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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3 조회수1,034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3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You search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you have eternal life through them;
even they testify on my behalf.
But you do not want to come to me to have life.
(Jn.5,39-40)
 
 
제1독서 탈출 32,7-14
복음 요한 5,31-47
 

지난달인가 정말로 오랜만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생각납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께서 우연히 ‘청춘 사진관’이라는 곳에서 영정 사진을 찍고 나왔는데, 스무 살 꽃 처녀의 몸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빛나는 전성기를 즐기면서 겪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집니다.

영화가 끝나고서는 저를 포함해서 같이 보았던 분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요. 혹시라도 ‘청춘 사진관’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 주님께서 제 앞에 나타나셔서 20대의 건장한 남자의 모습으로 바꿔주시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씀하시겠어요? 아니면 그냥 지금의 모습으로 살겠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마 거의 대부분의 분들은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씀하시겠지요. 저도 아무 생각하지 않고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40대 중반의 몸보다는 20대의 튼튼한 몸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제가 익혔던 많은 것들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다시 힘든 신학교의 공부를 해야 하고, 어려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성소에 대한 갈등을 또 다시 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다시 20대로 돌아가도 실수를 조금 줄일 수는 있어도 결국은 똑같은 삶을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똑같은 삶을 굳이 두 번씩이나 살 필요가 없지요.

또 혹시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새로운 길을 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사제 생활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면서 기쁘게 살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후회를 남길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내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최고의 선물을 매순간 주시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기에 지금의 자리를 최고의 자리로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을 향해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라고 꾸짖습니다. 이 꾸짖음을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과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면서, 정작 중요한 하느님의 영광을 찾지 못하는 우리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계시는 주님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과거와 미래에 매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가장 좋은 시간을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고 계심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삶,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지금의 이 자리가 얼마나 좋고 행복한 지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계단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라도 첫걸음을 내딛게 한다(마틴 루터 킹).

 
제가 보았던 영화의 포스터입니다.

 

 
주님께 억지 부리지 맙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어떤 집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을 잘 대접하기 위해 닭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세 마리의 닭 중에 어떤 닭을 잡아야 할지 고민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닭들이 서로 자신은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애원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산수 문제를 내서 맞추지 못하는 닭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닭에게 “3X3은?”라고 문제를 내자, 이 정도쯤이야 라는 표정으로 자신 있게 “9”라고 외칩니다.

두 번째 닭에게는 조금 어렵게 “9X9는?”라고 문제를 냈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81”이라고 자신 있게 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인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손님에게 대접할 것은 닭밖에 없는데, 이렇게 다 맞춰버리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문제를 냅니다. “12345 X 6789는” 자신의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닭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이. 물 끓여!!”

주인이 좀 치사하죠? 어떻게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모습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님께도 이런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치사한 모습은 이제 내려놓고, 정말로 정의와 사랑이 흘러넘치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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