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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014년 4월5일 사순 제 4주간 토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5 조회수1,116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4년4월5일 토요일 복음묵상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요한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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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요한이 전하는 복음을 묵상하다 보면, 기쁨보다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악한 생각에 맞서서 고군분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사제들이 보이는 생각과 행동이 지난 어느 시대의 한 무리들만의 행태였다고 치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죄악과 그 피해의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대안이 확실히 떠오르지 않는 것도 답답함을 더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늘 그래왔듯이, 세상은 욕심 많고 약삭빠른 인간들이 다양한 형태의 권력을 움켜쥐고 휘두를 것이고, 마음 착하고 옳지 못한 것에 타협을 못하는 이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세상이 지속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보여주신 가르침이 옳다고 믿는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최고의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세상을 위해 애썼다는 말을 남길 수 있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재미없는 내용이지만, 작년 묵상을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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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를 보거나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었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즉 지나간 일에 대한 그림을 놓고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비교적 쉽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거의 이야기는 이미 멈춘 이야기고 현재의 이야기는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힘들이 늘 존재해 왔다.
그것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신문이나 TV의 모든 이야기를 믿는가?
우리 모두는 언론매체가 진실을 보도하고 진실을 나누는데 그 기능을 다하고,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정반대의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언론의 특징은 ‘그럴 듯 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 믿고 동조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경제적 기반도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과거의 많은 독재자들이 제일 우선적으로 장악하려 했던 것이 언론이었다.
손에 쥔 언론을 가지고 그럴 듯한 이야기를 꾸며내어 사람들에게 쏟아내었다.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언론매체는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킬 수 있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사람들을 움직일 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역기능을 할 수 없도록 우리의 역사는 물리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를 고안해왔고 효과를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악의 세력도 한층 단계가 높아진 수준으로 면밀하고 교묘하게 움직인다.
즉,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그 ‘그럴 듯 한 이야기’에 대한 진실여부를 식별하려는 작업이 필요하다.
만일 어떤 속임수와 거짓이 옳지 못한 세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교회는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의 그르친 가르침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시며, 사람들이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연히 교회가 권력이나 검은 돈이 오가는 더러운 정치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된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는 정치가 아니라 사회 즉 세상과 함께 해야만 한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해야 할 의무가 있고, 세상 사람들이 올바른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투신해야 한다. 잘못된 구조에 의해 그늘진 곳을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 있다면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세상을 움직여야 한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거나 못 본 척 하는 것이 표면적인 폭력보다 더 비겁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보통 우리는 옳고 그름에 기본적으로 공감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설정된 그럴 듯 한 이야기를 통해서 언제든지 옳고 그름이 뒤바뀌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언론매체이던 어떤 종류의 대중매체이던 간에 빛과 그늘 두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라고 예수님을 본 이들은 증언한다.
우리도 어떤 역경과 난관이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거의 허물을 되풀이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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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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