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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와 하느님 나라까지의 거리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27 조회수1,102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3주간 금요일


<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복음: 마르코 12,28ㄴ-34





예수를 무덤에 안장함


카라바죠 작, (1602-1603),  바티칸 박물관 회화관


     < 나와 하느님 나라까지의 거리 >

             

김창옥 교수는 강의를 매우 재미있게 잘 하는 유명한 강사입니다. 그런데 그도 두려워하는 대상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두려운 대상은 고위 공무원들이나 교장 선생님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팔짱을 끼고 앉아서 어떤 말에도 반응이 없고 웃긴 이야기에도 전혀 웃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주 웃기면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자신보다 더 높은 직급의 상사가 웃으면 자신도 마지못해 따라 웃는다고 합니다. 아마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또 그가 강의하다가 상처받은 대상은 바로 중학생 남자아이들이라고 합니다. 한 번은 수학여행 온 수백 명의 남자 중학생 아이들에게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그냥 사춘기 반항아의 모습을 하고 일제히 삐딱하게 앉아서 교수를 맞이했습니다. 그 싸늘함을 깨뜨리기 위해 웃기는 이야기를 했더니 웃지는 않고 강사가 다 들리도록 이렇게 이야기 하더랍니다.

아주 웃기려고 애를 쓰는구먼. 나이 먹고 고생한다!”

그 이후로 웬만하면 이런 대상들에게는 강의를 하러 나가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요즘 강의를 다양한 분들에게 하다 보니 그 반응도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강의하기가 가장 힘든 분들은 강의 내용에 대해 이미 자신들의 생각이 깊이 뿌리박힌 사람들이 듣고 있을 때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도 자신들의 생각을 무너뜨리기를 원치 않으며 있는 자리에서 반박을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답답하고 강의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서 받는 상처가 힐링 되게 해 주는 청자들도 있습니다. 교리신학원 분들도 매우 잘 들어주시지만, 특별히 저에게는 첫 서원을 하기 전의 애기 수녀님들입니다. 이 수녀님들은 저의 표정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을 보입니다. 아주 잘 웃어주고 또 필요하면 성실히 적고 다양한 표정으로 응답해 줍니다. 아주 그들에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보좌 신부를 할 때부터 저는 힘이 들어도 이들에게 강의하러 매 주 서울로 올라갑니다. 강의를 하고나면 강의를 한 제가 힘이 더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강의가 휴식이 되게 해 주는 이들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어도 그것이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한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더 큰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오늘 예수님을 만난 율법학자는 그들과는 매우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명을 알려주셨을 때,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대답 하나하나를 모두 인정하며 받아들입니다. 뭐 특별히 다른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의 말씀이 모두 옳다며 예수님의 말씀을 되풀이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내 생각에 매우 가까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르치는 것에 모두 동의를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 나라 안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모두 마음으로 동의합니까?

   

예전에 한 분이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일미사를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이어들과 골프를 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가난한 이들은 행복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저는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까지 내밀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간음하고, 화만 내도 살인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십일조를 내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

이런 분들에게 너는 하느님나라에서 멀리 있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와 하느님 나라와의 거리는 바로 내가 그분의 가르침에 얼마만큼 동의하고 실천하고 있는가와 비례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의하고 싶은 것만 동의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조금 더 그리스도의 가르침, 진리에 동의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더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그분의 가르침 중에 내가 동의하지 못했던 것 하나만 더 동의해 보려고 결심해 봅시다. 사실 실천하지 않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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