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20 조회수1,144 추천수1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2주간 금요일


<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복음: 마태오 21,33-43.45-46






성가정


Antolinez, Jose 작, 부다페스트 파인아트 미술관


     <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

 

         송정림씨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란 자신의 수필집에서,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라는 소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사랑엔 표현이 반드시 필요한데, 왜냐하면 표현 없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씁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만큼 듣기 좋은 고백이 있을까요? 신발은 신고 있기만 하면 신발의 역할을 못하죠. 신고 걸아가 줘야 신발 노릇을 합니다. 자전거 역시 마찬가지예요. 타고만 있으면 가지 않습니다. 꼭 페달을 밟아야 나아가죠. 가람개비도 들고 뛰어가야 바람개비이고, 비눗방울 놀이도 불어 줘야 방울이 맺히고, 풍선도 불어야 부풀어집니다.

사랑도 다르지 않겠지요. 마음에 품고만 있으면 상대의 마음에 가서 닿지 못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바람 부는 세상에서 털옷처럼 따뜻하고, 피곤한 몸을 감싸는 하얀 홑이불처럼 부드럽습니다. 그 말이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강풀의 만화를 영화화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소개합니다.

이 영화엔 젊은 사람들의 사랑과 연세가 든 이들이 말하는 사랑이 대조됩니다. 이 영화에는 네 명의 노인이 나옵니다. 성격이 까칠하고 입담이 거친 우유 배달부 김만석 할아버지는 새벽 배달 길에 파지 줍는 할머니 송씨와 마주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우유 한 통을 건네기도 하고, 송씨 할머니가 비탈길을 내려 갈 때는 어느 새 나타나 리어카를 잡아주고, 비탈길을 올라갈 때는 또 어느 새 나타나 리어카를 밀어줍니다.

 

이웃집에는 장군봉 할아버지 내외가 살고 있습니다. 장군봉 할아버지는 작은 주차장의 관리인이며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가 길을 잃을 것이 두려워 대문을 밖에서 잠그고 다닙니다. 치매에 걸렸지만 아이처럼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아내 순이, 그런 그녀 곁에서 평생을 한결같이 함께해 온 군봉, 두 사람은 상대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자식들은 명절 때 찾아와, “자주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바쁘게 떠나지만, 자주가 언제 일지 이 노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내를 보살펴 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장군봉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내가 위암 말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죽는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된 치매 걸림 위암 말기 환자 아내를 혼자 저 하늘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안 좋은 말이 들리지 않도록 연탄가스 중독으로 위장하고 아내와 함께 마지막 길을 동행합니다. 장군봉 할아버지는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움직이며 아내의 얼굴을 가만가만 쓸어주며 말합니다.

당신 만나서 참 오래 같이 살았다. 나는 새로 태어나도 당신인데, 당신은?”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미안한 얼굴로 말합니다.

당신은 주고, 나는 받기만 했는데 내가 어떻게....”

군봉 할아버지는 순이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잘 자래이. 나는 겁쟁이라서 당신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그러니께 내 손 꼭 잡그래이. 알겄재? 우리 또 만나재이.”

순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길을 함께 합니다.

 

이렇게 마지막 길을 애틋하게 동행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마지막 길을 차마 볼 수 없는 사랑도 있습니다. 송이뿐 할머니는 새롭게 사랑을 시작한 김만석 할아버지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서 떠나겠어요. 얼마 안 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겠지요. 그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저 세상으로 보낼 수 있겠어요? 처음 만난 이 행복, 고향에 돌아가서 간직하고 그렇게 늙어 가고 싶어요.”

송이뿐 할머니를 고향에 데려다 준 김만석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안고 슬퍼합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또 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서 상대를 그리워합니다. 결국 김만석 할아버지는 얼마 안 가 죽음을 맞습니다. 죽음 직전에 꿈속에서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준 장갑을 끼고 오토바이로 할머니를 태워줍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준 머리핀을 꽂고 할아버지가 모는 오토바이 뒤에서 신나가 들판을 달려갑니다.

 

강풀은 우리에게도 참 사랑의 의미를 묻습니다. 참 사랑은 가슴 아픕니다. 함께 죽음을 맞는 것도 가슴 아프고, 헤어져서 참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도 가슴 아픕니다. 그러나 이 가슴 아픔이 있어야만 참 사랑이 아니겠느냐고 이 세상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십자가 위해서 피와 물을 쏟으시며 이것 없이 어떻게 사랑을 말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손바닥 위에 놓인 성체를 볼 때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될 지에 대해 예언하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포도원을 만들어 주고 떠나셨습니다. 당신이 해 줄 것은 다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작은 사랑의 표현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러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로만 그들을 깨우쳐 줄 수 없기에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주시는 사랑까지 보여주셨지만, 소작인들은 그분을 죽이는 것으로 하느님의 은혜에 보답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그것 없이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두가 내 것이고 그것 밖에 주지 않은 하느님에 대해 원망하며 내가 가진 것을 아주 조금도 하느님께 바쳐드리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내 안에서 사랑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사랑이 없는 사람도 결국 죽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스스로 표현할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내 안에서 사랑은 죽게 됩니다. 사랑한다면 표현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표현이 곧 도조’, 즉 하느님께 받은 것을 도로 바쳐드리는 것입니다. 성찬례 전에 반드시 봉헌이 있듯이,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살리는 길은 그분이 나에게 주시기 위한 가슴 아픔에 나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도 나의 십자가를 지며 내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