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7 조회수596 추천수6 반대(0)

오늘 성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지난날이 생각났습니다. 1995년 저는 용산 성당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교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에게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조금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제게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교포 사목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교님의 말씀을 듣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교님께서 저를 인정해 주신 것이 기뻤고, 미국에 간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주교님의 말씀을 듣고 학원에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송별식을 한다는 핑계로 술을 자주 마셨습니다. 청년들과, 사목위원들과, 구역장님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지금도 한잔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그때는 한잔하는 것을 사랑하는 편이었습니다.

 

한 달 정도 있었는데 주교님께서 다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에게 술을 자주 마시는지 물으셨습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술을 끊으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일도 없었던 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주교님의 말씀에 순명하면서도 속에서는 실망이 있었습니다. 분노도 있었습니다. 제가 주교님과 술을 마신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그 사실을 주교님께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교구청에서 본당으로 가는 중에 원망과 미움, 분노와 실망이 가득했습니다.

 

성당에 들어와서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펼친 성경의 내용은 기였습니다. 욥 성인은 시련과 고통 중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드렸다면 나쁜 것을 주실 때라도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몸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게는 큰 위로가 되는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분노와 원망을 녹이는 말씀이었습니다. 욥 성인은 성실하였고, 믿음이 강하였습니다. 그런 욥 성인도 시련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겸손하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음주를 자주했습니다. 저는 저의 행동 때문에 견책을 당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만일 그때 제가 미국으로 갔었다면 저는 사제 생활을 지금처럼 재미있게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혈압도 높았었는데 미국에 가서 양주를 마시고, 음식을 절제하지 못했다면 건강도 많이 해쳤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주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바른 길도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수산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산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수산나의 억울함을 아시고, 다니엘을 통하여 살려 주셨습니다. 수산나의 이야기는 성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힘없이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사회에는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제가 적성에 있을 때, 매달 변호사 한분이 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분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정의와 공정을 구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형제가 잘못을 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새로운 한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조금 손해를 볼지라도, 양심을 따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할 때, 그래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그런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죽음의 골자기를 간다 할지라도, 주님 함께 계시면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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