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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사순 제3주일 - 구원의 생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23 조회수786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구원의 생수

  

 

 

†찬미예수님

 

우리가 살아가는데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잘 아실 겁니다.

육신을 살리는 물을 우리는 살아있는 물, 생수라고 그럽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물에게 화를 내면 그 물의 결정이 찌그러지고 깨어진다고 합니다.

물에게 칭찬을 하면 그 물의 결정이 아름다워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물을 먹을 때 마다

‘참 고맙다..다...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 몸으로 들어가는 물은 산삼에 비할 정도가 아닌

엄청난 보약으로 변해서 들어간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피곤한 여인입니다.

한 남자와 살아도 피곤한데 여섯 남자와 살았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왕따를 당하고 상처투성이인 이 여인이 예수님에 취해서 예수님을 알립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물을 영적인 측면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물의 특징은 부드럽고 정화의 기능이 있으며 아래로 향하는 하향성,

또 어떤 그릇이든지 자기 모습을 바꾸는 겸손과 인내와 자기극복의 적응력이 있습니다.

또 이번 일본에서 일어난 쓰나미와 같은 무서운 파괴력이 있습니다.

 

물의 종류가 많은데 우선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첫 번째로 낙수(落水)를 들고 싶습니다.

낙수 라고 하는 것은 처마 끝에서 똑똑...... 하고 떨어지는 바로 그 물입니다.

그 낙수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떨어지면 그 밑에 있던 바위나 돌멩이가

파여지고야 마는 흔적을 남깁니다.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가 그게 내 신앙생활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십자성호를 정성껏 그으면 그 낙숫물이 닫힌 마음을 열어줍니다.

 

남에게 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천국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낙수와 같이 살아야 됩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낙수는 바위를 뚫습니다.

기도의 낙숫물이 우리의 어두운 영혼을 뚫어서 심장을 쪼개고, 뼈를 쪼개고,

세속적인 욕심을 불태워버리는...엄청난 능력이 있는 그 물이 바로 낙수입니다.

 

두 번째, 流水(유수)가 있습니다.

유수는 낙수에 의해서 생겨난 흐름, 흘러가는 물입니다.

물은 모이면 흘러갑니다.

흐르는 물에서 우리는 수신(修身)의 교훈을 배웁니다.

흐르는 물이 돌을 다듬듯이~

자기 자신을 갈고 닦을 때 유수와 같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들은 하느님의 시냇물 안에서 성령의 유수 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세 번째로 영적인 물은 潭水(담수)가 있습니다.

작은 유수 물줄기들이 어느 한 곳에서 무리를 형성하여 담수가 됩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작은 공동체가 담수입니다.

그 담수가 내 가정일 수도 있고, 내 반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속한 본당의

어느 단체 빈첸시오, 꾸리야일 수가 있습니다.

 

담수 안에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기능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물위로 들어 올리는 부력의 기능이 있고, 물 위의 것을 끌어 내리는

침수의 기능이 있습니다.

부력은 상대방을 칭찬해 주고 띄워 주는 힘입니다.

 

어떤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남을 헐뜯고 비판합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은 끌어내려야만 하는 침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 인정해주고 나보다 못난 사람은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과연 나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이 교회 안에서 부력의

역할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른 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내리는

침수의 역할을 하고 사는가를 묵상해야 될 겁니다.

 

담수들이 모여서 이룬 것이 湖水(호수)입니다.

담수보다 큰 공동체, 본당이나 공동체 같은 곳이 호수입니다.

 

잔잔한 호수 앞에 서 있으면 첫 번째 느끼는 우리들의 감정은 평화입니다.

본당 안에 있어야 되는 기본적인 향기가 바로 평화의 향기입니다.

 

평화, 기쁨이 없는 성당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싸우고, 목자와 양들은 헤어질 날을 기다리며

서로 피를 흘리면서 삽니다.

 

평화가 없다는 것은 뿌리가 약하다는 뜻일 겁니다.

출발점도 없고 목적지도 모르는 그런 공동체, 그런 본당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공동체의 특징이 서로가 대접만 받으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은 바보가 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아무리 신학박사라고 해도 주님의 삶이 큰 바보였다고 하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 학위는 의미가 없습니다.

호수가 잔잔해지려면 내가 그곳에 돌을 던지면 안 됩니다.

작은 바보가 되어서 불붙은 연탄이 되어서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다섯 번째의 영적인 물은 用水(용수)가 있습니다.

담수와 호수는 반드시 유용하게 쓰여져야 됩니다.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대로 우리 자신을 내어맡기고

그 분의 손에서 작은 도구가 되어야 됩니다.

 

예루살렘에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나귀라고 하는 놈은 고집불통, 지 멋대로 하는 짐승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이 나귀보다 훨씬 고집이 쎕니다.

늘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보다는 예수님을 내가 맘대로 하려 합니다.

 

루가 복음 19장 31절에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

 

나귀를 달라고 할 때 제자들이 한 말입니다.

우리를 용수로 쓰시겠다고 합니다.

회장님을 쓰시겠다고 합니다.

마리아 당신을 쓰시겠다고 합니다.

본당신부님을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

 

“구역장 좀 맡아주시오.”

이런 말을 여러분들에게 했을 때 여러분은 뭐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예, 주님, 저를 쓰십시오...무엇이든지 주님만 믿고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쓰시겠다고 그럽니다.

 

여섯 번째 영적인 물은 淨水(정수)가 있습니다.

당신의 협력자로 쓰기 위해서 우리가 정화되기를 원하십니다.

 

물도 공장에 들어가면 폐수가 됩니다.

구정물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우리는 정화를 해야 합니다.

정화되기 위해서는 피정이라든지, 고해성사라든지, 성서 읽기라든지......

맑은 물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기를 쓰고 애를 써야 합니다.

본당신부님이 사순절 특강을 준비해도 한 번도 가지 않습니다.

정화의 순간이 올 때마다 우리는 머뭇거림이 없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일곱 번째 영적인 물은 藥水(약수)가 있습니다.

약수는 분명히 제각기 효능이 다릅니다.

어느 물은 게르마늄이 있고, 어느 동네 약수는 철분이 많고,

어느 동네 약수는 황성분이 많고, 어느 동네 약수는 알칼리성이 많고....

 

약수가 각기 다른 효능이 있듯이~

세례 받은 우리들도 각기 다른 고유한 탈렌트를 받았습니다.

그 탈렌트를 주신 이유는 이웃을 위한 겁니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약효를 지닌 약수임을 늘 명심해야 됩니다.

 

여덟 번째 영적인 물에 生水(생수)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물은 생명력을 지닙니다.

영신적으로 살아있는 존재는 말이 부드럽고, 행동이 부드럽고, 얼굴이 밝습니다.

 

도덕경에 ‘부드러움은 살아있는 것의 특징이다.’ 라고 했습니다.

생수는 언제나 부드럽고 변화에 잘 대처하며 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수입니다.

 

마지막으로 天水(천수)가 있습니다.

천상수, 甘露水를 의미합니다.

천상수를 먹으려면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반대로 더러운 물, 부정적인 더러운 물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하수입니다.

가정, 공장, 병원에서 나오는 쓰레기 물입니다.

이 하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분심 속에서 한 번도 기쁨의 생활을 못합니다.

 

두 번째로 더러운 물에는 漏水(누수)가 있습니다.

누수는 새는 물, 빠져서 흘러나가는 물입니다.

공동체에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 들어가면 공동체가 깨어집니다.

교회분열을 일으키는 물, 새어나가는 누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부정적인 물은 寒水(한수)가 있습니다.

안하무인으로 차갑기가 이를 데 없으며 찬 바람이 쌩쌩 납니다.

그 사람은 하는 말마다 다른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습니다.

이걸 한수라고 그럽니다.

 

네 번째 부정적인 물은 乾水(건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쓰시고자 하면, 주춤거리고 뒤로 물러섭니다.

이것이 말라 있는 물, 건수입니다.

 

그 다음 더러운 물, 無水(무수)가 있습니다.

없을 무자입니다.

이건 냉담에 빠진 사람......무신론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부정적인 물은 雲水(운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리고 난 다음 하느님에게 축복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운수만을 바라고 살아갑니다.

 

그 다음으로 洪水(홍수)가 있습니다.

감정의 절제를 못합니다.

사제가 볼 때 아주 위험스런 사람이 누구냐?

열심 할 때는 아주 별나게 열심 해요.

‘아유, 저거 또 며칠 갈까?’

두 달 잘 나오다가 2년 만에 나와서 고백소에서 울고 불고...

이런 사람이 홍수같은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일이 있습니다.

홍수는 한 사람 영혼의 모습이지만 해일은 여럿이서 일으키는 파탄을 의미합니다.

패거리의 힘에 의해서 교회공동체가 박살이 납니다.

지난 번 어디를 휩쓸었던 그 해일처럼... 깡그리 파탄을 일으키고 맙니다.

 

물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합니다.

영적인 물을 먹고 살다가도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썩은 물이 됨을 명심하십시오!

 

말씀과 성체의 우물에서 구원의 생수를 퍼 올려서 오늘 나도 마시고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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