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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30 조회수902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3월 30일 사순 제4주일
 
 
“I came into this world for judgment,
so that those who do not see might see,
and those who do see might become blind.”
(Jn.9,39)
 
 
제1독서 1사무 16,1ㄱㄹㅁㅂ.6-7.10-13ㄴ
제2독서 에페 5,8-14
복음 요한 9.1-41
 

몇 년 전인가 한 여대생이 방송에 나와서 남자의 작은 키를 가지고 ‘루저(Loser)’라고 말해서 큰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글쎄 최소한 180센티미터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한국 남자의 평균 신장이 173센티미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를 포함해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루저(Loser)’로 살 수밖에 없겠네요. 몇 명의 여대생들이 말한 말들도 참으로 뜻밖입니다.

‘키 작은 남자가 폭력을 쓰는 남자보다 싫다.’

‘다 좋아도 키가 작으면 오만정이 떨어진다.’

‘첫눈에 반했다고 하더라도 일어나는 순간, 나만한 키라면 상황 종료다. 나는 싫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여성이라는 것이지요. 세상을 체험하고 좀 더 알아가면서 사람들은 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육신의 키보다 마음의 키가 더욱 더 커야 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외모, 재산, 사회적 지위 등등. 물론 필요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그렇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을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이 내 생명을 지켜주고, 더불어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주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도록 해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대신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눈먼 사람을 예수님께서 먼저 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한 처음에 창조하실 때 그러하셨던 것처럼 흙을 이용해서 그의 눈을 열어 주시지요. 그럼으로 인해 시력을 회복시키는 추가 창조 활동을 수행하셨음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이 치유가 샘이 아니라 당신에게 왔음을 모든 이가 알도록 물 대신 당신의 침을 이용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완성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치유 자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만을 내세우면서 기적의 위대함이 가리게 합니다. 즉, 눈 먼 이가 눈을 떠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율법에 의해 눈 먼 이가 세상에 확연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바리사이들의 집요한 심문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믿음을 고백하는 치유 받은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는 심지어 회당에서 쫓겨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율법이라는 가치보다 더 중요한 주님께 대한 믿음을 증거했기에 그는 사람의 아들을 직접 보고 경배할 수 있는 커다란 은총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마음의 눈이 멀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을 통해서만 마음의 눈이 환하게 열릴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별한 기회를 기다리지 마라. 평범한 기회를 잡아서 위대한 것으로 만들라(양창순).

 
성소후원회의 도보순례가 있었습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 수고하셨습니다.

 

 
이기적인 삶

소위 이기적인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그냥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내 삶을 사는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이렇게 사는 사람을 가리켜서 이기적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기 삶을 사는 것은 절대로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만약 자기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이기 때문이지요.

이기적인 삶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고, 나의 자존심이 제일인 것처럼 드러내고, 자신의 기쁨에 맞추어 살도록 요구하는 사람이 바로 이기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이 그 이기심을 보여주지요. 자기는 맞고 남은 틀리다는 이기심에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은 제쳐두고 단순히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는 율법의 준수만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런 이기심은 예수님의 그 어떤 놀라운 기적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무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합니다.

남들을 나에게만 맞추게 하려는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사람의 공통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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