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26 조회수642 추천수7 반대(0)

어느 유치원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유리창 너머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1) 서있는 인형을 발로차고, 때리고 마구 흔들었습니다.

2) 서있는 인형을 보듬어 주고, 따뜻하게 대했습니다.

3) 서있는 인형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관심하게 대했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이 다 달랐습니다.

1번을 본 아이들 중 대부분은 서있는 인형에 다가가 발로 차고,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2번을 본 아이들 중 대부분은 서있는 인형에 다가가 보듬고 쓰다듬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3번을 본 아이들 중 대부분은 서있는 인형을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기들이 본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부보님으로부터 종교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 교육은 저의 신앙과 인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가치와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알도록 하는 것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은 리듬, 박자, 음정의 기준으로 보일 것입니다. 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은 색과 명암과 원근의 기준으로 보일 것입니다. 법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은 법과 기소, 고발, 고소의 기준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럼 신앙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우리들의 기준은 사랑, 용서, 친절, 인내,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정의와 평화의 기준으로 보일까요? 아니면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요?

 

고소와 고발은 분명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고소는 억울한 피해자가 직접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입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정한 법률적인 대리인이 피해를 입힌 상대방의 민사상,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저나 저의 대리인이 법의 판단을 묻는 것입니다. 고발은 사회의 기강과 정의를 위해서 직접 피해 당사자는 아니지만 불법적인 행위를 알고 있을 때 법적인 판단을 묻는 것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또는 직접 조사해서 기업이나 개인의 비리와 불법을 알았을 경우 이를 법적으로 신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동네의 기업에서 불법으로 폐수를 버린다고 할 때, 누군가의 아들이 불법으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를 신고하는 것을 고발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소는 직접 피해를 당한 당사자나 당사자가 위임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고발은 제3자가 하는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은 둘 다 신앙인들이 지켜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계명과 율법은 차이가 있습니다. 계명은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십계명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로운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새로운 계명을 줍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이렇게 계명은 포괄적입니다. 계명은 고속도로와 같이 우리가 가야할 삶의 방향을 이야기합니다. 율법은 그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은 639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충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교회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법은 그 수가 1752조가 있습니다. 이에는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교회법을 몰라도 신앙생활을 잘 하시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문법을 몰라도 말을 배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양심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옳고 그른 것, 부끄럽고 미안한 것, 겸손과 양보, 자비와 선행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율법과 계명입니다. 이 율법과 계명은 교통 신호등과 같습니다. 잘 지키면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습니다. 잘 지키면 원하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교통 신호등은 우리들의 안전과 목숨을 지키기 위한 약속입니다. 율법과 계명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이 하느님께로 갈 수 있도록, 우리들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안내해주는 이정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당에 나오면서 부부싸움을 한다면, 성당에 나오면서 교통신호를 무시한다면, 성당에 나오면서 주변 사람들의 험담을 한다면, 성당에 나오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산다면, 성당에 나오면서 자녀들을 소유물처럼 생각한다면 이는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승차권을 사지도 않고 버스에 타려고 하는 무임승차입니다. 율법과 계명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실행하는 것입니다. 벗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