가 자신이 무엇 때문에 혼나야 하는지 뚜렷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당하는 차별이 밑바탕에 깔린 체벌을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조: 햇볕 같은 이야기, 체벌보다 나쁜 차별/ 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세종대왕이 위대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 해 줄 수 없다면 아무에게도 해 주지 마라.’

즉 편애와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랑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편애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본당에서 항상 이런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교구청에 들어와서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제가 교구청으로 들어와 좋은 것 중의 하나가 그나마 본당에 있을 때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퇴근시간도 있고 휴일도 있어서 개인적인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조금 쉬는 맛을 알다보니 한 가지 나쁜 마음이 생겨났는데 여기저기서 청해오는 강의부탁이 조금씩 귀찮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교구청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시간도 더 여유로운데도 본당 차원이나 아니면 밤늦게 하는 강의들은 거절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쳐 주어서 학위를 딴 것이고 하느님께서 좋은 능력을 주셔서 당신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셨는데 이제는 가려가며 강의를 하려는 저의 모습을 보며, ‘참 교만해졌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별이나 편애는 교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청하여라. ‘누구든지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더욱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누구든지란 말은 아무나 쓸 수 없는 말인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달라면 다 줄게. 누구든지 용서해 달라면 다 용서해 줄게. 누구든지 재워달라면 다 재워줄게. 누구든지 만나달라면 다 만나줄게...”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의 깊이가 헤아릴 길 없는 것 같습니다. 죄인이건 선인이건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청하는 대로 다 들어주시겠다는 말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인 것입니다. 만약 사랑이 부족하면 편애을 하거나 아니면 다 똑같이 못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누구든지다 사랑해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다 들어주겠다는 말은 또 얼마나 큰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단어입니까? 가려가면서 주고 가려가면서 문을 열어주는 삶이 두려움 때문에 부자유스러운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고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주시겠다는 그 사랑은 또한, 참 사랑만이 참 자유를 선사할 수 있음도 깨닫게 해 줍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누구든지란 말을 쓸 경우는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만큼 무한한 능력과 사랑을 지니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나에게 청하면 누구든지 다 도와줄게.”라는 정도의 사랑과 자유로움은 가지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누구든지 청하면 다 들어줄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시 다짐해 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