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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원한 후계자 베드로야, 나를 따라라./묵주기도 8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29 조회수1,007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영광의 신비 2[3/7] :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이미 수제자로 택하셨지만

그는 무려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했기에 그 직분을 저버렸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세 번의 질문에 답하도록 하심으로써

저버린 신뢰를 회복토록 기회를 주신다.

 

그가 부인했던 곳이 숯불 곁이었던 것처럼 신뢰를 요구받는 곳도 역시 아침 식사를 한 숯불 곁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신뢰를 되찾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다.

예수님이 세 번 모두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그를 부르신 것은

신뢰의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오는 대답을 원하셨던 것 같다.

더더구나 부자간의 가족 관계까지 덧붙인 건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랑의 극치일 게다.

시몬이 요한의 아들이라는 건 요한복음 에만 나온다.

마태오 복음에는 시몬이 요나의 아들로 불리어 진 것 같다.

시몬 바르요나로 그가 요나의 아들 시몬(Simon the son of Jonah)’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을 그리스도라고 고백 시킨 후 그에게 이르셨다.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셨을 때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라는 질문을 했을 때이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Peter)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7-19)”

그리고 그의 애칭을 베드로라고 작명까지 해 주시면서

지상과 천국에서의 역무까지 단단히 일러 주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요한 1,42)에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Simon the son of John)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Kephas)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아람어)’베드로(그리스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요한의 아들인지, 요나의 아들인지는 복음사가의 고유 취향이다.

암튼 예수님은 베드로를 제자로 삼으실 때부터

이미 그의 역할이며 그의 죽음까지 내다 보신 게다.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첫 번째 질문은

네 동료 제자들이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질문은 그분께서 베드로의 사랑을 다른 제자들의 사랑과 비교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당신에 대해 그 옛날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고백했던

확고한 충성의 말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당황한 기색으로 자신이 비록 실수이긴 했지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실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주님께서는 그의 고백을 받아 주셨고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말씀으로 그의 제자 직분을 되찾아 주셨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예수님의 반복된 질문은

베드로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깊은 곳까지 이끌도록 살피신다.

그분의 질문에서 사랑의 그리스 말 원문은 두 번째까지는 아가페인데 비해

세 번째는 그 보다는 덜 강한 우정이라고도 옮길 수 있는 필리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 편 베드로는 세 번 다 필리아라는 우정 수준의 표현을 사용하여 대답했다.

이어지는 두 분의 대화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베드로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데 있어서

강한 표현을 점차 지양하고 좀 더 온건한 표현으로 베드로와의 눈높이를 조절하시면서

베드로에게 스스로의 다짐을 하도록 일깨워 주셨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자신이 무심코 대답하면서 저지른 세 번의 실수를 깨닫고는

슬퍼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당시 유다인들은 바지 같은 것은 없이 목에서 발목까지 떨어지는 펑퍼짐한 옷을 입었는데,

집 안에서 쉴 때에는 허리띠를 풀고 있다가, 일을 하거나 외출을 할 때면 허리띠를 매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늙어서는 그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을 알려 주셨다.

요한사가는 베드로가 죽은 지 한참이나 뒤에 예수님이 이렇게 예고하신 내용을 잘 알고,

또 그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 이 내용을 서술하였다.

그리고 그는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른 내용을 틀림없이 베드로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요한 13,36 참조).”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셨다.

비록 베드로가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라면서 순교자적 죽음을 예언하셨지만,

그 길이 그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라며, 베드로를 따라라.’라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부르셨다.

그렇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겪는 것은 고난당하는 이에게 영예이자 영광이다.

예수님의 베드로를 향한 이 마지막까지의 배려는

그가 당신의 영원한 후계자의 자리를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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