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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가 태생소경임을 고백할 때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30 조회수1,034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4주일


<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


  
복음: 요한 9,1-41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 우리가 태생소경임을 고백할 때 >


  

알파치노가 주연한 명작 중 하나, ‘여인의 향기란 영화 내용입니다.

찰리는 하버드 대학을 목표로 예비학교에 다니는 장학생이며 모범학생입니다. 그는 학비를 마련할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고 한 노인의 말동무가 돼 달라는 일을 소개받습니다.

그러던 중 밤에 친구와 교정을 걷다가 학교 교장 선생님과 그 차에 페인트 세례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교장 선생님은 학교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큰 창피를 당하고, 찰리를 불러 하버드 대학에 보내줄 테니 누군지 말하라고 회유하고, 누가 그런 짓을 꾸몄는지 말하지 않으면 그를 퇴학시키겠다고 위협도합니다. 그러나 찰리는 우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선 이 일을 뒤로 하고 그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퇴역장교인 슬레이드를 만나게 되고, 그와 추수감사절을 보내야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슬레이드는 퇴역장교로 맹인입니다. 그는 지적인 외모와 다르게 매우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조카들이 무서워하며 말동무도 없이 항상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그는 갑자기 찰리를 데리고 가족이 여행을 갈 동안 뉴욕으로 가자고 합니다.

슬레이드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비행기 1등석에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에 투숙하고, 최고급 식당인 오크 룸에서 식사하는 등 돈을 물 쓰듯 하며 며칠을 보내고, 떨어져 사는 친형을 갑작스럽게 찾아가 놀래준 다음, 아름다운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페라리를 한 번 몰아본 다음, 감쪽같이 자살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찰리와 슬레이드는 한 식당에 자리 잡게 되고, 슬레이드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나는 비누 향을 맡고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탱고를 추게 됩니다. 다음날에 찰리와 슬레이드는 페라리를 시승하였으며, 찰리의 도움 하에 슬레이드는 차를 운전하며 속도감을 맛봅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고 슬레이드는 찰리에게 시가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켜 밖으로 나가게 합니다. 그러나 무언가 낌새를 눈치 챈 찰리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슬레이드는 군복을 단정하게 입고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려고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찰리는 그를 저지하며 말합니다.

당신에게는 인생이 있잖아요?”

인생? 무슨 인생? 나에게는 어둠뿐이란 말이야!”

하지만 당신처럼 멋지게 탱고를 출 수 있고 스포츠카를 잘 모는 사람은 본 일이 없단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서로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영화가 의도한 매력입니다. 다 끝난 것 같아도 남이 갖기 있지 않은 부러운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가 부족한 면을 메워준다면 그것이 곧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리무진으로 뉴잉글랜드에 돌아갔으며, 찰리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교장 선생의 모욕 사건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교장선생은 찰리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말을 해보라고 하였으나 찰리는 끝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고, 교장 선생은 징계 위원회에 찰리의 퇴학을 권고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교장선생의 이러한 행동은 슬레이드의 반발을 불러왔으며 찰리를 변호하는 일장 연설을 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슬레이드는 모여 있는 모두에게 난 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찰리의 침묵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릅니다만,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찰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남을 팔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징계위원회는 결국 찰리에게는 더 이상 답변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전교생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찰리와 슬레이드는 강당을 떠납니다. 찰리에게 슬레이드는 그렇게 빈 공간을 메워준 것입니다. 그리고 슬레이드는 다시 한 번 여인의 향기를 기막히게 알아맞히고 멋지게 탱고를 가르쳐주며 인생을 즐기게 됩니다.

 

이 영화는 우리 각자에게 빈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숨을 버릴 일은 아니란 것입니다. 빈 곳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누군가가 그것을 메워주면 그것이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태생 소경의 눈을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태어난 것은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일이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일이라면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각자 모두의 구원과 관련된 일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눈이 없이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완성되지 않은 채 태어나서 하느님을 만나 우리 눈을 채우지 않으면 온전한 인간으로 살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교부들은 이렇게 그분을 만나 우리 빈 공간이 채워지는 것을 세례로 보고 있고, 그 세례를 통해 우리 새로운 눈으로 보고 믿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도록 파견되는 장소가 바로 실로암(보냄을 받았다)’인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는데, 바로 단수인 사람과 복수인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비슷하게라고 하시며 당신이 본성이 곧 관계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본성은 사랑이신데,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기에, 인간도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야 온전히 완전해 지듯이, 당신과 관계 맺지 못하면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는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태생소경에게 눈을 만들어주십니다. 그 눈은 더 이상 몸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서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소경은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렇게 완전해 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경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이미 그 눈에 무언가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어있어야만 하는 그 눈을 다른 것으로 채워 넣은 것입니다. 세상 것으로 채워 넣은 것입니다. 세상 것이 나의 속으로 들어와 오래 머무르면 더 이상 떼어낼 수 없는 나 자신이 됩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연 중에 선풍기 아줌마가 있습니다. 그분은 성형을 잘못하여 그 성분이 얼굴에 퍼졌습니다. 그 기름들을 빼내면 좋겠지만 그것들이 살과 하나가 되어서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그것들을 빼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돈을 그 눈에 넣었다면 돈이 내 눈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그리고 돈을 다 잃게 되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목숨을 끊게도 되는 것입니다. 돈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나중에 그것들이 나와 뗄 수 없는 하나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과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나와 하나가 되어가는 지는, 만약 돈을 잃어보던가, 누군가가 나를 험담하는 소리를 듣던가, 성적이 많이 떨어졌을 때 내가 그것 때문에 흔들린다면 어느 정도는 내 안에 채워져서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히 고착되어버리기 이전에 우리는 그것들을 성령의 칼로 도려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 것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난자가 다른 것이 아닌 정자를 만나야만 사람이 되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듯이, 눈이 없으면 진흙으로 눈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창조자이신 유일하신 분, 그 분을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진흙으로 새 눈을 창조하시며, 당신만이 우리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는 우리 창조주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또한 오늘 태생소경은 예수님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증언한 유일하게 눈을 지닌 사람이 되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모두 진정한 소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본다고 하면서도 눈을 지니지 못한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들은 세상 것으로 자신의 눈을 채워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만들어 주신 그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세상의 눈을 지닌 이들은 세상 것만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만인 앞에서 그리스도를 당당하게 증언하지 못하면 아직은 완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눈이 보인다고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눈이 보이면 그분께서 새로운 눈을 넣어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 되게 우리 자신도 태생소경이며 당신의 창조가 필요함을 가슴 깊이 느끼며 예수님의 자비를 청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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