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13 조회수1,501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3월 13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Mt.7,12)
 
 
제1독서 에스테르 4,17(12).17(14)-17(16).17(23)-17(25)
복음 마태 7,7-12
 

요즘 사람들의 발걸음이 성당보다는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점점 신앙인들이 줄어드는 것, 그만큼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 사실을 늘 안타까워하던 신부님께서 어느 날 미사 강론에서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아무리 주님의 말씀을 전해도 듣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체험해야 주님의 말씀을 믿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다음 주 미사 전에 저기 보이는 산을 이리로 옮기는 기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 와서 보시고, 주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산이 옮겨진다는 말에 사람들은 “저 신부, 미친 것 아냐?”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말하면서도, 너무나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에서 “정말로 혹시 산이 옮겨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약속했던 시간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산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산을 이리로 옮겨주십시오.”

그러나 산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신부님께서는 “주님! 산을 이리로 옮겨주십시오.”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또 다시 “주님! 산을 이리로 옮겨주십시오.”라고 말했지만, 산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사람들은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지요. 바로 그 순간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해도 산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산이 옮겨져서 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것과 제가 산을 향해 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제가 산을 향해 가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종종 불평불만을 던지곤 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만 내게 다가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반대로 여러분이 주님께 다가간다면 문제의 해결은 더욱 더 쉬워집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내게 직접 다가오시길, 즉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다 해주시는 주님을 청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반대로 내가 주님께로 다가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주도권을 주님께 철저하게 맡기는 겸손함과 자기 낮춤이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내가 청하는 대로 받았습니까? 또 내가 찾는 대로 얻었고, 문을 두드리는 대로 활짝 열렸습니까? 아마 많은 이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청해도 응답이 없다면서 주님 곁을 떠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주님께 주도권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에, 즉 주님이 무조건 내 곁으로 다가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주도권을 모두 맡겨서 내가 직접 그분 곁으로 다가간다면 이뤄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 주도권을 맡기는 삶. 우리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미지의 것을 발견한 것만이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똑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도 훌륭한 삶의 재발견이다(구본형).

 
전국 성소국장 회의가 인천에서 2박 3일간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최한다는 것 힘드네요.

 

 
성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신자들에게 성소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줄 것을, 마음이 오로지 그분께로 향하여 허황된 우상이나 부(富)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제들과 수녀님들을 보내 주시도록 청하셨습니다. 그 전문을 올립니다.

복음은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그가 해야 할 일을 여쭙던 부자 청년 이야기입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계명들을 지켜온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더욱 나아가게 인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습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이 말씀에 그는 얼굴을 떨구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예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을 따르도록 성령께서 그를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는 그것을 비워낼 용기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는 선택을 했습니다. 재물을 택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재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강도나 범죄자는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니지요! 그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훔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누구도 속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그의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갇혀 있었고, 재물에 집착하였으므로 선택의 자유(여지)가 부족했습니다. 재물이 그를 선택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는 이 소명을 느끼고, 그것에 열정을 가질까요. 그들은 그분 앞에 무릎 꿇는 것을 수치스러워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을 따르고자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어떤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그 마음을 비워낼 용기가 부족하면, 그들은 등을 돌리게 되고 그들의 기쁨은 슬픔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성소를 지닌 많은 젊은이들이 있지만, 때로는 그들을 가로막는 것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젊은이들의 마음이 비워지도록, 다른 관심거리들과 다른 감정들을 비워내도록, 그렇게 해서 그들이 자유로워지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성소를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 수녀님들과 사제들을 보내주소서, 그들을 우상으로부터, 허영의 우상, 자만의 우상, 권력의 우상, 재물의 우상으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우리의 이 기도가 이들의 마음을 준비하게 하여, 그들이 예수님을 더 가까이 따를 수 있게 합시다. 복음에서 묘사된 이 청년은 참으로 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슬펐습니다. 오늘날 그와 같은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주님, 이 젊은이들을 도우시어 그들이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 되게 하시어, 그들의 마음이 오로지 당신께만 향하도록, 그리하여 주님의 부르심이 그들에게 이르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소서."

이것이 성소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만 합니다. 성소를 받은 이들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성장하도록, 그래서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들어오시어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허락된 형용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기쁨을 주시도록 도와야 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