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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는 그분을 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4 조회수1,224 추천수1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4주간 금요일
 
< 그들을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요한 7,1-2.10.25-30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6), 제노바 롯소궁전


     < "나는 그분을 안다."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목숨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전쟁터로 가게 됐습니다. 남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오겠노라 다짐했고 여자는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전쟁은 치열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매순간 숨통을 조여 왔지만 남자는 오로지 사랑하는 이에게 돌아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많은 전투를 치러냈습니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남자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적진으로 진격 중 무릎에 폭탄 파편을 맞은 것입니다.

으아아악!”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몸은 예전과 달랐습니다. 한쪽 다리만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현실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불구가 된 남자는 이런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나타나느니 차라리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한편 애인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여자는 어느 날, 남자의 전우로부터 그가 전사했다는 편지를 받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만 앓아눕고 말았습니다. 무심한 세월이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 물처럼 흘러갔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와 행여 여자의 눈에 띌까 숨어 사는 남자에게 그녀의 결혼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남자는 가슴이 아렸지만 그녀가 행복해진다면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여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조용한 주택가 낮은 담장 너머엔 남자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가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남편과 함께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만 잃고도 여자 앞에 나서지 못했던 남자는 숨이 막혔습니다.

! 바보같이 바보같이....”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잊지 못해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다른 이의 손발이 되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1, 바보 같은 사랑]

 

사랑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알려고 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성경에서 사랑한다는 말과 안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사랑하면 알아야합니다. 알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쪽 다리를 잃었던 위의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한쪽 다리만 가지고 나타나도 기쁘게 맞아줄 사람이란 것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그녀가 정상적인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는 것이 참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면 사랑도 끝나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아버지로부터 파견을 받았고 당신만이 아버지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만큼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말은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아버지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플로리다 주의 포트 라우더데일 해변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나 붐볐습니다. 승객의 대부분이 휴가를 즐기러 가는 젊은 남녀거나 가족인 그 버스의 맨 앞자리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옆에는 아까부터 그를 지켜보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허름한 옷에 무표정한 얼굴, 나이조차 짐작하기 힘든 그는 마치 돌부터 같았습니다. 버스가 워싱턴 교외의 휴게소에 멈춰 섰을 때 승객들은 너나없이 차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채우기 바빴지만 돌부처 같은 남자만이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여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나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는 한참 뒤에야 침묵을 깨고 괴로운 표정으로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빙고, 4년을 형무소에서 보내다가 석방되어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가석방이 결정되던 날 아내에게 편지를 썼소. 만일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면 마을 어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걸어 두라고.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난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 버리는 거요.”

사연을 알게 된 승객들은 그의 집이 있는 마을이 다가오자 하나 둘 창가자리에 붙어 커다란 참나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남자의 얼굴은 지독한 긴장감으로 굳어 갔고 차 안엔 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 저기 봐요! 저기!”

그때 승객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커다란 참나무가 온통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여 있었던 것입니다. 나무 아랜 단 하루도 그를 잊어본 적이 없는 그의 아내가 서 있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노란 손수건]

 

이것도 역시 실화인데, 위의 이야기와의 차이는 단 하나, 밑의 주인공은 자신이 큰 죄를 짓고 감옥살이를 했어도 아내가 그런 자신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아는 것이 사랑을 유지시켜주는 힘입니다.

내가 이런 저런 일을 했으니까, 그 사람은 나를 싫어할 거야.’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끝나버리는 사랑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이런 저런 큰 죄를 지었으니, 하느님은 나를 용서하시지 않을 거야.’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하는 것이 그것으로 사랑이 끝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니 알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해야 할 예수님을 더 알기 위해 오늘 과연 몇 분이나 노력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아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더 알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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