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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 부활 체험의 맏물 마리아 막달레나/묵주기도 7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24 조회수714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영광의 신비 1[4/6] :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제자들이 돌아가고 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라고 묻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덤을 들여다 본 마리아에게 천사들은 말을 건넸다.

그것도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왜 우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다.

무덤을 막은 돌은 굴러 치워졌고 믿었던 제자 둘은 보고서는 돌아섰고,

이제 남은 건 지난날의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그리움일 게다.

그러니 눈물에 약한 여인인지라 눈물이 절로 날 수밖에.

 

무덤 밖에서 울던 마리아는 머리맡에 그리고 발치에 앉아있는 두 천사를 보았다.

무덤 안에 들어간 두 제자가 본 놓여있는 아마포와 개켜진 수건을 보듯

막달레나의 눈에는 두 천사가 보였다.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그 자리의 머리맡과 발치에 앉은 천사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그기에 분명히 없음을 마리아는 확인한 거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라고 묻는다.

이는 우는 마리아에게 울 일이 아니라는 걸 암시하는 말이기도 한다.

 

죽음이 정복되었고 썩어 없어질 시신은 다시 살아나시어

무덤 바깥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 울긴 왜 울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어

죽은 이들의 생명과 불멸로 가는 새 길을 여셨는데,

울지 말고 기쁨으로 그분을 만나라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을 향해서도 끝내 주님으로 부른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돌아선다.

천사와의 대화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이 계신 뒤를 향해 몸을 돌린 것이다.

돌아선 마리아의 눈에는 예수님이 예수님으로 보이질 않았다.

의당 보여야 할 예수님이 마리아의 눈에 드러나지 않은 것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의 예수님의 시신만 갈망했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에는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일 게다.

 

그렇지만 그는 돌아섰다. 돌아섬은 그 어떤 변화를 의미한다.

그분을 따르면서 보고 듣고 한 것에서의 감정이

죽은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어떤 되살아난 영혼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고 천사들보다 구체적으로 물으셨다.

몰라서 물러보시지는 않았으리라.

죽은 시신에 안달이 난 혼이 빠진 넋 잃은 상태의 마리아에게

나다.’라면서의 출현으로 그녀를 놀라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대했으나 아직 그분이 예수님인 줄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그분을 단지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마리아가 처음에 예수님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의상 정원지기로 생각했기에 불렀으리라.

부활의 눈이 열리지 않은 그녀에게는 이렇게 부른 것은 당연했다.

사실 예수님은 마리아, 아니 모든 이의 마음을 보살피셨으니 영적 의미에서의 정원지기이셨고,

또 실로 그분은 낙원의 정원지기이셨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셨다.

예수님의 이 부름은 평상시 마리아가 듣던 그 음성이었을 것이다.

목자가 양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것을 연상한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믿고 찾는 자에게

당신을 알아보도록 드러내시는 신학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라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마리아의 다시 돌아섬은 자시 자신을 온전히 예수님을 향한다는 의미일 게다.

다른 말로는 그분을 알아보고는의 의미도 담겨 있다.

 

평상시 듣곤 했던 예수님의 음성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게 된 마리아도

이제 평상시 사용했던 존댓말로 응답한다.

양들이 자기네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가는 모습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바로 지상의 예수님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뿐이다.

마리아는 그 전과 다를 바 없는 온전한 신뢰와 믿음으로 예수님의 만남을 체험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여러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우선 첫째가 기쁨에 겨워 나를 붙들어 있지만 말고

우선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의 부활을 알리라는 의도일 게다.

지체하지 말고 빨리 가라는 뜨일 게다.

둘째는 인성을 지닌 예수님의 위치가 아닌

신성을 지닌 분으로 생각하라는 꾸중도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보고 만나는 것보다는

믿음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라는 게 좋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암튼 예수님은 단단히 일렀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라고 전하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분께서 하느님과 제자들을 연결하는 중개자가 되신다는 거다.

제자들은 이제 하느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된다.

예수님의 제자 됨과 하느님의 자녀 됨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제 우리는 한 형제자매로 예수님을 형님 오빠로 부르는 성스러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남을 깊이 체험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실상 마리아에게 그녀가 부활의 맏물이며

당신과 제자들 사이에서의 변화된 모습을 그녀를 통해 확실히 심어 주시겠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녀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막달레나 마리아의 부활 체험으로 한 여자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렸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이다. 이는 그녀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함께 한 것과도 관련이 될 게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먼저 부활 체험을 가지게 한 것은

단순히 제자들에게 대한 배려일 수도 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실제의 부활을 체험하기 전에 천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제자들이 마리아로부터 부활의 소식을 들을 차례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과 함께 죄의 사함의 권한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하여야 하기에.

따라서 막달레나 마리아의 부활 체험은 제자들의 부활 체험의 서막일 뿐이다.

 

막달레나 마리아를 포함한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그간에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라고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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