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을 이용하는 사람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4 조회수1,538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4주간 토요일


<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


복음: 요한 7,40-53





예수를 무덤에 안장함


카라바죠 작, (1602-1603),  바티칸 박물관 회화관


     < 하느님을 이용하는 사람들 >

 

            결혼식을 며칠 앞둔 날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아버지의 가슴에 평생 낫지 않을 피멍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제발, 큰아버지 손잡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빠한테 뺨을 맞았지만 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가뜩이나 집안이 기우는데 등이 굽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걸어 들어가기는 정말이지 싫었습니다.

... 걱정 말그래이. 안 그래도 허리가 쑤셔서 그날은 식장에도 몬 간다.”

시집가는 딸 마음 상할까 봐 아버지는 거짓말까지 하셨습니다. 나는 그 아버지의 아픈 속을 알면서도 결국 결혼식장에 큰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는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나도 자식인지라 골방에 틀어박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아버지 가슴속의 눈물 얼룩을 지워 드리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흘러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시집살이에 입덧까지 하면서도 시어머니한테는 내색도 못하고,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돌아오던 나는 동네 어귀에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작은 키에 굽은 등, 그리고 걸음걸이가 분명 칭정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아버지가 아닐 거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퇴근하던 남편이 큼직한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저 아래, 가게 아줌마가 주던데....?”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채취가 묻어 있는 보따리였습니다. 예감대로 보따리 속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겉절이대이. 배 곯지 말고 맛나게 묵으라.”

시어른들 볼까 봐 집에도 못 오시고 아버지는 청국장 보따리를 가겟집에 전하고 가신 것이었습니다. 청국장엔 아버지의 짜고 쓴 눈물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1, 아버지의 등]

 

미녀는 괴로워란 영화에서 뚱뚱하고 못생긴 강한나가 목숨을 걸고 전신성형을 감행하게 된 이유가 화장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주진모의 말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주진모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줄 알았었는데, 사실은 강한나의 목소리를 이용하기 위해 그에게 잘 해 주었고, 일부러 좋아하는 척 했던 것입니다.

이용당했다는 느낌’,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 매우 절망적이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사람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필요한 것만 취하고 필요가 없을 때는 나 몰라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위의 이야기에서 아버지도 딸에게 그런 느낌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필요할 때는 아버지이고 필요 없을 때는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어쩌면 우리 또한 하느님을 그렇게 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잡으러 갔던 경비병들마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돌아왔습니다. 이에 화가 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들을 야단칩니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이에 몰래 그리스도를 따르던 제자이면서 최고 의회 위원인 니코데모가 슬쩍 예수님을 편을 듭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 또한 성경 박사들이기에 니코데모가 반박할 수 없는 대꾸를 합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이것만 보면 성경이 전혀 예수님을 증언해주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에는 예언자가 갈릴래아에서 나온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여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목적으로 썼던 것입니다. 성경이 모두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갈릴레아, 그리고 나자렛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나타나엘도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며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예언서에 쓰여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태 2,22-23)

그러나 구약 어디를 찾아봐도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라는 예언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구약의 대표적인 나지르 인, 즉 날 때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이란 뜻의 나지르인은 바로 판관 삼손입니다. 삼손이 정확히 예수님의 삶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께 바쳐졌지만 여자에게 빠져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아 장님이 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회개하고 불레셋 사람들을 죽이는 동시에 자신도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세상 모든 이의 죄를 짊어지고 가장 비참한 죄인의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으로 당신이 짊어진 죄도 함께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나지르인이나 나자렛사람이나 당시엔 같은 말이었습니다. 당시엔 모음만 썼기 때문에, 여호수아나 예수나 같은 이름인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찾으려고만 하면 성경을 통해 얼마든지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었지만 그럴 마음이 없었기에 예수님을 부정할 것만 찾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각 종교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며 각자의 종교에 유리하게 해석합니다. 말씀이 각자의 의도에 따라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라는 명목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민족을 침공하는가 하면, 그것으로 돈을 버는 많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는 그런 하느님이나 그분이 세우신 교회, 혹은 성경 등을 내가 편한 데로 이용하며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분을 받아들인다면 나에게 유익한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다 받아들여야합니다. 성경을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고, 남을 판단한다든지 십일조 등을 내지 않는 다든지 하며 내가 좋은 것만 취사선택하고 살아간다면 그것 또한 말씀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라면 오늘 복음의 성경을 이용하여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면 취사선택하여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분 존재 전체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결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