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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주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6 조회수1,250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5주일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복음: 요한 11,1-45





예수님 십자가의 길


MEMLING, Hans 작, (1470-71)


     < "나의 주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

 

        노래, ‘끝없는 사랑(Endless Love)’으로 더 유명한, 브룩 쉴즈와 마틴 휴이트 주연의 끝없는 사랑이란 영화입니다.

비록 어린 학생들이기는 하나, 데이비드와 제이드는 같은 학교에 다니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부모님들도 서로 사귀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어느 날 제이드는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 데이비드를 집으로 초대하고, 이들은 제이드의 방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나 곧 부모님이 돌아오고 아버지 휴가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데이비드를 집에서 쫓아냅니다. 그런다고 이미 불타고 있는 이들을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공부는 제쳐놓고 제이드의 기숙사까지 몰래 잠입하고 전화로 시간을 다 보내며 둘의 사이는 뜨거운 만큼이나 삶을 망쳐놓습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제이드의 아버지, 휴는 제이드가 다시는 데이비드를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집에 가두어 놓습니다. 제이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마음이 제이드의 아버지 휴에 대한 분노로 폭발한 데이비드는 급기야 제이드의 집에 불을 지르게 됩니다. 살짝 불을 지르고 제이드를 구해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불은 제이드의 온 집을 다 태우게 됩니다. 결국 재판 끝에 데이비드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정신병원에서 제이드를 보고 싶은 마음에 더 미쳐갑니다. 그러나 휴의 아버지가 자신의 집을 방화한 데이비드를 받아들일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정신병원을 나온 데이비드는 제이드를 찾아 나섭니다. 뉴욕에 있다는 말을 듣고 뉴욕으로 갔지만, 길에서 마주친 것은 제이드가 아닌 그의 아버지 휴였습니다. 휴는 제이드를 쫓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천신만고 끝에 제이드를 만나지만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은 것이라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끝까지 찾아온 데이비드가 고마워 다시 사랑을 시작했지만, 결국 그 사랑은 아버지의 죽음에 제이드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 제이드에 의해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들이 처음 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매우 어린 나이였습니다. 이 둘은 절제 없는 사랑에 빠져 부모들의 반대를 사게 되고 그렇게 헤어지는 불행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다녀온 이후도 성숙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둘의 관계는 아직은 사랑을 할 수 있는 때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거짓으로 속이며 사랑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고백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랑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준비 되어 있지 않은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휴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딸 제이드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을 받기에 데이비드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제이드, 영광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거든 자기 자신을 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영광의 성령님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데이비드는 영광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영광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는 드러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라자로를 부활시키십니다. 그러나 그 부활시키기 전의 내용이 더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마리아와 마르타가 보낸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사랑스러운 라자로를 고통 속에서 혼자 죽게 내버려둡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야 그를 살리기 위해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냥 죽은 사람이 아닌, 죽어서 부패한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을 보아야만 믿을 것이라고 하기에 그 기적을 준비한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이미 썩은 냄새가 나는 사람을 다시 살린다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기적으로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이것을 보아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라자로는 홀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도록 내버려 두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사랑하는 라자로를 왜 죽지 못하게 했느냐고 반문합니다. 예수님은 라자로가 아픈 것을 넘어서서 죽음까지 맛보도록 남겨두셨던 것인데, 그래야 하느님의 영광이 더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쳐주시지 않았던 것은, 죽으라는 예수님의 뜻이 분명했고, 그렇게 죽은 라자로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 구약의 욥기입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하느님께서 그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허락하십니다. 사람들은 욥이 그렇게 된 것은 죄를 지어서라고 말하지만, 욥은 영문은 모르지만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끝까지 항변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당신께 신뢰하는 욥의 모습이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 당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요셉 또한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끝까지 하느님께 충실합니다. 잘 살고 고통이 없을 때 충실한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죽기 직적까지 가고 이집트로 팔려가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당하고 그것을 뿌리쳐 감옥에까지 가게 되지만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절대 저버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이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영화의 데이비드는 제이드의 아버지 휴가 왜 반대하는지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제이드를 가지려고 듭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조금만 더 성숙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이지만 둘의 사이를 떼어놓는 누구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불만이 불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제이드의 아버지 휴는 자신의 딸과 데이비드를 결혼시키는 영광은 선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당신도 라자로처럼 죽음의 고통을 맞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의 주님, 나의 주님,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는 시편 22편인데 결국 이 시편은 그래도 끝까지 아버지를 신뢰하고 찬양하겠다는 기도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 저를 보는 자마다 저를 비웃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야곱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드려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예수님은 이미 예언된 죽음 속에서도 이 시편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 시편은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죽이고 괴롭히고 있지만, 자신은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찬양을 드린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게 신뢰하였기에 부활이 합당하였던 것입니다. 라자로도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믿음과 동생들의 믿음이 그 이유 없는 고통까지 뛰어넘었기에 이런 기적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이렇게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이들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야만 십자가의 고통을 끝까지 참아낼 수 있습니다.

   

김하늘, 유지태가 출연한 동감이란 영화입니다.

1979년에 살고 있는 영문과 여대생 김하늘은 선배 박용우와의 짝사랑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기쁨을 함께하는 단짝친구 김민주와의 우정도 날마다 새롭게 쌓여갑니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굴러들어온 고물 무전기 하나. 개기 월식이 진행되는 어느 날 밤, 그 낡은 무전기를 통해 어떤 남자의 교신음이 들려옵니다. 그 남자는 2000년에 살고 있는 유지태라는 대학생입니다. 그 남자도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데, 김하늘과의 시간을 넘어선 대화를 통해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한 여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도움을 받은 유지태는 자신의 부모님이 김하늘이 좋아하고 있는 박용우와 자신의 단짝친구 김민주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둘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게 됩니다.

미래를 알게 된 김하늘은 미래를 바꾸기 위해 둘의 사이를 갈라놓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둘을 놓아줍니다. 둘의 사랑이 더 좋은 열매를 맺음을 알기에 김하늘은 모든 아픔을 자신이 안고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오늘 라자로도, 욥도, 요셉도, 예수님도 무엇이 더 큰 영광을 가져옴을 알았던 분들인 것입니다. 아기 낳는 고통 뒤엔 영광이 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참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이태석 신부님도 당신이 그렇게 희생한 삶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임을 알았기에 그렇게 몸을 아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삶의 십자가가 있지만, 이렇게 오는 십자가가 다 이유가 있음을 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가벼워 질 것이고, 나중에 그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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