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예수님의 길은 고통의 길/묵주 기도 7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17 조회수737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고통의 신비 묵상을 끝내면서 : 1/2 

 

고통이 없는 영광이 있겠는가.

그 영광이 더 큰 영광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고통 또한 더 커야 하는 모양이다.

지금 하느님의 영광이 온 누리에 빛나고 있다.

예수님의 고통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다.

우리는 지금 그 영광 속에서 즐거운 삶을 만끽하고 있다.

이 영광은 예수님의 고통으로 얻었다.

예수님의 고통은 하느님이 손수 창작하신 작품이다. 그분이 손수 연출하신 작품이다.

그분은 이 고통을 영원히 남을 온 인류의 영광으로 이끄셨다.

 

이 커다란 고통 속에는 성모님의 숨은 뒷바라지도 계셨을 것이다.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부터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이미 그렸는지 모른다.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아기 예수를 안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전에 바쳤던 그날,

그 시각의 시메온의 이야기를 시종 되새겼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성모님은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예수님이 게쎄마니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시는 기도를 올리실 때에도 먼발치에서 지켜보셨으리라.

제자 유다의 배반,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아들을 모른다고 딱 잡아 때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자기변명의 소리도 들었다.

베드로는 고작 닭 우는소리만 들으셨지만.

그러나 불상한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동족으로부터 갖은 수모와 매 맞는 모습,

로마 병정으로부터 월계관이 아닌 가시관 쓰신 아들의 모습,

어미로서는 차마 봐서는 안 될 당신 아들의 그 몸부림치는 비명도 들으셨으리라.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수모를 겪으면서도 당당하셨다.

빌라도의 심문에 예수님은 구차한 변명도 없이 의연히 십자가의 고난을 택하시는 최후의 증언을 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진리가 무엇이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내가 파스카 축제 때에 죄수 하나를 풀어 주는 관습이 있소.

내가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원하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라고 물어보면서

이 지구상에서 범한 최대의 오판에 관여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쓰인 하느님의 시나리오인 그 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을 잠재우려고,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는 주인공이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행보에는 많은 군중이 뒤따랐다. 홀로 가시는 예수님이 아니셨다.

그 무거운 십자가도 지나가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져 주었다. 비록 로마 병정에 의해 강제성을 가졌지만.

 

그리고 골고타의 십자가 위에서도 그분은 혼자가 아니셨다.

그분의 양옆에는 두 도독 놈이 호위해 주었다.

그 중의 한 놈은 다른 한 놈을 심히 꾸짖으며,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이렇게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라고 변호인이 되어 주었다.

그 도독은 아마도 천당 직행 열차를 타 예수님과 함께 보무도 당당히 입성하였을 게다.

 

물론 그 십자가 아래에는 한 많은 성모님도 말없이 계셨다.[계속]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