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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15 조회수848 추천수10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3월 15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Be perfect,
just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Mt.5,48)
 
제1독서 신명 26,16-19
복음 마태 5,43-48
 

언젠가 공사현장을 지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앞을 걸어가던 사람들이 공사장 외벽 펜스의 한 부분에 서서는 무엇인가를 보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 앞을 가보니 그 외벽 펜스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위에 누가 장난삼아 쓴 듯 이러한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들여다보지 마시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저 역시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일까요? 더군다나 제 앞을 걸어가던 사람들이 바라보던 이 구멍을 그냥 지나치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지요. 물론 그 구멍 안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공사 현장 외에는 특별한 장면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선만 실천하고 악을 피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그 많은 실수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그 뜻에 맞게 살려는 노력과 이해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주님의 생각과 같아질 수 있도록 내 몸으로 체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영이나 자전거를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냥 저절로 잘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선 배워야 하고 또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고 곧 이해를 넘어 내 몸이 체득하게 되는 것이지요. 즉, 수영이나 자전거를 타는데 어색함 없이 내게 너무나도 편안하고 쉬운 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절로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묵상 등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습해야 어느 순간 주님을 이해하게 되고 체득하게 되어, 주님과 참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시지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실천하기 쉬운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내게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다시 되돌려주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내게 원수 같은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 십자가를 통해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를 보고 배워서 끊임없이 연습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해를 하게 되고, 이해를 넘어 주님을 내 몸으로 체득할 수 있어 완전하신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십자가를 배우고 연습하는 사순시기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 십자가를 다시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니체).

 
만지지 말라고 하면 만지고 싶어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올해 60세인 형제님께서 등산을 갔다가 어느 연못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못의 물이 갑자기 출렁거리며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연못 주변인데, 연못의 물이 움직이니 너무나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지요. 그 순간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루살렘의 ‘벳자타 연못’이 출렁거릴 때, 첫 번째로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물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모두 뛰어넘어 직접 소원을 들어주셨지요). 그래서 얼른 연못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그 순간 천사가 나타나서는 “소원을 말하시오.”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생 최대의 기회이니 서둘러 자신의 소원을 생각했지요. 순간 젊은 여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보다 서른 살 적은 여성과 함께 살게 해주세요.”

이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글쎄 60세였던 형제님께서 90세 노인으로 변했다고 하네요.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을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함께 하는 삶, 특히 사랑으로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좋은 길이며 행복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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